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6권 버라이어티 기프트 -3- 양 한마리, 울타리를 넘어

                                                         버라이어티 기프트 III

 

 

「안 봤어요. 안 봤다구요.」 
  네 명한테서 태클을 먹은 토오코양은 데친 낙지처럼 얼굴이 시뻘개져 항의했다. 
「우선, 부정 참가는 규칙 위반이 아닌가요?」 
「놀랐어. 토오코 입에서 규칙 같은 말이 튀어 나오다니.」 
  노리코쨩이 대뜸 말했다. 그러자 토오코쨩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무슨 뜻이야?」 
「무슨이라니? 말 그대로야. 그렇지, 카나코씨?」 
「그래요.」 
  선뜻 맞장구 치는 카나코쨩. 세 사람은 같은 반이기 때문에 단짝은 아니라도 서로 동향을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어머, 불쾌해. 둘 다, 뭐야.」 
  말을 분명히 하라고 위협당하자, 노리코쨩이 입을 열었다. 
「……하얀 판쵸(역주: 멕시코 등지에서 입는 덮개)의 프릴.」 
  거기서 유미는 「아」하고 짐작이 갔다. 예전에 노리코쨩과 잡담하다가 귀담은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시노씨는 아무한테도 들은 적 없는데다가, 1학년 동백반도 아니기 때문에 어리둥절하며 되물었다. 
「하얀 판쵸의 프릴이라니?」 
  그러나 그런 소박한 의문도 토오코쨩의 복식 호흡에 기댄 고함에 싹 지워져 버렸다. 
「그 건, 규칙 위반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러면 안 된다고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래, 그래.」 
「바로 그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얘기하는 거야.」 
  캬앗, 하고 소리를 지르는 토오코쨩. 분명히 말하자면, 귀가 따갑다. 왜냐하면 여기는 강당도 체육관도 아냐, 작은 방이라고. 
「그러니까 뭐야, 그 건. 1학년생 뿐만 아니라, 유미까지 「알고 있어.」란 얼굴인데, 난 뭔지 모르는 거야? 불쾌해.」 
「요시노씨, 그 건 말이에요――」 
  아아, 이 쪽도 저 쪽도. 뺨이 부풀어 올라 있고 시뻘건 얼굴을 해서, 마치 다루마(역주: 달마 대사를 모델로 한 오뚜기 인형)처럼 열 받아 있어서. 
「응？」 
  달마 대사? 유미는 문득 의문을 떠올렸다. 
「달마 대사는 누구지? 부처님인가？」 
  질문을 받은 노리코쨩은, 그러자, 
「또다시, 유미님은.」 
  ‘아휴,’ 하고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다.

 

 

 

　　　양 한 마리가 울타리를 넘어

 

 

　　　　　１

 

「비가 그치지 않네요.」 
  노리코쨩이 창문에서 하늘을 올려 보며 중얼거렸다. 
「응, ……그치지 않네.」 
  유미는 대답했다. 어째서 그치지 않는지 물어 본 게 아니기 때문에, 하나하나 「장마니까 그렇지.」란 대답을 하는 건 눈치없는 짓이지. 
  이 건 단지 임기 응변의 의사 소통. 알맹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는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걸 알고 있어요.」란 신호다. 
  방과후였다. 
  학생회 본부인 장미의 저택 2층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넓은 방이 아니지만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드는 건 역시 평소에 일대일로 얘기해 본 적이 없는 후배와 단 둘이 있는 탓인가. ――유미는 약간 웃자란 단발머리의 뒷모습을 바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니죠 노리코쨩은 1학년생으로 유미의 동급생인 시마코씨가 최근에 로사리오를 건네준 소녀다. 즉, 「친구의 여동생」인 셈이다. 
  그 시마코씨가 이 장소에 없는 이유는 학급 모임이 있어서 조금 늦어지기 때문이었다. 
  황장미 자매인 레이님과 요시노씨는 모두 부활동 때문에 사이좋게 결석. 유미의 언니인 사치코님은――. 거기까지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사치코님은 쭉 결석중이었다. 유미와 다툰 채,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오늘은 도대체 며칠 째가 되는 걸까. 날을 세어 봐야 허탈해지기 때문에 세어 보지 않지만. 
  (화해하고 싶어, 아, 화해하고 싶어. 화해하고 싶어어어어~~) 
  ――뭐, 그 건 일단 접어 두고. 
  즉, 그런 사정 때문에 노리코쨩과 유미는 현재 장미의 저택에 단 둘이었다. 
  가을의 학원제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남았지만, 시마코씨가 점심시간에 지시해 둔 일을 마친 뒤에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꽃봉오리인 두 사람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이런 때, 시간 때우기용 잡담이라도 하려다, 그제서야 유미는 깨달았던 것이다. 
  (나와 노리코쨩 사이의 접점은 거의 없어……) 
  그런 바, 어떤 화제를 꺼내야 좋을지, 전혀 파악하지 못 했다. 
  (에, 그러니까.) 
  노리코쨩은 불상 감상이 취미인 고풍스러운 소녀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뜸 「나라(역주: 奈良, 일본의 옛 수도)의 대불은 크네요.」라고 얘기하는 건 오답이란 것 정도는 유미조차 알고 있었다.

