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8권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 -4- 앗, 실수

1

 

"평안하세요. 리리안 학원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건네진 말을 들으며, 미즈노 요코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9시 40분.
이 곳에서 기다린 지 30분. 그녀 앞을 지금까지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나쳐 갔을까.
다양한 차림을 한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모두 청소기에 빨려들어가듯이 요코의 등 뒤에 있는 높다란 문 속으로 들어갔다. 척 봐도 학생의 부모님임을 알 수 있는 남녀. 할아버지, 할머니. 그들이 데리고 온 어린 아이들은 아마도 형제. ─ 한데 묶어, 가족.
잠깐 기지개를 펴던 전통복장 집단은 아마 이 학교 학생의 친구들. 같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함께 배운 동창이겠지. 기품있는 자잘한 무늬의 기모노를 몸에 걸친 아주머니는, 리리안 졸업생일까. 아니면 차나 일본무용 사범으로, 제자의 학교생활을 몰래 보러 온 걸까.
"입장티켓을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팜플렛 받으세요. 돌아가실 때까지 티켓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학원제 실행위원들의 시원시원한 목소리.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해서 귀에 들어오는 바람에 이젠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평안하세요. 리리안 학원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렇게 눈에 띄는 장소말고 다른 곳에서 만나기로 할 걸 그랬나. 요코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알아보기 쉽다」는 점에 대해선 자기 오른편에 비길 만한 곳이 없다. 약속상대가「장소를 못찾았어」라며 얼렁뚱땅 변명을 늘어놓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다.
"티켓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신 분은 이쪽으로. 학생 관계자 분은─"
9시 45분.「같이 학원제 가자」며 약속시간과 장소를 지정했던 인간이 지각해서 어쩌자는 건지. 나참, 고등학교 때랑 하나도 변한 게 없다니까.
(앞으로 5분 더 기다렸다 안오면 혼자서 들어가 버릴까. 인간관찰도 슬슬 질렸고 말야)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멀리서도 시선을 끄는 화려한 패션의 남성 두 명이 보도를 천천히 내려 오는 것이 보였다. 
(이건, 에리코가 보면 아주 좋아하겠는데. 희소가치가 있어....)
뭐라고 하면 좋을까. 리리안 학원제에 오는 사람들 중에서는 보기 드문 그룹에 속하는 타입. 첫인상을 한 마디로 하자면,「그 쪽 사람」이건 에리코가 아니라도 흥미를 끄는 샘플이다.
요코는 그들이 눈 앞을 지나쳐 문을 빠져나가 리리안 부지로 들어가는 동안 자세히 관찰하기로 했다. 한 사람은 초로의 호리호리한 남자로, 검은 실크 새틴 셔츠, 회색에 하얀 물방울 무늬 넥타이, 밝은 청색 상하 슈트를 입고 로맨스그레이에 파나마 모자와 닮은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의 남자는 좀전의 남자보다 약간 젊고 건장해 보였다. 검은 색 바탕에 빨강과 녹색 무늬가 그려진 화려한 알로하 셔츠, 흰색 슈트. 깨끗하게 민 머리를 그대로 드러낸 상태. 얼굴과 똑같은 색으로 햇빛에 탄 걸 보면 스킨헤드 경력이 상당히 오래되어 보인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사이좋게 검은 선글래스를 끼고 있었다. 정말이지「한 판 붙어볼까」란 느낌이다. 자 그럼, 그들을 맞을 접수대의 반응은 과연.
"펴, 평안하세요. 리리안 학원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학생들은 물론, 교사도 상당히 떨고 있다.
"티, 티켓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 분은─"
"티켓이라는데..?"
두 남자는 마주보더니 동시에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히익"
무심코 몸을 뒤로 젖히는 학생. 굳어버린 교사. 급히 뛰어오는 수위아저씨. 하지만.
"가지고 있습니다"
꺼내든 건 입장티켓이었다. 그야 그렇지. 피스톨이라도 나올 줄 알았어?
"화, 확인했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대응하는 실행위원. 힘내! 좀전의「히익」은 못들은 걸로 할테니까.
(아아, 티켓 뒷면에 적힌 학생이름을 보고 싶어)
요코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의, 어떤 관계자일까. 무척 신경쓰인다. 하지만 뒤따라가서「보여 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니 해선 안되지. 그건 룰위반이니까. 학부형일까.
(그렇다면 그 두 사람은 학생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렇다고 해도 안닮았는데)
아니,「아버지와 외할아버지」라면 두 사람이 안닮았어도 OK. 하지만 패션 취향, 아니 그보다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닮았다.
(딱 오는 느낌으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보다는 역시 두목과 부하인데 말야)
이런저런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기다렸지?"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 그리고 신경쓰이던 두 사람은 은행나무 가로수길 저 편으로 사라졌다.
"늦었어. 얼마나 기다리게 해야 분이 풀릴까"
"얼마나 기다렸는데?"
"40분 정도려나"
"약속시간 20분도 전에 온 니탓이지 뭐"
"그래도 남은 25분은 니 탓이야"
"지송함다"
반성할 기미라곤 조금도 안보이는 사토 세이. 요코와는 질긴 악연인 친구.
"에리코는 아직 안왔어?"
세이는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렸다. 미즈노 요코, 사토 세이라고 하면, 남은 건 토리이 에리코다. 리리안 전(前) 삼총사, 즉 선대 세 장미님이다.
"전화해봤는데, 안온대"
요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이는 에리코가 자기보다 지각하리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걸까.
"곰(야마노베 선생)이랑 데이트?"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너무 자주 출몰하면 요시노짱이 불쌍하다나 뭐라나 그러던데. 저기 있지, 에리코가 그렇게 자주 고등부에 드나들었어?"
"아니. 들은 적 없는데. 단지 요전번에 과자를 선물한 것 같지만─"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다.
"... 뭔가 꾸미고 있군"
"그런 듯 하이"
에리코가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계획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셋이 함께면 싫어도 눈에 띄니까 변장이라도 해서 나중에 살짝 살펴보러올 생각일 지도 몰라"
"그럴 듯 하다. 그럼 어서 입장할까. 우리들이 문앞에서 죽치고 있으면 에리코가 들어올 수 없어서 곤란해질 테니까. .... 아 참, 그렇지"
그러고서 세이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종이봉투를 꺼내들고「자」하며 요코에게 던졌다.
"뭐니?"
"여행 선물. 건조 포르치니. 좋아한다고 그랬지?"
