천자봉 원효암(元曉庵)에 얽힌 전설

신라 선덕여왕 때의 이야기이다. 원효는 황룡사로 출가해 스님이 된 이후, 의상을 만나 결의형제의 의를 맺었다. 두 사람은 명산에 들어가 수도를 하기로 하고 경주 남쪽 삽라군으로 길을 나섰다. 그리고 오늘날의 천성산에 올라 사자봉 아래에 이르러 수도하기 적당한 곳을 물색했다. 원효는 오늘날의 원효암 뒤편 절벽 아래 동굴에, 의상은 오늘날의 의상대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천성산에서 7년이 넘게 수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밤, 의상이 찬바람을 피해 초옥 안으로 들어 수도에 정진하고 있을 때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 방문을 두드리며 하룻밤 쉬어 갈 수 있도록 청하는 것이었다. 난데없는 여인의 목소리에 마음이 산란해질까 싶어 의상은 여인을 들이지 않기로 작정하고 여인의 간절한 청을 거절하였다. 여인이 신음하며 산기가 있으니 제발 문을 열어 달라고 청했지만 의상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얼른 문고리를 채워 버렸다.

여인은 원효가 수행 중인 곳을 찾아가 방문을 두드리며 하룻밤 쉬어 갈 수 있도록 청하였다. 원효는 갑작스런 젊은 여인의 방문에 놀랐지만 조금도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여인을 방 안으로 인도해 온기가 있는 구들목에 앉혔다. 그 때 여인이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며 원효에게 산기가 있다고 말했다. 깜짝 놀란 원효는 급히 밖으로 나가 가마솥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원효가 끓인 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자 여인은 벌써 옥동자를 낳은 뒤였다. 여인은 원효에게 자신의 몸을 씻겨 달라며 더러워진 옷을 모두 벗어 버렸다. 원효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여인의 온 몸을 깨끗이 씻겨 주었다. 목욕이 끝나자 여인은 옷을 다시 입고 일어서며 원효에게 더럽혀진 몸을 씻으라고 말했다. 원효는 역시 망설임 없이 옷을 벗고 몸을 씻으려고 했다. 그 때 세숫대야에 담긴 물이 소용돌이치더니 진한 향내가 방 안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원효가 주위를 둘러보자 여인과 옥동자는 온데간데 없고 밖에서 은은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원효야. 너의 배움이 진정 넓고도 깊구나. 내 너를 시험하기 위해 왔나니, 어서 그 물에 목욕을 하도록 하여라."
원효는 그제야 관세음보살께서 자신을 시험하러 왔다는 것을 깨닫고 향내가 나는 물에 목욕을 하였다. 그러자 자신의 머릿속과 마음이 진정 평안하고 넓어지며 자신이 그토록 얻고 싶어하던 도를 드디어 깨쳤음을 느꼈다.

날이 밝자, 의상은 어젯밤 무사히 넘긴 것을 기뻐하며 원효가 걱정돼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자신의 걱정과는 정반대로 원효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원효의 뒤에는 후광이 서리어 있었고, 표정에는 신비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의상은 그가 득도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어젯밤 자신을 찾아온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혼자 도를 얻은 원효가 무심하게 느껴져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원효는 울고 있는 의상을 일으켜 세우며 관세음보살께서 주신 옥수(玉水)를 남겨 두었으니 그 물에 목욕하라고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상은 고마움에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남쪽을 향해 세 번 절하고 관세음보살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마음 깊이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는 방 안에 들어가 마음을 정갈히 한 후에 천천히 목욕을 했다. 목욕을 마치자 의상도 도를 얻게 되었고, 대야의 물은 한 줄기 수증기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상북면 대석리 뒷산 천성산 천자봉 아래 원효암에는 원효대와 의상대가 남아 있는데, 사람들은 이 설화를 두고 "원효의 불교는 대승불교이고 의상의 불교는 소승불교였다"고 말한다.

- 양산문화원, <양산고을 옛이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