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9권 인 라이브러리 -4- 벚꽃반의 전설

▒▒▒▒ 인 라이브러리 Ⅳ ▒▒▒▒

 

「오가사와라 사치코 양? 응, 책을 반납하러 온 지 꽤 됐는데.」
양다리의 다른 한 쪽 나뭇가지는 도서관 열람실의 대출카운터 안에서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한 30분쯤 전이었나...... 미안해.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어.」
미나코 님이 구태여 「이 사람」이라고 가르쳐줄 것도 없이 유미는 그냥 알 수 잇었다. 좀전의 사람과 어딘가 분위기가 닮았다. 누가 어느 쪽인지는 감히 묻지 못했지만 둘 중 한 명이 「다른 사람의 언니와 몰래 사귀던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이 「언니에게 로사리오를 내던진 사람」. 저 두 사람에게 그런 뼈아픈 과거가 있었다니 본인들을 직접 만나보고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책 반납시간은 몇 시로 되어 있어?」
미나코 님은 카운터에 몸을 기대며 다시 물었다.
「좀 혼잡할 때였으니까 바로 처리 못했어. 반납한 책은 그대로 맡아두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컴퓨터로 입력하니까.」
도서위원인 그 사람은 카운터 뒤쪽을 돌아보았다. 작업대 같아 보이는 곳에 쌓인 책들, 그 사이에 오늘 점심시간 사치코 님이 읽고 계셨던 것과 같은 등표지가 힐끔 보였다.
「......오셨구나.」
언니는 틀림없이 원래 목적을 이루셨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장미관에 돌아오는 것.
「사치코 양이 열람실에서 나가는 걸 봤어?」
미나코 님이 물어보자 그 사람은 「아니」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혼잡했다고 했으니. 사람 출입하는 것까지 일일이 보고 있을 수 없었겠구나.」
「적어도 그 후에 책을 빌리러 오진 않았어.」
고맙다고 카운터 안을 보고 인사를 한 뒤 미나코 님은 유미 쪽을 돌아봤다.
「사치코 양 반납만 하러온 게 맞지?」
「... 예에」
유미는 자신없이 끄덕였다. 지금에 와선 그것도 수상하다. 하필이면 「도서관에 다녀올게」일까.
「온 지 꽤 됐다고 하니까 벌써 돌아갔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열람실 안을 찾아볼까.」
미나코 님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좌우로 갈라져 찾다가 정중앙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넓은 열람실, 확실히 그러는 편이 효율적이다.
「앞으로 10분 후면 폐관입니다.」
그런 도서위원의 목소리를 등뒤로, 유미는 역시계방향으로 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책장과 책장 사이의 통로를 유심히 조사해간다.
「아」
어느 정도 지났을까, 유미는 눈에 띄지 않는 한 구석에서 친숙한 두 인물을 발견했다. 책장 옆면에 기대어 바싹 붙듯이 한 권의 책자를 읽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이런 때만 아니었으면 멀리서 한동안 바라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유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백장미 자매를 방해하기로 했다.
「미안, 시마코 양」
두 사람은 동시에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어머, 유미 양」
「먼저 가버려서 죄송했습니다. 유미님」
「아, 아니 뭘. 나야말로 미안.」
유미는 좌우지간 고개를 숙인 노리코 쨩에게 머리를 들게 했다. 돌아갈 시간에 낮잠을 잔 쪽에 문제가 있지.
「그런데 둘 다 언제부터 여기에?」
「장미관에서 바로 왔어. 어머, 어느새 1시간이나 지났구나.」
시마코 양은 시계를 보면서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책이란 요물단지네' 라고. 아무튼 계속 열람실에 있었다면 사치코 님의 행방을 알고 있지 않을까. 유미가 막 말을 꺼내려는데, 그보다 먼저 시마코 양이 절망적인 질문을 던졌다.
「사치코 님은? 함께 아냐?」
「아아......」
혹시나 하며 기대하고 있었던지라, 유미는 무심코 풀썩 주저앉을 뻔했다. 시마코 양이 얼른 손을 잡아주었기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사태는 면했지만.
「왜, 왜 그래? 내가 뭔가 말을 잘못하기라도 했어?」
「으으응. 그게 아니라」
유미는 사치코 님이 메모를 남기고 자리를 비우신 일과, 책을 반납하러 간 것치고는 시간이 너무 걸려 걱정되는 마음에 찾으러 나왔다는 사실을 간단히 설명했다.
「혹시 토오코 아닐까요?」
묵묵히 듣고 있던 노리코 쨩이 나직이 말했다.
「토오코 쨩?」
「아까 열람실 입구에서 우연히 토오코를 만나서, 제가 방과 후에 유미 님이 우리 반에 찾아오셨다고 전했거든요. 그랬더니 바로 도서관을 나가던데...... 도중에 이쪽으로 오시던 로사 키넨시스와 우연히 마주쳐서 그대로 밀크홀이나 그런 데로 끌고간 게 아닐까요. 토오코라면 그럴 만도 하니까요.」
「아니, 그럴 가능성은 없어.」
토오코 쨩은 그 시간에 사치코 님과 밀크홀에서 딸기우유를 마시는 대신에, 장미관에서 유미와 홍차를 마시고 있었으니까.
「같이 찾을게.」
시마코 양은 책자를 덮었다. 노리코 쨩도 찬성했다.
「저기, 그렇게 소란을 피울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행방불명이잖아?」
아니, 행방불명이라기보다 그저 잠깐 모습이 안보이는 것뿐인데.
「의외로 장미관에 돌아오셨을지도 모르고.」
「그건 그것대로 다행이잖니.」
「하지만 두 사람은 책을──.」
「책은 언제든지 읽을 수 있어. 그보다 사치코 님을 찾는 게 우선이야.」
어쩌지. 사치코 님 찾는다고 이렇게 야단을 떨다가, 정작 찾게 되면 그 땐 어떻게 이 상황를 얼버무리라구.
「노리코, 이제 됐으니까 그 책자를 제자리에 꽂아두렴.」
「네.」
노리코 쟝이 책자를 책장에 꽂았을 때, 유미의 눈에 그 타이틀이 힐끗 비쳤다.
「『벚꽃반 전설』?」
「응. 벚꽃정에 있길래 참 재밌게 봤었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오래 있을 수 없었거든. 2학년 벚꽃반 사람에게 물었더니 나중에 희망자 중에서 추첨으로 선물하기로 되어 있지만 확실히 읽고 싶다면 도서관에 몇 권을 증정했으니까 가보라고 하길래. 그래서 노리코랑 와본 거야.」
「하지만 그거, 조금 다르지 않아?」
유미도 벚꽃정에서 한 번 살펴봤으니까 알 수 있었다.. 비슷하지만 그 책과는 뚜렷이 다르다.
「그래. 이건 예전 거니까.」
시마코 양이 웃으며 책자를 다시 꽂은 책장을 어루만졌다. 거기엔 표지색 농도, 책 사이즈, 몇몇 권은 타이틀까지, 다들 미묘하게 달랐지만 모두 핑크색 책자였다.
「이게 전부 『벚꽃반』의 유래에 관한 책이야.」
'흥미롭지?' 라며.
──응. 정말이다.