".... 고마워. 근데 이탈리아 갔었어?"
포르치니 버섯이라면 유명한 이탈리아의 송이버섯.
"왜?"
"가고 싶었으니까"
"2년 전 수학여행 때 갔었잖아"
"뭐 어때서 그래"
"난 가끔 널 이해못할 때가 있어"
"그거 기쁘구만"
"칭찬하는 게 아니라니까"
"뭐어 부끄러워 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자구, 어서"
부끄러워 할 리도 없지만, 여기서 서서 얘기하는 것도 그러니 발걸음을 뗐다.
".... 잠깐 기다려 봐"
교문을 들어가려던 순간, 요코의 시야 한 구석으로 믿기 어려운 광경이 들어왔다. 문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담을 타고 넘으려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만둬. 무슨 짓이니?"
뛰어가서 끌어내릴 것까지도 없이, 그녀는 곧바로 땅에 착지했다. 튀어나온 곳이 거의 없는 높다란 담은 손으로 잡을 곳도 발을 걸칠 곳도 없어서 타고 넘는다는 건 애시당초 무리였다.
"괜찮아?"
균형을 잃어 휘청거리길래 받쳐주려 하자 그녀는 바둥거리며 몸을 비틀고 날뛰었다.
"놔줘요.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구요"
벌써 몇 번이나 도전한 걸까. 손잡이가 되었던 모양인지 벽면을 따라 자라고 있던 넝쿨의 잎이 무참히 뜯겨져 있었다. 
"너, 누구냐?"
세이가 웃었다.
"그런 말투는 실례야"
자세히 보니 아직까진 소녀라 부르기에 알맞은 나이다. 세이와 요코보다 두세 살 아래일까. 교복을 안입은 걸 보면, 리리안 고등부 학생은 아닌 듯 한데.
"우리들은 널 굳이 어쩌려고 그러는 게 아냐. 단지 담을 넘는 건 무리, 쓸데없이 다칠 뿐이라고 충고하러 왔을 뿐이니까. 그럼 평안하렴. 가자, 세이."
요코는 소녀한테서 손을 떼고 돌아서서는 그대로 세이의 팔을 잡고 정문을 향해 착착 걸어갔다.
"으음, 건재한데"
세이가 요코한테만 들릴 만한 소리로 속삭였다. 나참. 눈치챘으면 조용히 따라올 것이지.
"저기!"
생각한 대로, 소녀는 두 사람을 불러세웠다. 그걸 기다린 것처럼 보이지 않게끔, 2초 정도 세고 나서 돌아봤다. 그러자 그녀는 달려와서 말했다.
"전, 이곳 학생의.... 가족이거든요"
"가족?"
그게 아까「너, 누구냐?」에 대한 대답이라고 한다면, 전혀 뜻밖의 대답이라 해도 될 법하다.
"티켓은 어쩌고? 가족이면 갖고 있을 거 아냐?"
여자애가 담을 넘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뜻밖이긴 했다. 그럼 어떤 사람이었다면 뜻밖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건 티켓을 입수하지 못한 이웃 학교 남학생. 그런 경우라면 매년 수 차례 목격되고 있지만, 요코가 재학생인 시절에는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잃어버렸어? 깜박 잊고 안들고 온 거니? 우리들이 접수대까지 따라가 줄테니까 사정을 얘기하고 들여보내 달라고 해. 학생의 반과 이름, 그리고 네 이름, 연락처, 학생과의 관계 같은 걸 쓰면 입장할 수 있을 거야. 여자니까"
"아까, 접수대에서도 그랬어요. 하지만"
잠시 우물거리더니 소녀는 말했다.
"그 애 반 이름을 몰라요"
"가족이라면서?"
놀리듯 웃는 세이에게「잠깐 잠자코 있어봐」라고 말한 후, 요코는 말을 이었다.
"몇 학년인지는 알고 있지? 그럼 조사해 줄텐데?"
"네. 단지, 확인하기 위해 방송으로 학생을 부르겠다고 그래서"
"불러 준다면 좋잖니?"
가령 가게를 지키고 있다 하더라도 방송으로 호출받으면 달려올 테니까.
"그럼 안된다니까요. 우선, 와주지 않을 거예요. 온다고 해도 내 얼굴을 본다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거구요"
"어지간히 미움받고 있구나"
이번에는 요코도 세이의 말에 주의를 주지 않았다. 똑같은 감상이었으니까.
"정말이지, 그래서야 두 손 들 수 밖에 없겠네"
"그러니까 이젠 담을 넘을 수 밖에 없다구요"
눈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높다란 담을 올려다 보는 소녀. 이 소녀와 그 학생 사이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담이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저기 있지. 여학교 담이란 게, 그리 간단히 넘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안되겠지?"
"그렇구나. 그럼 로프라든가 줄사다리 같은 게 있다면"
그렇게 말했다가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긴. 도구를 가지고 올라갈 수 있다면 저기 티켓없는 남자들이 걸릴 리가 없겠죠"
점퍼 스커트 차림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 그녀는 계획성이라는 단어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앗다.
"닌자라든가 체조선수라면 도구를 사용해서 어떻게든 될 지도 모르겠지만. .... 너, 운동은?"
"중학교 때 농구를. 이럴 줄 알았으면 장대높이뛰기라도 해둘 걸 그랬어"
과연, 그런 수가 있었구나. 요코와 세이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하지만 그 기술이 있다손 치더라도 실제로 뛰어넘는 건 무리겠지. 여전히 적당한 봉을 어디서 구해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 데다가, 도움닫기할 만한 거리도 없다.
"그보다 티켓 남은 게 있는지 물어보는 편이 훨씬 빠르지 않을까?"
세이가 제안했다.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티켓은 매년 부족한 듯 하니까. 어쩌다 남는 게 있다고 해도 학생들 가족이나 친구라면 그 학생에게 폐를 끼쳐선 안되니까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는 안줄테지. 아까도 중년 아저씨가 문 앞에서 입장하는 사람들한테 구하러 다녔지만 전혀 상대해주지 않던걸. 수상하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수위아저씨인지 선생님이 문 밖에까지 나와본 뒤로는 장소를 이동한 것 같지만"
지금쯤 뒷문 근처에서 입장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을 지도 모르지.
"여러가지로 죄송합니다. 저기, 전 신경쓰지 마시고 입장하세요"
소녀가 꾸벅 인사를 했다.
"이제 어쩔 셈인데?"
말하면서 요코는「이 애, 누구랑 닮았는데」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떻게든 해볼 거예요"
"어떻게든 해볼 거라곤 하지만. ... 세이, 어쩌면 좋겠어?"
"어쩌면 좋겠다니. 이미 결정내린 주제에"
세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산백합회에서 보내준 티켓을 요코에게 넘겼다.
"고마워"
"네 참견기질에는 익숙해 있으니까"
요코는 웃으며 그걸 소녀에게 내밀었다.
"이걸 쓰도록 해"
"엣, 하지만 그러면"
누구 한 명이 못들어가게 되는 거 아닌가 하고 불안한 눈으로 물어온다.
"그녀... 사토양은 리리안 여대생이야. 티켓이 없어도 학생증을 보여주면 안에 들어갈 수 있어"
소녀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 대신에, 우리들과 같이 행동할 것. 약속할 수 있겠지?"
"아, 넷!"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기쁜 듯이 따라온다. 소녀는 문 앞에서 한 번 발을 멈추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뭐 찾는 거 있니?"
"아뇨. 아무 것도 아녜요"
조그맣게 고개를 젓고서 그녀는 문을 빠져나갔다.
평안하세요. 리리안 여학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요코는 듣기 질려버린 구호가 난무하는, 반가운 부지 안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고보니 너, 이름은?"
세이의 질문에 소녀는 또렷하게 대답했다.
"유코. 호소카와 유코라고 해요"