  그 때였다. 
  노리코쨩 쪽에서 「비가 그치지 않네요.」라고 말을 걸어 왔다. 
  비가 그치지 않네요. 
  말그대로, 모범 답안이란 느낌이 드는 한 마디였다. 
  화제가 없다 싶으면 날씨 얘기. 
  그 거, 누구한테서 들었더라. 
  야구 얘기와 종교 얘기는 금지사항. 어머나, 그 게 아니라 정치 얘기였던가.   어쨌든, 부담없는 이야기가 최고다. 확실히, 비를 좋아하는 사람하고 맑은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대판 싸웠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 없으니. 
「노리코쨩은 비가 싫어?」 
  ‘그럼,‘하고 유미는 그 쪽으로 화제를 이끌어 나가기로 했다. 
「네? 별로, 좋아거나 싫지 않은데요. ……그렇다기 보다는, 그다지 생각했던 적이 없다고 할까요.」 
「후응.」 
「그렇게 말씀하시는 유미님은요?」 
「조금, 질색이야. 뭐, 원래 아주 좋아한 편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심해졌어.」 
  비는 떠나버린 언니의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잃어 버렸던 우산은 되돌아 왔지만, 사치코님과의 관계는 그 날 차갑게 이별한 채 그대로였다. 날마다 계속 내리는 비가 비닐 랩처럼 두 사람의 마음을 가둬 놓고 있었다. 
  (아아, 만나고 싶어. 만나서 화해하고, 언니께서 넥타이의 모양새를 바르게 고쳐 주셨으면 좋겠어.) 
   ――이러면 안 된다. 또다시 사치코님을 떠올려 버렸다. 
  다른 일을 떠올려서 언니와 관련된 응어리를 내쫓지 않으면 장마철이니 정말로 뇌수가 썩어버릴 거야. 
  그렇게 유미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노리코쨩이 질문을 걸어왔다. 
「유미님은 쭉 리리안이신가요?」 
「으응.」 
  유치원 때부터 계속. 그래서 족히 14년. 이제 완전히 리리안 물이 들었다. 
  “하지만 왜 물어보니?”라고 유미가 말하기 전에 노리코쨩은 턱을 가볍게 괴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그럼, 고등부의 면접 시험은 경험해 보지 않으셨겠네요.」 
「없지만. ……왜?」 
「아니요. 다만, 경험자라면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듣고 싶어서요. 참고삼아.」 
「헤에?」 
  면접 시험의 질문 내용이라니. 보통, 이런 식이 아닐까. 
  예를 들어. 
  “이 학교를 지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든지. 
  “중학교에선 어떤 부활동을 했습니까?”라든지. 
  “고등학교에서는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등등 
  중요하지만 부담없는 것들. 왜냐하면 상대는 중학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리코쨩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중얼거렸다. 
「저희 반에는 중등부에서 올라 온 학생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 모르지요. 그 면접이 리리안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거였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꿈이었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시선을 약간 멀리 던지는 노리코쨩. 노리코쨩의 대략 4개월 전 기억은 경사 45도에 1미터 쯤에 떠올라 있는 것 같았다. 
  그 것이야 어쨌든 간에. 
  되돌이켜 보면, 꿈이었나 싶은 면접이라니 도대체…… 
「저기, 노리코쨩?」 
  그렇게 되면, 유미로선 이제 미간을 좁히며, 「여보세요?」라고 물어볼 수 밖에 없다. 
  “그럼, 도대체 어떤 질문에 대답해야 했니?” 라고.