 

 

 

▒▒▒▒ 벚꽃반 전설 ▒▒▒▒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 교사 2층 제일 끝에 2학년 벚꽃반 교실이 있다. 해묵은 나무문은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더이상 무슨 나무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교실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벚나무란 걸 알고 있다. 대대로 선배에게서 후배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자, 그럼 그 문을 밀고 안을 들여다 보자. 현재 2학년 벚꽃반은 한창 HR중이다. 칠판에는 「벚꽃정에 대하여」라는 의제가 큰 글씨로 적혀 있었고, 학원제 실행위원을 중심으로 교실은 한껏 열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럼 다수결에 의해 올해 벚꽃정은 찻집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벚꽃정(櫻亭).
이건 학원제에서 벚꽃반이 전통적으로 지켜내려온 상호명. 해마다 기획물은 다르지만 이름은 언제나 벚꽃정이었다. 참고로 작년은 카레집. 예전엔 우동집이나 스낵바, 연극무대를 했던 적도 있다. 이러한 역사 가운데 올해 결정된 찻집은 예나 지금이나 안정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어서 몇 년에 한 번꼴로 꼭 등장하곤 했다.
시원스레 결정난 덕분에 이 의제는 말끔히 해결. ......이라고 생각했더니 실은 지금부터가 본론이었다.
「음악찻집 같은 건 어떨까요?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차를 마시는 식으로요.」
먼저 포크송부 소속 학생이 제안했다.
「찬성」
합창부, 거문고부 부원이 차례차례 손을 든다. 
「저기, 쇼타임 같은 걸 정해서 중간에 댄스를 집어넣는 건 어떨까요?」
댄스부원이 뒤늦게 의견에 가세한다. 기타에 합창에 거문고에 댄스. 음악이란 공통분모가 있다고는 하지만, 꽤나 통일감이 결여된 찻집이 될 성 싶다.
「찻집에 음악이 흐르는 거야 너무 뻔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독특함을 내세워 음악을 아예 빼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발언에 새로운 흐름이. 바둑부 학생이다.
「음악을 빼서 어쩌자는거죠? 설마 바둑판을 놔두고 대국이라도 펼칠 셈인가요?」
「바로 그겁니다.」
그러자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장기부 학생이 가세한다.
「상황에 따라선 장기판을 같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승부찻집 벚꽃정. 그건 그것대로 참신한 아이디어긴 하지만─.
「말도 안돼요. 결판이 날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을테니 손님의 왕래가 줄어들 게 뻔하잖아요.」
「그건 음악도 마찬가지죠.」
아무래도 다들 자신의 특기분야로 승부하고 싶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리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지지 못했던 학생들도 회의가 가열되어 가는 동안 질까보냐 하고 연이어 참전했기 때문에 회의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림이 있는 찻집(미술부), 만화찻집(만화연구부), 꽃이 있는 찻집(꽃꽂이부) 등. 탁구찻집(탁구부)이나 수예찻집(수예부)에 이르자 더이상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간다. 회의를 정리하는 의장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분들의 주장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우리 반 의견이 모아질 것 같지 않군요. 그러니 이러는 건 어떨까요? 오늘은 여기서 끝내고 나중에 발표장을 마련하겠으니, 리포트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선전하는 겁니다. 학원제 실행위원회에는 아무튼 찻집으로 신청할테니까요.」
현명한 의견이다. 모두 한창 열이 올랐기 때문에 지금은 일단 머리를 식히는 편이 좋다. 하룻밤 자고 나면 뭣하러 저런 발언을 했나 싶은 경우도 곧잘 있으니까. 또 좋은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면 이번 기회에 다수를 설득하면 된다.
「의견 있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잠자코 있던 문학부 학생이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그럴 예정이라면 저희도 참가하고 싶습니다.」
「문학찻집 벚꽃정?」
어디선가 빈정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하지만 전 단지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자리를 만들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닙니다.」
「무슨 의미죠?」
「모두 함께 벚꽃반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책을 만들어 그걸 가게에 비치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문학부원은 자기 반 학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여러분들께 널리 벚꽃반 전설에 관한 이야기, 시가, 논문을 모집하고자 합니다.」
「벚꽃반 전설?」
「네. 고등부 각 학년 여섯 반 가운데 왜 2학년만 벚꽃반이 존재하는가. 거꾸로 왜 1학년, 3학년에 있는 자두반이 2학년엔 없는가. 여러분들도 한번쯤 생각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있을 겁니다'라는 말에 학생들은 술렁거렸다.
「이 교실만 벚나무문이라서잖아?」
「사쿠라[*일본어로 벚꽃] 선생님이라는 명물교사가 있던 반이라 그런 거 아냐?」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려왔다.
「보세요. 다들 전설 한두 가지쯤은 알고 계시잖아요. 그걸 문자로 표현해 주세요. 글로 이야기해 주세요.」
참여를 요청하는 그 말에 교실은 흥미가 동하는 분위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젊은 여자들은 이런 종류의 화제를 좋아하는 것이다. 의장이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그 외에 다른 의견 있으신 분은 지금 발표하세요.」
둘러보니 이미 그런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그럼 다음 주 이 시간에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하기로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전원 찬성을 확인하자 의장 역을 맡았던 학원제 실행위원은 이쪽을 보고 말했다.
「이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선생님. 이제 종례를 부탁드립니다.」

─ 벚꽃 속의 악마 ─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마주댄 거울.
서로 맞바꾼 마음의 일부가 내 마음을 부르고 있다. 
가지를 흔들어 꽃잎을 흩날렸다. 
그러니 이 신호를 알아차렸다면 부디, 꼭 만나러 와줘.