 

2

 

고등부 학교 건물 뒤편이랄까, 밀크홀 맞은 편 길 옆이랄까, 제 2 체육관 바로 앞이랄까, 낡은 온실이나 풀장으로 갈 때 지나는 곳이랄까. 그렇게 애매한 위치에「후지마츠 엔니치무라」가 있다.
[※ フジマツ緣日村: フジマツ(후지마츠)는 등나무반, 소나무반 합반을 의미. 緣日(엔니치)는 마츠리(축제)와 비슷한 행사로 원래는 신불을 공양하고 재를 올리는 날인데, 이때 마츠리처럼 참예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열리는 노점상을 緣日村(엔니치무라)라고 함. ]
무라[마을]라곤 해도 이미 터를 잡은 벚나무라든가 체육창고에서 빌린 장애물, 공같은 물건에 새끼줄을 걸쳐 만든 간이공간. 거기에 하루 날잡아 엔니치를 열자고 손을 맞잡은 2학년 소나무반과 2학년 등나무반이었다. 1학기에 제출한 제 1 희망기획이 겹치는 바람에 몇 번인가 의논을 해봤음에도 조정이 잘 안되어 (아니 그보다 어느 쪽도 기획을 양보하려 들질 않아서) 결국 「그럼 합동으로 하지 그래」라는 학원제 실행위원장의 한 마디에 결정됐다. 그런 비화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두 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아니, 그걸 지나쳐 우당탕쿵탕 난리법석. 개장 전 준비도 점입가경, 정말 바빠 죽겠네.
유미도 입구 의자에 앉아서 식권을 정리하고 거스름돈용 동전을 꺼내기 쉽도록 동전이 든 상자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있었다.솔직히 큰 냄비로 물을 끓인다든가, 철판 온도를 관리한다든가, 단팥죽 맛보기를 한다든가 그러고 싶지만,「카운터 보기」라며 식품에는 절대 손을 못대는 장소에 떨어졌으니 허락되질 않는다.
이유는, 바빠서 줄창 왔다갔다할 사람이 로테이션에 끼어들면 혼란스럽고, 불을 사용하는 곳에서 쪼르르 다니면 위험하니까.
─ 즉, 방해된다는 말이다.
그럼 돈 주고 받고 하는 것도 담당자가 바뀌면 곤란한 게 아니냐고 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출납파트(돈의 출납 책임자를 그렇게 부르는 듯)는 따로 있고, 유미와 요시노양은 사실상 어시스턴트라는 이름의 호객파트로 임명된 것이다.
산백합회 연극이랑 학원제 관련 용무가 생기면 언제든지 빠져도 좋다는 얘기다. 고맙지만, 재미없다.
등나무반의 시마코양도 유카타를 입고 한 시간정도 요요낚시[물에 띄운 요요를 낚는 놀이] 담당을 한다고 그러던데. 함께 장터에서 엔니치를 재현하자고는 하나, 회계랑 운영방법은 반마다 다른 것이다. 아무튼 「후지마츠 엔니치무라」는 계획대로 오늘 오전 10시부터 개장할 예정. 그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개장 15분 전쯤 되니 이미 전시회장 같은 곳을 둘러보고 온 내빈이랑 학생들이 흘러와서는 멀찍이 둘러싸서 새끼줄 안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아. 열심히 팔자"
묘하게 핫피[주로 장인들이 입는 옷. 마츠리 때 위에 걸치는 옷으로 유명]가 어울리는 요시노양이 꽉쥔 주먹을 치켜올렸다.
"우리들은 2학년 소나무반 아이돌. 식권을 팔고 팔고 마구 파는거야. .... 어라, 유미양, 왜 오오~ 안해?"
"오오.... 여전히 하이텐션이구나"
「어시스턴트」가 어느새「아이돌」로 변했고 말야. 요시노양, 신났다 신났어. 수술 후 첫 학원제 역시 파워전개 모드인가.「수술후 첫」도 슬슬 한 바퀴 돌았으니까 이젠 좀 진정할 때도 됐지 싶은데. 개장하고 30분 정도는 예상 이상으로 혼잡했다. 그래서 자칭 아이돌의 호객행위 같은 건 전혀 필요없이, 아니 오히려 한 때는 거꾸로 입장제한을 걸어야 할 정도로 대성황이어서 반 일동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유미님"
조금 사람들이 빠져나갔을 무렵, 토오코짱이 불쑥 나타났다.
"가게 잘 되네요"
"아, 괜찮으면 먹고 가"
유미는 출납파트한테 가서 식권 3장을 가불로 들고 왔다. 프랑크푸르트 3개 매상 추가. 나머지 2장은 노리코짱과 카나코짱 몫이다.
"얼만가요?"
"됐어. 내가 한턱 내는 거야"
"그럴 순 없어요"
지갑을 꺼내는 토오코짱.
"귀엽지 않다니까. 이럴 때는 그냥 잘 먹겠습니다 하면 되는 거라구"
이 대사,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라며 유미는 생각했다.
"한턱 받을 이유가 없는 걸요"
"이유? 이유라면─"
어라, 뭐였더라, 그 다음 나오는 말. 뭔가 단번에 납득할 수 있는 약속된 대사가 있었는데 말야.
"에, 그러니까, 연극을 도와주는 감사의 마음, 이랄까?"
"감사?"
그러자.
"잘 먹겠습니다~"
어디서 솟아났는지 몇 명의 남자들이 유미를 둘러싸고 고개를 숙였다.
"...."