 

　　　　　　　　　　＊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고향의 공립학교에 다녀서, 자연스럽게 고등학교도 공립의 남녀공학에 갈 생각을 하고 있던 나한테 사립 여학교는 평생 인연이 없는 장소라고 여겼다. 
「으응. 역시 카톨릭 여학교.」 
  그 것이 학원의 높은 정문과 빙 둘러 싸고 있는 높다란 벽을 올려 본 나, 니죠 노리코의 첫인상이었다. 
  한 걸음 안에 들어 가면,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은행나무 가로길이 이어져 바깥에서 내부를 엿보는 시선을 간단히 막았다. 아마 소중히 가꿔온 온실의 꽃을 해충의 피해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책이겠지.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아가씨 학교라고 생각했다. 요즘 이런 학교가 있다니. 
  그런데 이런 학교에 다니길 희망하는 동갑내기 소녀가 많이 있구나 싶었다. 
     나는 리리안 여학원 고등부의 수험 합격율이 꽤 낮다는 걸 외부 소식통의 정보로 알고 있었다. 
「진심이니?  리리안 여학원은 보험용 고등학교가 아니란다.」 
  중학교의 담임 선생님께서는 진로를 지도하는 최종 면담에서 지망교를 알게 되자 마자 눈을 부릅뜨며 말씀하셨다. 합격되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 합격하게 되면 공립 고등학교의 수험을 기다리지 않고 리리안으로 결정하라고 하셨다. 우리 중학교에서 리리안의 고등부로 진학한 학생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대단한 학교인 줄 몰랐다. 리라안 졸업생이신 대숙모(역주: 할아버지의 여동생)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응시한 나는 속 편하게 정문을 빠져 나와 사박사박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등부 입학 시험장」이라고 적힌 입간판의 화살표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느릿느릿한 사람의 흐름이 어김없이 목적지로 안내해 줄 것 같았다. 
  눈 앞에는 다채로운 교복이 걷고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어디에든지 흔한 공립 학교의 감색 표준형 교복이 있는가 하면, 디자인을 최근 고친 듯한 느낌이 드는 신세대틱한 밝은 색의 교복도 있었다. 블레이저 코트를 입은 사람, 세일러복을 입은 사람, 드문드문 사복에다가, 그 가운데는 유명 사립 중학교의 교복마저 섞여 있었다. 
  교복의 종류에 관계 없이 그녀들은 한결같이 사뿐사뿐 품위있게 걷고 있었다. 같은 버스에 동승하던 소녀는 차 안에서는 마중나온 어머니한테서 주의 받을 정도로 시끌법석하게 얘기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딴 사람인양 정숙했다. 마치 입을 열면 끝장이 나고, 주문이 풀려 버릴 거라고 얘기하는 듯이.   정문을 들어간 순간부터 그녀들의 입시가 시작되는 것이다. 고생이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꾸준히 걸어가자, 도중에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장소가 있었는데, 왠일인지 거기에 인파가 밀려 있었다. 
  목욕탕의 배수구를 막는 머리카락처럼,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는 것이었다. 
  뭐지, 어머. 
  눈을 좁히며 바라 보니, 소녀들이 멈춰 서서 울창하게 우거진 언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 진 숲)을 향해 진지하게 손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 건 예전에 TV 와이드쇼로 보도된 기이한 신흥 종교의 신자를 방불케하는 모습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가톨릭도 종교의 하나. 그 것도 몇 손가락 안에 들만큼, 전세계적으로 메이저급인 것이다. 다만 그저 역사가 있느냐 새롭냐 정도의 차이지, 양 쪽이 겹쳐 보이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정어리의 머리에다가 손을 마주치는 것이나 성모 마리아상에 손을 마주치는 것이나 신앙이란 명목하에 평등한 것이다.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앞에 있던 세일러복의 소녀가 뒤돌아 보면서 말했다. 
  나는 단지 호기심 때문에 멈춰 서서 소녀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쳐다 보고 있었던 건데,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걸로 오해받았나 보다. 
「아니요, 저는.」 
  오랫 동안,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을 줄곧 경배해 온 이 손을 마주치거나 해버리면 성모 마리아님께 죄송스럽지. 
「저는 4월부터 이 학교에 다닐 수 있기를 기도드렸어요. 당신도 꼭 들어가고 싶으시죠?」 
「하아.」 
  친절하게 말을 걸어 준 그녀한테 미안하지만, 나는 이 학교에 다닐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그러니 만일 한 번 손을 마주치면 그 만큼 혜택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면 내 몫을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겠지. 
  하지만, 그 걸 일일이 설명하면 까다로운 것 같아서 여기선 본의 아니게 말없이 손을 마주 치고 지나가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합격기원 같은 걸 하진 않았다. 
  본래 나는 불상 애호가지만, 독실한 불교 신자인 것도 아니라서 불상을 배관할 때, 합장하더라도 대개 소원을 빌지 않았다. 
  가족 누군가가 불치병에 걸렸다면, 아마 귀신이나 부처님의 힘에 의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니까. 
  내가 성모 마리아상을 향해 손을 마주쳐서 만족했나 살펴 보려고 눈을 뜨자, 아까 전의 그녀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한참 앞을 걷고 있었다. 
  나는 앞 사람을 모방해서,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해요」라고 바로 뒤에 있던 블레이저 코트 차림의 소녀에게 말했다. 생긋 웃는 것도 잊지 않고. 익숙치 않은 일이었지만, 해 보니까 의외로 능숙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었다.