　　　　　◆　　◇　　◆

「시라유키(白雪) 양?」
갑자기 왜 그러느냐며 반 친구들이 돌아본다.
「응, 아무것도 아냐. 미안. 지금 갈게,」
시라유키는 세일러 칼라를 펄럭이고 벚꽃잎을 밟으며 반 친구들의 조그만 집단을 쫓아갔다. 어느샌가 10미터 정도 벌어져 있었다.
「맘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어?」
머리를 갸웃거리는 친구에게 시라유키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맘에 걸리는 일이야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다시 뒤돌아보았다. 거기에 해답이 뒹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아침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당을 나선 지 얼마 못 가 누군가 부른 듯한 기분이 들어 발을 멈췄다. 단지 그 뿐이다.
하지만 둘러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는 가지로 지탱할 수 없을 만큼 흐드러지게 핀 꽃잎을 뽐내는 벚나무 한 그루가 서있을 뿐.
「시라유키 양도 참, 또야.」
「벚꽃에 취하기라도 했나봐.」
소녀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이끌려 시라유키도 조그맣게 웃었다. 벚꽃에 취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묘하게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2학년 자두반 교실에 돌아와서도 시라유키는 자신을 부른 목소리가 내내 신경쓰였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경을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서, 4교시 수업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노트를 꺼내기는 커녕 교과서를 펴지도 않고 그 목소리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취했다면, 시간이 지나면 깰텐데 말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시라유키는 무언가에 쫓기듯 그 장소에 돌아왔다. 무엇이 자신을 불렀는지 확인하지 않고선 가만있을 수 없었다.
「누구야?」
아침의 그 장소에 서서 시라유키는 거꾸로 말을 걸었다. 그러자.
「누구야?」
메아리처럼 소리가 되돌아온다. 시라유키는 정신없이 말을 걸었다.
「어디야?」
「여기야?」
여기? 이상하다고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제서야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옆으로 뻗은 굵은 가지 위에 차분한 표정으로 걸터앉아 있는 한 명의 소녀. 틀림없이 리리안 여학원 교복을 입고 있다. 하지만 시라유키가 입고 있는 것과는 어딘가 달랐다.
「누구야?」
이번에는 소녀가 먼저 물었다.
「...... 시라유키.」
눈이 마주쳐서야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난 시로타에(白妙).」
시로타에는 즐거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갈색 스트레이트 머리는 걸터앉은 가지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그리고 마치 건너편이 비쳐보일 만큼 투명한 피부. 취소. '비쳐보일 만큼'이 아니다. 정말로 비쳐보이는 것이다.
─악마.
순간 시라유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평범한 인간의 피부로는 등 뒤의 벚꽃을 투과해서 보여줄 수 없는 법이다.
「아, 시라유키?」
등 뒤에서 시로타에의 서글서글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걸까. 어디를 어떻게 달렸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라유키는 자신의 교실로 돌아와 있었다.
「무슨 일이야?」
반 애들 중 한 명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먹고 있던 도시락 뚜껑을 덮고 시라유키 곁으로 다가왔다.
「안색이 안좋아.」
모모요(百代) 양. 평소 이런 오컬트적인 일에 묘하게 해박했다.
「방금 나, 유령봤어.」
「유령?」
「모르겠어. 아니 악마려나.」 
보통 사람 같았으면 터무니없는 말이라 여겼을테지만 모모요양은 비웃지 않고 시라유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래? 그래서..?」 하고 맞장구를 쳐가며 얘기를 들어주는 동안에 점점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런 황당한 일이 있을 리 없겠지?」
방금 본 것, 방금 들은 것을 전부 말해버리고 난 후, 마지막에 시라유키는 이렇게 덧붙였다.
「투명해 보이는 인간이라니 말도 안돼.」
하지만 오컬트를 좋아하는 친구는 여전히 비웃지 않았다.
「말도 안된다고 그러지만, 분명히 봤지?」
「그래도」
「시라유키 양」
대답을 재촉하자 시라유키는 「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주는 거니?」
「거짓말이라면 차라리 낫지.」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는 친구.
「우선 아침에 있었던 일 말인데. 그 장소에 몇 사람이나 있었는데도 시라유키 양만이 눈치챘어. 그뿐만이 아니라, 다시 그 장소에 돌아와서 이번에는 자신이 불렀지? 그거 잘못하면 위험해.」
「위험해...?」
「악마든 유령이든 요괴든 귀신이든 간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존재와 이어져 있다는 건 위험하다는 뜻이야. 시라유키 양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 못하지? 하지만 예를 들어 누군가랑 부딪혔는데 그 사람이 아이스크림 같은 걸로 시라유키 양의 옷을 더럽혔다고 해봐. 인상에 남겠지?」
「응」
「게다가 그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하며 '세탁비입니다'하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기라도 했다면.」
「차마 못 받지.」
「그렇지. 그럼 '받으세요', '못받아요' 하고 옥신각신할 거야. 뭐 어떻게든 결론이 났다고 치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이미 '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이 아닌 거야」
「내 옷에 아이스크림을 묻히고 세탁비를 내려고 했던 사람.」
「그래. 혹시 다음에 어디선가 만난다면 시라유키양은 '아, 저 사람'하고 생각할 게 틀림없어. 하지만 혹시 아이스크림을 묻히지 않았다면? 다음에 만나도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
모모요 양의 지적을 듣자 시라유키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상대가 널 기억하고 있다는 거야.」
「기억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
「상대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이 목적인지 모르니까 무슨 일을 당할지는 짐작도 못하겠지만 조심해야 해.」
「어떻게 하면?」