어느새 숨어들었는지 집결완료한 하나데라 학생회 멤버들. 사복을 입고 있어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연극을 도와주는 감사의 마음. 그렇다면 우리들도 해당사항이 되는 거죠? 그쵸? 그쵸?"
"저기, 그러니까 그게..."
토오코짱네 1학년들은 귀여운 후배니까 라고 덧붙이려던 말은 염치없는 주문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프랑크푸르트, 오뎅, 단팥죽"
물론 입을 헛놀린 쪽이 잘못이다. 하지만 조금은 사양이란 걸 해보라구 소년들아.
"유키"
도움을 요청하려고 동생을 찾았더니, 한 번 눈을 마주치고는 휙 시선을 피했다. 이렇게 되면 수습하기는 물 건너간 셈인가. 요시노양도「난 몰~라」라며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다. 유미는 붕 떠버린 식권 3장을 책상 구석에다 확보한 후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 몫과 추가한 6장의 프랑크푸르트 식권비를 출납파트에게 넘겼다. 이번 달 용돈 핀치. 이놈 아우야, 어디 두고 보자.
"잘 먹겠습니다~"
식권을 손에 넣은 남자들이 노도와 같이 가게 쪽으로 몰려간 후, 토오코짱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방금 노리코양이랑 같이 수예부에 다녀왔는데요.「토리카에바야 이야기」의상도 몇 점 전시되어 있었어요"
"아, 정말?"
"네"
그 의상들은 연극 공연 직전에 체육관에 가지고 와서 끝나는 즉시 다시 전시할 예정이라 한다. 어느 쪽이든 선전효과가 있으니까 수예부 부장과 사치코님이 상의해서 그렇게 하기로 한 모양이다.
"나중에 나도 가볼까. 토오코짱네 반 전시도 보러가고 싶고"
"우리 반요? 그럼 토오코가 안내할게요. 유미님 이 곳 일은 언제까지죠?"
"에, 안내해 줄거니? 정말? 잠깐만, 비는 시간이 그러니까...."
그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요시노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은 무대극「토리카에바야 이야기」출연 이외에는 꼼짝않고 여기에 있을 예정입니다"
"잠깐... 요시노양도 참 무슨 말 하는거야?"
허둥대며 다가가자 요시노양 앞에는 세 명의 1학년이 서있었다. 그러니까 방금 그 소린 토오코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닌가 보다.
"그렇다곤 해도 흘려듣질 못하겠네"
유미는「잠깐 실례할게」하고 1학년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요시노양의 팔을 붙잡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끌고 왔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본인이 갑자기 나타나자 놀랐는지 세 명은「히약」이라며 신기한 비명을 질렀다.
"쟤네들이랑 대체 무슨 얘길 했는데?"
유미가 작은 목소리로 요시노양에게 물었다.
"유미양이 몇 시까지 여기에 있는지 물어보길래 대답한 거 뿐이야"
"하지만 그 대답 거짓말이잖아"
무대에 서는 시간 이외에는 계속 이곳에 있을 거라는 얘기는 물론 없다.
"그렇게 해두는 편이 좋다니까. 아까도 하나데라 교복을 입은 남자가 찾아와서, 유미양 쉬는 시간을 물어보더라구. 왜냐고 캐물었더니 시간있으면 유미양한테 안내받고 싶다나. 왠지 모르겠지만 유미양은 하나데라 학생과 리리안 1학년한테 인기있으니까 조심하라구.  오전에만 한다고 입이 찢어져도 말하면 안돼. 일일이 대응하다간 사치코님이랑 데이트도 물 건너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래도 그러네. 그럴 셈이었지만 일이 생겨서 잠시 위치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잖아. 뭐어, 나한테 맡겨달라니까"
요시노양은 유미가 골몰히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멋대로 결론을 내버리더니, 기다리고 있던 1학년 쪽으로 돌아갔다.
"... 그래도 괜찮을려나"
돌아오면서 유미는 뭔가 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렇지 참. 토오코짱을 기다리게 했어. 아직 얘기 도중이었는데.
"아차"
서둘러 돌아왔지만 이미 토오코짱의 모습은 없었다.
"세로롤 1학년이라면 어디로 가버리던데. 바쁜 것 같으니 실례하겠다면서"
그 자리에 있던 출납파트가 알려줬다.
"그래. ...고마워"
토오코짱도 참, 조금만 더 기다려줬으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유미양한테 잘 먹었습니다 라고 전해달라던데?"
"에? 토오코짱이 잘 먹었습니다 그랬어?"
출납파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책상 구석에 놔두었던 3장의 프랑크푸르트 식권이 사라져 있었다.