「그 장소에 가지말 것. 듣자니 그녀는 벚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다며? 벚꽃의 화신이라던가 벚나무에 속박당해 있다던가 그런 류의 것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거기서 움직이지 못할 거야. 너만 안 간다면 문제없어.」
「하지만 학교 안이야. 두 번 다시 안간다니 불가능하다구.」
「그럼 벚꽃이 피어 있을 동안만이라도.」
「... 가능할까?」
「해야 해. 그리고 혹시 어디선가 그녀가 말을 건다고 해도 결코 대답하면 안돼.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다면 사람 잘못 본 거라 여기고 포기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힘들겠지만 이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란 걸 명심해.」
「해볼게.」
이렇게 고개를 끄덕였을 때만 해도 시라유키는 정말로 모모요 양의 말을 따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 6교시 수업이 지나가는 동안 점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교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벚나무. 저 벚나무가 아냐. 다른 벚나무인데도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꽃잎을 흩날리는 소리가 시라유키, 시라유키처럼 들렸다. 
시로타에가 나를 부르고 있어. 이름을 알려줬을 때의 그 웃는 얼굴을 시라유키는 잊을 수가 없었다.
「학원제 기획물을 정할테니까 청소 끝나거든 다시 한 번 교실에 집합해줘.」
학원제 실행위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못 정하면 부활에도 못가게 한단다. 학원제같은 건 반 년 후에나 하는데도 다른 반과의 조정을 위해 각 반의 예정기획물을 앙케이트로 제출한다고 한다. 별로 내키지 않다는 투로 애매하게 대답하면서 반 아이들은 각자 자기 담당구역으로 향했다. 시라유키도 그 대열에 끼어 교실을 나갔다. 자신의 청소 담당구역은 이미 머리 속에 없었다. 단지 발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 장소 외에는 있을 수 없으니까.
「시로타에. 날 불렀어?」
그 벚나무 앞에 서서 부르자 가지들 사이에서 시로타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 불렀어. 시라유키가 부른 거 아냐?」
시로타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수업 중인데 시라유키가 벚나무 가지를 흔들어서 날 부르는걸. 시로타에, 시로타에 하고. 그래서 여기 온 거야.」
「수업? 수업 들어?」
「그럼. 여긴 학교잖아.」
「──그야 그렇지만.」
설마 악마가 수업을 들으리라곤 상상도 못했기에, 그만 살짝 웃었다.
「실례네. 왜 웃니?」
유쾌한 마음에 시라유키는 좀더 이 얘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그럼 시로타에는 몇 학년 몇 반이야?」
「2학년 벚꽃반.」
벚나무에 서식하는 악마가 벚꽃반. 너무 잘 어울려서 웃긴다.
「시라유키는?」
「2학년 자두반.」
그러자 시로타에는 쿡쿡 웃었다.
「우리 학교에 자두반 같은 건 없어.」
그리고 벚꽃반, 등나무반, 국화반, 복숭아반, 소나무반, 동백나무반 하고 손가락을 꼽아가며 입에 올리고 있다. 여섯 반 중 다섯 반은 정확히 똑같다. 하지만 단 한 반, 어째선지 자두와 벚꽃만이 달랐던 것이다.
「2학년 자두반의 시라유키 양. 넌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가 보네. 네 모습이 투명하게 보여.」
「투명한 건 너라구.」
「어머, 그럼 내가 있는 이 세계와 네가 있는 이 세계가 다른 걸까.」
「이 벚나무가 경계선이고?」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시라유키는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믿고 있는 현실 중에서 '이건 진실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일까. 자신이 속한 세계 안에서 사고를 하는 이상, 외부 세계에서 통하는 상식이란 자신의 사고범위 밖일 것이기 때문이다. 시로타에가 자길 놀리려고 지어낸 거짓말. 그렇게 생각하기는 쉽다. 하지만
「너 악마 아냐?」
「로사리오를 지닌 악마도 있어?」
시로타에는 자신의 옷깃 부근에 손을 넣어 로사리오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걸 벗어서 잘 보이게끔 손바닥 위에 올려 시라유키를 향해 내밀었다. 시라유키는 발뒤꿈치를 들고 보았다. 그건 틀림없는 로사리오였다. 시라유키가 가지고 있는 것과 거의 흡사한 금빛을 발하는 로사리오. 그 때 시로타에의 손바닥에서 로사리오가 흘러내렸다. 받아내려고 손을 내민 시라유키와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손을 뻗은 시로타에. 그 손과 손이 맞닿았다. 찰나.
「앗!」
두 사람은 동시에 외쳤다. 손에서 전신으로 급속히 퍼져가는 충격. 고통과 열기가 뒤섞인 찌릿한 감각과 동시에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순간 시간이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까와는 다른 충격이 찾아왔다.
쿵.
「아야야......」
고통이 조금씩 사그러들면서 주위 상황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그 소리가 자신의 몸이 지면에 충돌할 때 난 소리란 걸 알았다. 땅에는 벚꽃잎이 카페트처럼 깔려 있긴 했지만 그런 걸로 쿠션이 될 리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래.」
교복에 묻은 흙과 꽃잎을 털어내고 무의식적으로 손목시계를 봤다.
「아차, 학원제 회의 한댔지.」
뛰어가려고 내딛은 발이 뭔가를 차버렸다. 아까 떨어뜨렸던 로사리오다.
「아, 그랬구나.」
이 로사리오를 붙잡으려다 가지에서 떨어졌다는 걸 생각해 냈다. 하지만 그 장소에 한 소녀가 있었다는 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교실에 돌아오자 모모요양이 장승처럼 우뚝 버티고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청소 땡땡이 쳤다며? 어디 갔었어? 설마... 」
「안 갔다니까. 그냥 잠깐 몸이 안 좋아서 화장실에서 쉬고 있었어.」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 저 벚나무 근처에는 얼씬도 하면 안돼.」
「응. 모모요 양의 어드바이스는 몸에 사무칠 정도였으니까.」
「몸에─?」
모모요 양은 수상쩍게 되물었지만 그 전에 학원제 실행위원의 커다란 목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아, 시로타에 양 돌아왔어? 그럼 전원 다 모인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합니다.」
2학년 벚꽃반 학원제 기획물. 칠판에 쓰다가 실행위원은 그만 「벚꽃」이란 글자를 잘못 적었다. 나무 변의 나무 목자를 왼쪽이 아닌 위에다 펑퍼짐하게 붙여쓰고 만 것이다.
「앗. 방금 자두(李)로 쓰려고 그랬지?」
반 애들이 놀려대자 작년에 1학년 자두반이었던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다시 썼다.
「그러고 보니 왜 2학년만 벚꽃반이 있는 걸까? 알고 있어?」
옆자리에 앉은 애가 속닥속닥 말을 붙였다.
「글쎄?」
시로타에는 살며시 웃으며 머리를 갸웃거리고는 어깨에 붙은 벚꽃잎을 손가락으로 집어들었다.
2학년 벚꽃반 교실에서.

─ 벚나무 문 ─

「카스미(霞) 양」
잘 안 열리는 문을 억지로 밀어제치면서 한 학생이 교실에 들어왔다. 점심시간. 다들 도시락을 다 먹고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
「카스미 양이라면 지금 없는데.」
「어디 갔는지 혹시 아니? 선생님이 일지 때문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시다던데. ......아아, 정말이지 이 문 왜 이래?」
문을 연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번에는 닫히질 않는다. 오랜 수선을 거친 문은 이제 아래쪽에 납땜질하는 정도로는 순순히 말을 듣질 않는다.
「속이 썩어가나. 슬슬 새 문으로 교체해야하는데 말야.」
학생 세 명이 도와서 영차하고 문을 닫는다. 한 학년이 올라가, 이 교실에서 배운지도 2주일, 이미 다들 익숙해진 것이다.
「맞아. 카스미 양 얘기였지. 아무 말없이 나갔으니까 아마 거기에 간 거 아닐까?」
「아아, 거기──.」
교실에 들어온 학생이 짐작가는 곳이 있다는 듯 손바닥을 탁 쳤다. 카스미 양이 점심시간만 되면 훌쩍 나가버리는 일에도 다들 익숙해진 것이다.
「부르러 가고는 싶지만, 방해하는 것 같아서 좀 꺼려진다.」
「남의 연애 생활을 방해하면 용서가 안되지.」
「취미, 기호는 자기 나름이니까. ──그렇다곤 해도」
학생들은 「그러게」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식물과의 밀회라니, 즐거울까.」

　　　　　◆　　◇　　◆

카스미 양은 우리반 애들이 볼 때 조금 별난 소녀였습니다. 외모는 다른 학생과 다를 바 없이 아주 평범한 아가씨로, 굳이 말하자면 귀여운 타입이죠. 성적은 좋은 편이고요. 사람 대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 애들하고도 나름대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고요. 반에서 따돌림 당하거나 미움받는 일도 전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지 카스미 양은 그다지 일반적이라고 하기 힘든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교 안에 자라고 있는 한 그루 벚나무를 애지중지하고 있었죠. 이미 평범하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말예요.
아침 저녁으로 시간날 때마다 그 벚나무에 가서는 나무껍질을 쓰다듬으며 말을 걸고 나무에 기대어 지내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들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1년이나 계속 그러니까 「아아, 또 시작했어」정도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야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철이 아니라도 변함없이 벚나무와 함께 지내니까 이제는 '얘, 진심이구나'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작년에는 송충이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되니까 자기집에서 고용한 정원사를 데리고 와서는 그 벚나무만이 아니라 주위의 나무에까지도 살충제를 뿌렸다나 봅니다. 화학약품은 싫으니까 천연재료로 해달라고 벚나무가 직접 말했다나요. 반 애들이 무척 재밌어하며 소문내고 그랬습니다.
아무튼 카스미 양에게 있어서 그 벚나무는 인간과 마찬가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애정을 지닌 상대였나 봅니다. 그래서 카스미 양이 행복하다면야 우리들은 따뜻하게 지켜보기로 한 것이죠.
그런데 어느 날 카스미 양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날 점심시간, 카스미 양은 평소대로 훌쩍 교실을 나선지 1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질 않는 겁니다. 걱정이 된 우리들은 선생님의 허가를 받아 몇 명이서 찾으러 갔습니다. 지금까지 수업에 늦거나 한 적이 없었거든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벚나무 뿌리 근처에 쓰러져 있는 카스미 양을 발견했습니다. 곧장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카스미 양은 계속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병인 건 확실하지만 외상은 없었으니까 무슨 병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죠. 당시 명망높으셨던 카스미 양 아버님께서 전국에서 명의라 불리는 의사선생님들을 모셔와 카스미 양을 진찰하게 했나 봅니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도 원인은 커녕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다나 봐요.
차례차례 의사들이 딸을 포기하자 카스미 양 아버님은 이번에는 점술사와 기도사들을 불렀습니다. 이쪽 사람들은 의사들하고는 다르게 바로 이게 원인이라며 단번에 짚어내고는 부정한 것을 쫓는 의식 같은 걸 거행했다나 봅니다. 하지만 전혀 효과가 나타나질 않았죠. 그래서 일단 원인상으로는 카스미 양은 뱀, 여우, 고양이 따위에게 씌인 채 계속 잠들어 있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이미 야윌대로 야윈 딸의 곁에서 그저 눈물을 흘리는 수밖에 없게 된 카스미 양 아버님에게, 어느 날 한 나이 지긋한 비구니가 찾아 왔습니다.
「따님의 병에 대해 들었습니다.」
아버님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효과도 없는데 사례금만 받아챙기는 패거리가 또 왔다고 생각하고 돈을 쥐어 돌려보낼려고 했죠. 이제 더이상 딸에게 소금을 뿌리거나 침대 주위에 촛불을 켜두거나 몸에 이상한 문신을 그리는 걸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셨으니까요. 하지만 비구니는 돈은 필요없으며 딸에게는 절대 손을 대지 않고 낫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아무튼 비구니의 말을 듣기로 했죠. 비구니의 지시는 단 하나였습니다. 카스미 양의 연인이라 할 수 있는 그 벚나무를 베어버릴 것, 그것뿐이었어요. 아버님은 거기에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벚나무를 베어낸다고 해서 지금의 병상태가 악화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되든 안되든 손해볼 건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 벚나무는 학교 부지내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개인이 마음대로 베어버려도 될 게 아니었죠. 아버님은 학원장을 찾아가서 무릎꿇고 빌었다나 봐요. 이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으니까 속내를 숨김없이 털어놨던 것이죠. 딸을 사랑하고 있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두는 건 너무 가엾다. 딸이 살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다 날린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딸 대신에 자신의 생명을 주고싶을 정도다. 라고 말이죠.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에 감동한 학교측은 이교도인 비구니의 말이란 걸 알면서도 벚나무를 벌채할 것을 허가했습니다. 그걸로 카스미 양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기보다, 단지 죽음을 목도할 수만은 없었던 거죠.
하지만 벌채와 동시에 카스미 양은 눈을 뜬 것입니다. 카스미 양의 아버님은 너무나 기뻐서 사례로 시주를 드리려고 비구니를 찾았지만 이미 어딘가 떠나버리고 난 뒤였습니다. 회복한 카스미 양은 한 달쯤 지나 다시 학교에 돌아왔습니다만, 신기하게도 저 벚나무에 푹 빠져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잘려나간 벚나무는 2학년 자두반의 문으로 환생했습니다. 카스미 양은 시간날 때마다 그 문에 기대어 있고요.