 

3

"실례합니다"
리리안 여학원 뒷문 바로 앞에서 누군가 카시와기 스구루한테 말을 걸었다.
"네"
평소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거기에다 마음도 여유로울 때면 그는 상큼하게 뒤돌아본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종교 권유에도 미소로 대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의 경우 싱긋 웃으며「시간 없군요」라고 거절할 수 있으므로 지금까지 커다란 실수는 없었다.
"저기... 리리안 학원제에 가시는 겁니까?"
말을 건 사람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네, 그렇습니다만?"
이 길은 리리안 여학원 뒷문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다.「아닌데요」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혹시 티켓 남았다거나 그러지는 않으신지..."
머뭇거리며 묻는 남성을 카시와기는 흥미롭게 쳐다봤다. 뭐랄까, 상당히 특징있는 남자다.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카시와기가 대답한 건, 눈 앞의 그가 도저히 암표장수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션은, 아침 만원전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매일 출동할 때마다 입을 법한 옅은 색조의 상하 슈트. 중년인데도 나름대로 맵시있는 차림새로 보이는 건 큰 키에 건장한 체격 덕분일테지. 그래, 딱 슈퍼마켓 광고전단지 같은 데서 포즈를 취하고 있을 법한 아저씨다.
(닛코갓코보다 약간 작을까. ... 그럼 상당히 크다는 거군)
하지만 그가 눈에 띄는 이유는, 단지「커서」만은 아니었다. 그가 안고 있는 짐이 샐러리맨 스타일과는 미스매치인데다 상당히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남는 티켓, 주실 수 있을런지요?"
얘기의 흐름상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만, 카시와기는 일단「왜죠?」라고 물어봤다. 간단히「자, 여기요」 할 순 없지만, 이유에 따라선 도와주지 못할 것도 없다.
"딸을 만나고 싶습니다"
"따님과, 만나고 싶으시다고요?"
참 이상하군.
"알고 있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죠. 딸이 리리안에 다니고 있으면 왜 직접 티켓을 못받았는가 하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전 틀림없는 그 애의 아버지입니다. 수상한 자가 아닙니다."
"아뇨, 따님에 대해선 잘 모르기 때문에 딱히 뭐라고는... 단지 당신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유감스럽지만 수상한 자라기보다 좋은 아버지로 밖에 보이질 않는군요"
카시와기는 생각한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키가 큰 샐러리맨풍 자칭「수상한 자가 아닌」남자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아뇨... 좋은 아버진 못됩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누구든지 남에게 말못할 집안 사정이란 게 있으니까, 깊이 관여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티켓을 드리는 이상, 무슨 일이 있으면 곤란합니다. 지금 신분을 증명할 만한 걸 가지고 계신가요?"
"면허증 정도 밖에"
남자는 슈트 호주머니를 뒤적여서 운전면허증을 꺼내 카시와기에게 건네주었다.
"이거면 됩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니이가타[新潟. 동경에서 약 270km 떨어진 일본열도 거의 중앙에 위치]에서 이렇게 먼 길을?"
면허증을 돌려주면서 카시와기는 물었다. 우연히 주소란에 눈이 멎었기 때문이다.
"네. 작년 고향에 돌아가서 가업인 농삿일을 잇고 있습죠"
자칭 「수상한 자는 아닌」에서 「좋은 아버지는 못되는」 남자는 호주머니에 면허증을 집어넣고서는 어깨 비스듬히 걸쳐 가슴 언저리에 안고 있던 커다란 짐의 위치를 「웃샤」하며 바로 했다.
"무거워 보이는군요"
카시와기는 무심코 말했다.
"하하하. 네. 하지만 익숙해졌으니까요. 게다가 두 번째고. ... 꽤 공백기간이 있긴 했습니다만"
과연 그렇군. 길 끝에 시선을 던진다. 오늘은 고등부 학원제다.
"그럼"
카시와기는 호주머니에서 티켓 다발을 꺼내들었다. 가장 위의 한 장을 빼고 나머지 11장을 트럼프 카드처럼 부채모양으로 펼쳤다.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헉"
그 많은 매수에 남자는 깜짝 놀랐다.
"다, 당신, 이 학교 관계자입니까?"
「아닙니다」라고 부정하며 카시와기는 상쾌하게 웃었다.
"그냥 이웃 학교 학생입니다. 행복하게도 여러 사람이 선물해 줘서 말이죠. 몸은 하나인데 티켓 한 다스면 아무래도 많겠다 싶어 송구스럽게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양마시고 고르세요"
".... 하아"
망설이다가 맨 끝에 있던 한 장을 뽑아든「아버지」에게 카시와기는「한 장 더 필요하지 않습니까?」하고 진지하게 의견을 물어봤다.
"하?"
카시와기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아버지」의, 품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뇨. 아기도 역시 사람 한 명으로 세지 않을까 해서 말이죠"