─ 벚나무의 매장 ─

달빛 아래서 벚나무 뿌리 주변을 파고 있다. 한 사람, 그저 묵묵히.
구멍은 깊을 수록 좋다. 하지만 화단 손질용으로 쓰는 조그만 삽으로 얼마나 팔 수 있겠는가.
한밤중의 학교는 이 세상의 끝만 같다. 눈가루처럼 꽃잎이 떨어진다. 손을 멈추고 올려다보니 지금이 한창때란 듯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 머리카락에 휘감겨 있는 꽃잎을 빗으로 빗겨줄 사람은 이제 필요없다.
벚꽃이여. 나의 마음을 삼키고, 미쳐버릴 만큼 아름다운 꽃잎을 흩뿌려다오.

 

　　　　　◆　　◇　　◆

 

드물게도 야에(八重) 양이 지각을 한 아침. 교실 창문에서 보이는 벚나무는 만개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대충 70 내지 80퍼센트 정도 피어 있는 상태였다.
「하필 자동차 바퀴가 도랑에 빠지는 바람에 고생했어.」
1교시 수업 30분정도 지나서 교실에 모습을 드러낸 야에 양은 쉬는 시간이 되자 책상 주위에 몰려든 반 아이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지각 이유를 설명했다.
「어머, 큰일났었구나.」
「그래서, 다친 데는 없니?」
동정하는 분위기가 교실 전체에 충만한 가운데, 후지코(富士子)만은 다른 시선으로 원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보고 있었다.

「기뻐보였어? 기뻐보였다고 그랬어? 내가?」
점심시간에 단 둘이 있게 되을 때, 자기 생각을 그대로 말하자 야에 양은 조금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더니 곧이어 웃음을 띄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후지코 양한테는 못당하겠다니까' 라고.
식사 후 강당 옆을 산책하는 두 사람의 일과는 비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맞아. 확실히 불행이었지만, 조금 멋진 일도 있었거든.」
야에 양은 실토했다.
「멋진 일?」
「도랑에 빠진 차바퀴를 끌어올리는 걸 도와준 친절한 분이 계셨어.」
남자다. 후지코는 민감하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젊어?」
「나이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래. 스무살 넘었으려나. 어디 부잣집 학생 같은 분위기였어.」
「그래서?」
「그것뿐이야.」
야에 양은 어깨를 으쓱했다. 
「차바퀴를 도랑에서 빼기만 하면 차는 움직이니까. 난 서둘러 학교에 가야 했고.」
「학교때문이란 말이지.」
알았다. 「그것뿐」이긴 하지만 야에 양은 그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 것이다. 그 마음 이해못할 바 아니다.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는 사람은 실제보다 어느 정도 미화되어 보이는 법이니까.
「나중에 사례를 하겠다고 운전수가 이름과 연락처 같은 걸 물어봤나 본데, 그 사람 아무 말없이 가버렸어.」
「흐음, 사람이 좋든지, 아니면 폼재는 거든지, 둘 중 하나겠네.」
「그렇겠다.」
야에 양은 미소를 지으며 교복 주머니에서 얼레빗[*つげの櫛 : 회양목으로 만든 반월모양의 빗]을 꺼내 후지코의 머리카락을 빗겨 주었다. 이 얘기는 이제 그만. 그런 의미다. 그래서 후지코는 야에 양의 어렴풋한 「설레임」을 그냥 넘어가 주기로 하였다.
학교도 줄곧 여학교에, 집과 학교는 자가용으로 왔다갔다. 가족 이외의 이성이라 한다면 고용인, 노교사 아니면 부친의 손님 정도니까 이런 돌발사고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설레임 같은 감정과는 인연이 없었다.  언젠가 부모님이 정한 상대와 당연하다는 듯이 결혼해야 할 운명.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연애는 바랄 수 없기 때문에 잠깐이나마 마음 속에 따뜻한 등불을 켜둔다 해도 벌받진 않겠지. 답례로 후지코도 야에 양의 머리를 빗겨줬다. 칠흑같은 스트레이트에 등에서 가지런히 자른 예쁜 머리. 스윽 빗으로 빗기자 바람의 장난으로 붙어있던 꽃잎이 훌훌 작은 원을 그리면서 지면에 떨어졌다.

그 뒤 며칠 동안 야에 양은 가끔씩 우울해보이는 얼굴을 했다. 후지코는 직접 물어보지 않았다. 때가 되면 야에 양은 분명 얘기해 줄테니까. 야에 양의 아버님이 주식에서 실패했다는 소문을 들어서 그런지 더욱 물어보기가 거북했다.
「후지코양. 어쩌면 좋아?」
늘 오가는 산책길에서 야에 양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 사랑하나봐.」
「사랑!?」
틀림없이 집안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후지코는 마음의 준비도 못했다.
「상대는 차바퀴 끌어올릴 때 도와줬던 그 남자야. 수예교실에 가는 도중에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서, 그래서」
야에 양은 그 뒤 매일같이 그 남자와 만났다고 한다. 학원을 구실삼아 꽃구경이니 함께 차를 마시느니 하면서, 따라다니는 어린 몸종에게 입막음 비용까지 치루었을 정도로.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해. 저기 나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냐니,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야에 양의 입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흘러나오는 위화감. 후지코는 자신이야말로 어쩌면 좋을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끝에 간신히 찾아낸 말은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야에 양은 약혼자가 있잖아. 고등학교 졸업하면 그 분한테 시집가기로 되어 있지?」
「부모님이 정한 상대야.」
「하지만 야에 양도 납득했으니까 약혼예물을 교환한 거 아니었어?」
「그건」
쏟아붓듯이 야에 양이 말했다.
「사랑이란 걸 몰랐으니까 그랬던 거야!」
친구에게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여자의 얼굴을 발견한 후지코는 몸서리를 쳤다.
「그럼 야에 양은 나한테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있어? '약혼을 파기하고 새로운 상대와 행복하길 바래'라고? 그렇게 말하면 만족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나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야에 양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굴을 감쌌다. 후지코는 친구의 머리카락에 내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어. 아직 아무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 사람과 헤어져. 그 충고야말로 사랑이란 걸 알지 못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알았어.」
야에 양은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서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야에 양이 '알았다'고 한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결국 후지코는 물어볼 수 없었다.

그 날 밤.
후지코 집에 야에 양의 어머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녁 무렵 야에 양이 집을 뛰쳐나가 행방불명이니 혹시 찾아오거든 붙잡아두고 연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그것만 말하고 전화는 끊겼다. 아마 또 다른 반 애들한테 전화하려는 걸테지.
그리 소란을 피웠다간 학교 오기가 더 힘들어 질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후지코는 생각을 고쳤다. 학교에 신경쓸 여유조차 없을 만큼 절박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야에 양은 부모님의 손길이 닿고 있을 반 친구의 집으로 과연 도망치려 할까. 그럴 리 없다. 야에 양하고는 점심 때 말다툼한 채로 어색하게 헤어졌다. 의지하러 찾아올 리가 없다.
방에 돌아와서 예습하려고 교과서를 펼쳤지만 야에 양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점심시간 때의 그 결의에 찬 얼굴이 떠오르자 주먹을 꾹 쥐었다. 지금쯤 어디서 뭘하고 있으려나. 무조건 반대한 걸 후회했다. 응원은 못한다 치더라도 좀더 다른 방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톡.
창문이 조그맣게 소리를 냈다.
「야에 양!?」
후지코는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가족들한테 들키지 않도록 살그머니 창문을 옆으로 열자 과연 거기엔 야에 양의 모습이 있었다.
「후지코 양의 방이 1층이라 다행이야.」
후지코의 집은 학교와 가까워서 야에 양은 지금까지 몇번이고 놀러 왔었다.
「아까 야에 양 집에서─.」
「응」
야에 양은 긴 머리를 싹둑 잘라서 남자같았다. 아니, 머리만이 아니다. 입고 있는 옷도 남자옷이라, 이래서야 길에서 지나쳐도 야에 양인 줄 모를 것이다. 정말 소년 같았다.
「점심 때 내가 한 말 때문에...?」
후지코가 그렇게 말하자 야에 양은 「아니」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지코 양하고는 관계없어. 아버지한테 들킨 것뿐이야.」
「아버님께...... 」
그건 최악의 사태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상황을 역이용해보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아버님께 발각됐다면 설득해보는 게 어때? 딸이 가출할 만큼 결심이 단단하단 걸 알면 아버님도 분명.」
하지만 야에 양은 「반대하셔」라고 말했다.
「우리집 말야. 사업에 실패해서 많은 빚을 지고 있나봐. 그래서 내 결혼을 앞당기려고 하고 계셔.」
야에 양의 약혼자 집안은 은행인가 백화점 같은 걸 대규모로 운영하고 있는 가문으로 야에 양 아버님의 회사를 다시 일으키는 데에 협력해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럼 회사를 위해 야에 양을... 」
「내가 시집가서 아버지랑 그 밑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고 생각 안 한 건 아니지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이란 걸 알았으니까?」
후지코가 묻자 야에 양은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응, 그래」하고 대답하고는 웃음을 지었다.
「난 부모님을 버릴 수 있을 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그 사람도 나를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겠다고 그랬고.」
예상하고 있던 대답이었는데도 실제로 야에 양의 입을 통해 듣게 되자 예상 이상으로 충격을 받았다.
「말려달라고 날 찾아온 건 아니구나.」
「작별인사를 하려고 왔어.」
「야에 양이 왔다고 내가 어른들한테 일러바칠 거란 생각은 안해봤어?」
「그런 건」
야에 양은 조그맣게 웃었다.
「글쎄. 후지코양은 날 생각해서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널 만나러 오지 않을 수 없었어.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두 번 다시... 」
후지코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마.」
야에 양은 후지코의 손바닥에 얼레빗을 쥐어줬다.
「이거 줄게. 내 머리카락은 이렇게 짧아졌으니까.」
그건 마치 유품을 나눠받는 느낌이었다.
「이런 거 싫어.」
후지코는 창문을 뛰어넘어 친구를 끌어안았다.
「가지마.」
도리에 어긋난다거나 고생할 거라는, 그런 이유로 말리는 것이 아니다.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모습을 감춘다. 그것을 견디지 못했기에 애원하는 것이다.
「고마워.」
야에 양은 후지코의 등으로 손을 가져가 달래듯 등을 가볍게 토닥거려 주었다.
「제발 가지마. 내 곁에 있어줘.」
하지만 이런다고 야에 양의 마음이 바뀔 리 없다는 건 후지코 역시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좋지. 이대로면 가버릴 거야. 아예 여기서 야에 양의 목을 졸라 숨을 멈추게 할까. 그렇게 하면 야에 양은 이제 어디에도 갈 수 없어. 두번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죽어버린 것과 뭐가 달라.
「야에 양」
후지코는 팔에 힘을 주어 껴안았다. 껴안으면서 친구가 그런 생각하고 있을 줄은 야에 양은 꿈에도 생각못했겠지.