 

 

4

"자, 유미양. 프랑크푸르트 들고 방긋 웃어봐"
찰칵.
"요시노양, 오뎅 용기를「드세요」하면서 앞으로 내미는 느낌으로, 시선은 이쪽. 아,「앗, 뜨거」표정도 찍고 싶은데. 자, 츠타코양 지금이야"
찰칵, 찰칵.
"저기 있지, 이거 짜고치기[야라세. 미리 짜고 방송국 의도대로 촬영하는 것]라고 하는 거 아냐?"
유미가 식권판매대에서 계속 출납파트 어시스턴트를 하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신문부 야마구치 마미양과 사진부 타케시마 츠타코양이 들이닥쳐서는 요시노양이랑 같이 가게 안까지 끌고가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마침 손님들이 빠져나간 시간이었으니 프랑크푸르트 파트도 오뎅 파트도「쓰세요」라며 장소를 비워줬지만. 포즈를 취하면서도 뭔가 이건 아닌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미양은.
"무슨 말이니 유미양. 소나무반 두 사람이 벛꽃정 에이프런을 두르고 서빙하는 사진찍으면 그게 바로 짜고치기야, 짜고치기. 하지만 우리 반 사람이 우리 반 기획물로 일하고 있잖아. 어디가 잘못됐다는 건데?"
"그건 그렇지만"
"그치?"
얼굴 마주보는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과 로사 페티다 앙 부통.
 "모처럼 반 기획물이 엔니치무라인데 두 사람 사진이 식권판매하는 장면 밖에 없으면 팍 와닿는 게 없어서「리리안 학보」독자들도 시시할 거 아냐. 자, 다음은 단팥죽 코너"
"츠타코양"
뭐라고 말 좀 해주라. 그렇게 도움을 요청해도 그녀는 카메라를 내릴 생각을 안한다.
"난 마미양한테 의뢰받았을 뿐이니까. 뭐 신문에 내고 안내고는 사진이 나오고 나서 서로 상의하면 되지"
"그래 그거야. 불만은 나중에 접수하겠어. 우리들 바빠. 2학년 전체랑 눈에 띄는 문화부를 발로 뛰며 취재해야 하니까. 앗! 로사 기간티아의 유카타 모습, 이거 끝내주는데"
가게보기가 끝나고「후지마츠 엔니치무라」를 나서려던 시마코양을 억지로 붙들고서는 요요를 손에 들게 하고 몇 장(한 장이라고 했으면서) 사진을 찍은 후,「리리안 학보」편집장과 사진부 에이스는 바람처럼「후지마츠 엔니치무라」를 떠나갔다.
"아주 못말린다니까"
"오늘 하루종일 저 상태겠다"
이런이런 바쁘신 분들. 입구 근처 제자리로 돌아오니까 시마코양이 노리코짱이랑 같이 바로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부터 시마코양이 교복으로 갈아입은 후, 둘이서 학원제를 돌아다닐 거란다.
"수고했어. 나중에 봐"
따끈따끈한 쇠르(자매)를 손 흔들며 배웅하자, 노리코짱이「프랑크푸르트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천만에"
토오코짱한테서 식권을 받았나보다.
"그럼 기합을 넣고 팔아치워 볼까"
공식 구속시간은 정오까지였으니 이제 30분 정도 남았다. 아마 점심시간 전후가 가장 혼잡할 것으로 예상되니 이제부터가 마지막 파이팅이다.
"오뎅에, 감주, 프랑크푸르트에 솜사탕 사세요"
"후지마츠 엔니치무라는 이쪽입니다"
손님을 불러모으고 있는데 학교 건물을 따라서 눈부신 옷을 입은 남성 두 명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왠지 굉장한 존재감이다"
유미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적어도 시청이라든가 은행, 학교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저런 차림을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 저거랑 무지 비슷한 스타일을 최근에 봤어"
유미를 어깨 뒤에서 껴안으면서, 라기 보다, 유미 뒤에 숨어서, 라는 편이 위치적으로 정확한 요시노양이 중얼거렸다. 약간 목소리가 떨리는 느낌.
"심야 TV에서 하던 임협영화에서말야, 주인공 스킨헤드가 칼을 마구 휘둘러 라이벌 조장을 난도질해서... 아, 어떻게 된거야, 한 사람은 그 조장 빼다박았잖아. 그래서 피투성이가 된 조장이 마지막 힘을 짜내 숨겨둔 피스톨로 스킨헤드 등뒤에 한 발 쾅 먹이고 The End"