다음날 학교는 벌컥 뒤집어졌다고 한다. 학생이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스캔들감이었겠지만, 상대 남자는 특별고등경찰[*1911년 설치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존속한 일본의 비밀정치경찰]에서 주목하고 있었다든가, 약혼자가 두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었다든가, 허풍인지 과장인지 알 수 없는 덤이 붙어서 소문은 굉장한 기세로 학교 전체에 퍼져나갔다고 한다. 그 날 후지코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큰일이 벌어졌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다 온 몸이 나른해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야에 양의 실종을 알고 있던 부모님은 딸이 쇼크를 받은 걸로 생각해, 아무 말없이 쉬도록 해주었다. 새벽녘에 흙투성이 옷으로 집에 돌아온 걸 고용인에게 들켜버린 것도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 어머니는 친척에게 전화해서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사실을 말해도 괜찮았겠지만 그 편이 더 설득력이 없어서 결국 아무 말 않기로 했다. 한밤중에 단지 구멍을 파기 위해서 학교에 갔다니. 누가 그걸 믿어 줄까. 후지코 자신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 그 때의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그 때는 그러지 않고선 가만있을 수 없었다. 야에 양의 유품을 한시라도 손에 그대로 쥐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파묻으러 갔다. 그뿐이다.
하지만 그 일이 나중에 조그만 파장을 일으켰다. 교내 어느 벚나무 뿌리 주변의 흙이 파헤쳐진 흔적을 발견한 교사가 거길 파내어 봤더니 안에서 얼레빗이 나왔던 것이다. 확인해보니 그건 언제나 야에 양이 지니고 다녔던 물건임을 알고 또다시 학교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야에 양은 벚나무가 삼켜버렸다고. 그 소문은 환상적이라고 할만큼 아름다웠기에, 다들 좋아라 퍼트리고 다녔다.

벚나무가 저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건 뿌리에 무언가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있지, 벚나무가 야에 양을 삼켰을 거라고 생각해?」
문득 생각난 듯 반 아이가 묻는다.
「글쎄」
후지코는 꽃이 진 벚나무 가지 틈새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죽어서 만날 수 없는 것과 살아 있는데도 만날 수 없는 것은 절대적으로 다르다고. 야에 양도 지금쯤 어딘가에서 이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으리라 믿으며.

　　　　　◆　　◇　　◆

「벚꽃반 전설? 이거 언제 거죠?」
꽃잎무늬가 그려진 핑크색 표지의 책자를 들어올리며 카토리 선생이 물었다.
「올해요. 학원제 찻집에 전시하다나 뭐라나...... 꽤 재밌더라구요.」
대답은 야마무라 선생.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 교무실. 점심시간의 한 때. 뒷자리를 지나가던 요츠야 선생도 멈춰서서 「호오」하고 웃었다.
「4, 5년 주기려나요. 이런 화제로 후끈 달아오르는 일요.」
「올림픽이나 윤년같은 느낌이네요. 하지만 어째서일까요.」
야마무라 선생은 앉은 채 의자를 빙그르르 굴려 2미터정도 이동해 파일이나 책자류 등을 한데 꽂아놓은 책꽂이에 손을 뻗었다. 거기에는 크기나 두께가 제각각인 핑크색 표지의 책자가 몇권이나 진열되어 있었다. 그 중 한 권을 뽑아들고는 「아아, 역시 지난번은 4년전」 이라고 중얼거렸다.
「전에 한 번 달아올랐던 선배들과 교대로 고등부에 입학한 학생들이 할만한 일이니까 그래요. 그애들은 자신들이 오리지널이라고 믿고 있겠죠.」
요츠야 선생은 유쾌하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아아, 과연 그러네요.」
「카토리 선생님 시절은요?」
야마무라 선생이 카토리 선생에게 질문했다. 두 사람 다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 졸업생이다. 남자 교사는, 일부러 따돌릴 생각은 없지만 이 화제에 낄래야 낄 수도 없다.
「어땠더라. 벚꽃반이 아니어서 기억하질 못해요.」
「실은 저도 그래요.」
두 사람의 졸업생은 「아쉽네요」 하고 중얼거렸다. 내심 벚꽃반을 부러워했었나 보다.
「실제로 왜 2학년에만 벚꽃반이 있는지 아시는 분 계세요?」
야마무라 선생이 물었다.
「문이 벚나무라서 그런 거 아녜요?」
라는 카토리 선생. 그러나 그런 이유라면 문이 삼목나무면 삼목반, 노송나무면 노송반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럼 전쟁때 무슨 일이 있었다는 얘기는요?」
「아아, 공습때 학생들이 벚나무 아래에 있었던 덕분에 폭탄을 피했다는 그 얘기? 하지만 전쟁이 그토록 격렬했다면 학생들은 미리 피난가 있지 않았을까요?」
자기가 직접 본 건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다며 요츠야 선생은 웃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선생들도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벌어진 양 모여들었다.
「학원제에서 벚나무를 기념하는 연극을 상연해서 그렇다는 소문도 들은 적 있지만요. '워싱턴'이었던가요?」라는 아츠미 선생.
「그런 이유라면 후지와라노 요리유키(藤原賴之,*주1↓) 전설쪽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정정에 사카모토 선생.
「그 교실에 머물고 있는 동자령[*자시키와라시(座敷童). 토후쿠 지방에 산다고 전해지는 어린 아이 모습을 한 집의 수호령]의 이름이 사쿠라(벚꽃) 쨩이라서 그래요.」호시나 선생 가설.
「반 문패에 벚꽃반이라고 잘못 적어버려서라고 들은 적이......」쿠라타 선생 가설.
이래서 기탄없는 이 논의의 결론은.「진상을 알고 있는 교사는 이 교무실 안에 없다」 라나.
이런이런. 야마무라 선생은 올해 「벚꽃반 전설」을 책꽂이 가장 끝에 꽂았다. 이렇게 해서 전설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주1. 시와쵸(紫波町)에 전해지는 벚나무와 관련된 전설. 남북조시대 시와쵸로 좌천당한 후지와라노 요리유키(藤原賴之)이라는 문신이 집에서 기르던 벚나무를 인연으로 영주의 딸 모모카히메(桃香姬)와 사랑에 빠진다. 이윽고 사면받은 요리유키는 다시 수도로 돌아가면서 모모카히메에게 내년 벚꽃이 필 무렵 맞으러 오겠으니 그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청하지만 2년이 지나도 맞이하러 오지 않자 모모카히메는 그가 빨리 돌아오길 기원하며 벚꽃을 향해 노래를 불렀고 이 노래가 수도의 요리유키에게 전해져 깊이 뉘우치고 즉시 모모카히메를 맞이하러 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