"왜 그런 영화를?"
"옛날 시대극 녹화하려 했는데, 예약채널을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하지만 한번 보기 시작했더니 금새 빠져들어서"
요시노양 왈.「무섭지만 엄청 멋있더라」라나. 그 주인공 두 사람이.
"어떡해. 이쪽으로 오고 있어. 여기서 치고박기 시작하면 어쩌라구"
"잠깐만. 영화랑 혼동하지 마. 야쿠자 적끼리 사이좋게 학원제에 나타날 리가 없잖니?"
"모르는 거야. 우리 반에 쳐들어와서..."
"반[組]이랑 조직[組]을 착각하지 말아줘"
요시노양에겐 그 영화, 상당히 강렬했던 모양이다. 여기 적어도 한 명, 자신들의 존재에 떨고 있는 소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임협영화 빼다박은 두 사람은 드디어 「후지마츠 엔니치무라」 입구까지 왔다. 우선 힐끔 내부 상황을 보더니 경단처럼 포개져 있는 유미와 요시노양에게 다가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프랑크푸르트 2개하고[니혼또]─"
"일본도[니혼또]!?"
요시노양이 외쳤다.
"그리고 오뎅 두 접시. 아, 오뎅에 건모[유부의 일종. 두부 속에 야채, 고기를 넣고 튀긴 것] 들어가?"
"총까지[건모]!?"
하여간 요시노양도 참. 주문에 일일이 오버하며 날뛴다니까. 그래도 주위 사람들에겐 그저 손님 주문을 복창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안보이겠지만.
"일본도와 총...."
틀렸다. 그 쪽 사람이라고 굳게 믿어버린 나머지, 뭘 들어도 요시노양은 전부 위험한 물건으로 연결시키고 마는 것이다.
"정신차려 요시노양. 프랑크푸르트랑 오뎅 식권 2장씩이라니까"
유미는 다른 세계로 가버린 요시노양의 어깨를 흔들어 현실세계로 불러 들이는 한편, 손님쪽도 모른 척 할 수 없어 손님접대도 해야만 했다.
"실례했습니다. 저기 그러니까, 오뎅에 건모는 안들어 있어요. 미리 포장을 해놨기 때문에 내용물은 정해져 있거든요. ... 저기, 손님?"
스킨헤드가 요시노양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오뎅 건더기보다 그쪽이 흥미있나 보다.
"요시노양이랬나. 혹시, 시마즈 요시노양?"
스킨헤드가 말했다.
"우왓! 어느새 내 이름을"
이제 끝장이야, 라며 도망치려는 요시노양.
"하하하, 재밌는 애구나, 요시노양. ... 알았다. 그럼 네가 후쿠자와 유미양이지?"
"아, 네"
그제서야 유미도「이 사람,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TV에서 우연히 본 그런 케이스는 아니다. 그 임협영화도 안봤으니까.
(으─음, 그러니까..)
그렇게 오래된 건 아냐. 한 1개월전쯤. 그 땐 선글래스 같은 건 끼지 않았었고, 이런 패션도 아니었어. 어떤 의미로는 임팩트 면에서 뒤지지않는 차림새였─.
"아!"
알았다. 가사차림으로 달리던 스님이다.
"시마코양 아버님!"
"기억해 줬구나. 언제나 딸이 신세지고 있단다"
"저야말로. 그렇다곤 해도, 요전번하고는 완전히 다른 차림새셔서..."
"아니, 뭘. 체육제 때 나쁜 인상을 준 모양이야. 집에 가서 시마코한테 혼났지.
 카톨릭 학교니까 신경 좀 써서 종교색이 없는 차림을 하고 오라고 말야. 그래서 변장이랄까, 발상을 전환한 스타일로 한 거란다"
지나치다구요. 유미는 맘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차림을 본다면 시마코양 또 머리를 감싸쥘 거야. 가게보기가 끝나 이 자리에 없는 것이 천만다행.
"여긴 시무라씨. 이 분이 전에 본 TV에서 힌트를 얻어 코디네이트해 주셨지"
시마코양 아버님이 옆에 있던「조장」을 소개했다.
"시무라씨... 면 혹시?"
시무라씨라고 불린 할아버지는「맞아요」라며 유미에게 V사인을 보냈다.
"걸프렌드 노리짱이 언제나 신세지고 있습니다"
".... 저야말로"
노리코짱의 보이프렌드, 타쿠야군은, 상상했던 타쿠야군과는 조금, 아니 상당히 다른 인물이었다.

 

5

 

"수고했어"
유미는 속삭이듯이 반 아이들에게 말하곤 슬쩍「후지마츠 엔니치무라」를 빠져나왔다. 교대시간이니까 본래라면 당당히 나와도 되겠지만, 요시노양이「연극 출연 이외에는 꼼짝없이 여기에 있을 거야」라고 쓸데없는 말을 해준 덕분에 화장실이라도 가는 것처럼 스리슬쩍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 장본인, 요시노양은.
"유미양, 이제 뭐 할건데? 사치코님이랑 약속이라도 있어?"
"언니는 1시까지 반에서 담당하는 게 있대. 그러니까 30분 정도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다가, 사치코님 반 전시물을 보고, 그 후엔 되도록이면 함께 토오코짱네 연극을 보러 갈 계획이야"
「작은 아씨들」공연시간은 오후 1시 30분,「토리카에바야 이야기」공연시간은 3시 30분. 두 연극 사이에 합창부, 경음악부, 만돌린부 합동콘서트인「작은 음악회」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연극부 무대를 보고 나서 대기실로 가도 시간은 충분했다.
"난 레이짱하고 데이트. 벚꽃정에서 만나기로 했어. 아, 괜찮다면 유미양도 사치코님 교대시간까지 함께 차라도 안할래?"
"사양할래. 발명부라든가 미술부, 수예부, 가보고 싶은 곳이 잔뜩 있으니까"
데이트란 말을 듣고 같이 있을 수 있겠어?
"사진부는 사치코님이랑?"
"응. 츠타코양이 작년에 찍은「패널 앞에서 한 장」앞에서 한 장 더 찍고 싶대"
"거 참 안되셨습니다 그려. 그럼 나중에 봐"
요시노양은 벚꽃정에 가기 위해 길 근처로 난 비상구로 교사 안에 들어갔다. 유미가 자, 그럼 어디부터 돌까 하고 궁리하며 건물을 따라 걷고 있을 때 느닷없이 사람이 튀어나왔다.
"아, 위험해"
"꺄앗"
이쪽 어깨와 저쪽 어딘가가 부딪친 모양이다. 충격에 균형을 잃은 유미는 땅바닥을 짚으며 풀썩 엉덩이로 주저앉았다.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마찬가지로 수풀에 헛디딘 발을 빼면서 그 사람은 허둥지둥 유미 곁으로 다가왔다.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였다.
"다친 데는 없나요? 저도 참 서두르다보니 그만"
"괜찮아요. 넘어졌다기 보다 비틀거린 것뿐이니까요. 그보다 당신은요?"
유미는 점퍼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다리를 봤다. 몇 군데 가지에 긁힌 상처가 나있었다.
"아, 긁힌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피가 번질 지도 몰라요. 양호실까지 안내해 드릴까요?"
"괜찮아요. 신경안쓰셔도 되요"
그녀가 싱긋 웃어보이자 더 이상 말해보지 못하고 유미는 자신의 스커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서두르고 있다고 했으니까, 어디로 데려간다거나 해서 발을 묶어 두고 있으면 폐가 될 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오뎅은 있나요?"
"에? 오뎅─? 오뎅은.. 있죠. 요 앞에"
대답하면서「왜 하필 오뎅?」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두르는 이유가 오뎅과 관계있는 걸까. 오뎅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거고, 다른 일로 절박한 상황인 걸까. 아니면 지금 오뎅 당번을 하고 있는 누군가와 아는 사이일까. ─ 짧은 시간동안 유미의 두뇌가 빙빙 회전했다. 하지만 지금 이 사람이 서두르는 건 사실인 만큼,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후지마츠 엔니치무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저기... 오뎅은 요 앞에 있나요?"
"네"
"그래요. 밖에 있군요"
의외라는 듯 중얼거리며 그녀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고맙습니다. 그럼」하고 목적지를 향해 뛰어갔다.
"엔니치무라니까 밖에 있지"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뭔가 서로 딴 얘기를 한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기분만으로 뒤쫓아가는 것도 좀 그래서 우선은 더러워진 손을 씻으러 근처 입구를 통해 교사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손님용 출입구지만 오늘은 어디로 출입하건 상관없다. 들어가자마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유미짱」하고 불렀다.
"와아, 요코님! 세이님!"
전(前) 로사 키넨시스와 전(前) 로사 기간티아가 함께 있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그동안 별고 없으셨어요. 와주셔서 기뻐요"
두 사람에게 달려간 유미는 깡총깡총 뛰었다.
"초대해줬으니까. 만사 제쳐놓고 왔지 뭐"
그렇게 말은 하지만, 홍·백이면 색이 하나 모자란다.
"그런데 에리코님은요?"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는.
"우리 둘밖에 없으면,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보네"
"그만큼 우리 트리오가 인상깊었구나"
지겹다는 기색이 역력한 두 사람. 여기 올 때까지 꽤나「에리코님은요?」,「에리코님은요?」하고 질문공세를 받았나 보다.
"둘밖에 없으면? 그럼 역시 좀전까지는 에리코님이 계셨단 말인가요?"
"땡~. 꽝이야. 같이 있던 건 유코짱이었지"
퀴즈에서 오답임을 알리는 사회자처럼 세이님이 말했다.
"유코짱?"
"응. 입장하기 전에 길에서 주웠지. 그런데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도망쳐 버렸어"
"유코짱은 그럼"
사토 세이님은, 또 고양이인지 뭔지랑 친해진 모양이다. 게다가 곧바로 유코같이 아주 사람같은 이름까지 붙이고서.
"아!"
아무 말없이 뭔가를 생각하던 요코님이, 조그만 백열전구가 팟 켜진 것처럼 중얼거렸다.
"알았다. 누구랑 닮았나하고 줄곧 생각했더니, 유코짱은 유미짱이랑 닮았던 거야. 얼굴이 아니라 분위기가. 아아, 후련하다"
".... 별로 안기쁜데요"
상대는 고양이잖아요. 하지만 요코님은「그러니?」하며 넘어가 버린다. 생물간의 구분같은 건 그다지 신경안쓰시나 보다.
"유미짱, 사치코네 반에 갈래?"
"아, 안내해 드릴게요"
이쪽예요, 하고 앞장서려고 할 때, 유미의 시야에 어떤 물건이 확 들어왔다.
"아앗, 이건...!"
머릿속에 조그만 전구가 팟 켜지는 것을 지나쳐, 흘러들러온 강력한 전류에 견디지 못하고 퍽 끊어진 느낌. 유미는「그걸」 손가락으로 가리킨 채,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까 그 사람이 찾고 있던 게, 오뎅이 아니라─"
─오·뎅와. [お電話. 전화]
(.... 전화에「오」같은 거 붙이지 말라구)
사무실 앞에는 녹색의 카드식 전화기가 듬직히 놓여 있었다.

[※ "오"는 공손의 기분을 나타내는 접두어. 유코는 "전화(뎅와)"란 의미로 "오·뎅와"라고 했지만,
 유미는 오뎅·와("와"는 조사로 우리말의 "은"), 즉 "오뎅은"으로 잘못 들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