「――――」

  여학교란 건 여학생 수가 많다는 거지. 
  ――그 것이 시험장인 교실에 들어 갔을 때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당연히, 수험생은 모두 여자다. 마중나온 사람이란 덤이 떨어져 나가니 , 교실 안에 있는 동갑내기 소녀들의 집단이 묘하게 리얼해서.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거기에는 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 버린 듯한, 그런 위화감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목동이라고 한다면, 높은 울타리 안에 어린양 암컷만 모아서 어쩔 셈인지 난 꼭 물어 보고 싶었다. 
「아아, 여보세요. 이 쪽의 자리에요. 저한테서 대각선 뒤.」 
  소녀 한 명이 다가와서 내 손에 쥐고 있던 수험표 번호를 확인하더니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아, 친절에 감사드려요.」 
「아니에요. 오늘 시험으로 결판 난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이에요.」 
「에……네에」 
  사실은, 난 교실에 들어가고 나서 여자가 많다는 것에 압도되어 얼떨결에 굳어 버린 것이었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그 게 수험 스트레스였다고 착각해 버렸나 보다. 
「『사람』이란 한자를 손바닥에 써서 삼키면 돼요. (역주: 긴장을 풀기 위한 일본의 민간요법)」 
  가까운 좌석에 앉아 있는 소녀도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 네.」 
  하지만, 왜 여기선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남을 보살펴 주는 걸까. 경쟁률이 높은 학교라면 때 맞춰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모두 라이벌이 아닌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리리안 여학원에 들어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소녀는 천사같은 마음가짐을 지닌 사람이어야 되나――。 
  재차 나는 역시 여기는 내가 입학할 학교는 아니라고 느꼈다. 
  시험은 아주 평범하게 국어, 영어, 수학의 세 과목이었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치른 다른 학교의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그 전 날 친 사립 명문 여학교의 시험보다 한참 난이도가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난이도와 경쟁률이 비례한다고는 하기 힘들다. 
  그보다, 「네?」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건 오후부터 치뤄진 면접 시험이었다. 
  지정된 교실에 들어가서 이름과 출신 중학교를 말하고 자리에 앉도록 재촉받았다. 면접 시험관은 다섯 명. 형식으로 보면 아주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난 첫 질문을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비커에 액체가 들어 있습니다. 산성 아니면 알칼리성,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어떤 수로 알아 낼 수 있을까요?」 
「…………」 
  중학교에서 선생님을 상대로 면접 시험의 예행 연습을 여러 번 했지만, 이런 질문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배부된 「자주 묻는 면접 질문의 예시 모음」에도 물론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대부분, 「이 학교를 응시한 이유」나, 「이 학교에 합격하면 무엇을 합니까?」같은, 그런 식의 질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귀가 캣치한 낱말은 어째선지 「산성」 「알칼리성」. 
  입시 과목에 과학은 들어 있지 않았지만――질문 받았으니 거기에 뭔가 반응을 보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 게 면접 시험이라는 것이었다. 
「저기, 리트머스 시험지는 사용해도 괜찮습니까?」 
  나는 물었다. 
「괜찮단다.」 
   질문한 시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흰 옷을 입고 있어. 과학 교사인가. 
「하지만 공교롭게도 빨간색 리트머스 시험지는 떨어졌고, 파란색 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떡하죠?」 
「그 액체에 파란색 리트머스지를 담궈서 빨간색으로 변하면 산성입니다.」 
「그대로라면?」 
「알칼리성입니다.」 
「중성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방금 전에 산성 아니면 알칼리성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아, 그랬나.」 
  사마귀처럼 생긴 중년 교사는, 「실수야, 실수」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두 번째 문제. 원자 기호다. 」 
「……요츠바 선생님,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한 가운데에 앉아 있던 수녀님께서 흰 옷을 나무라자 다음 질문자로 넘어갔다. 
「니죠씨. 저희 리리안 여학원은 가톨릭 학교입니다. 니죠씨는 기독교의 기도를 외울 수 있나요?」 
「아멘.」 
  내가 당당하게 대답하자 수녀님은 약간 벌쭘하셨다. 뭔가 잘못 했나 싶었는데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기독교에 관해 알고 있는 걸 얘기해 보세요.」 
「네. 1549년, 프란시스코?자비에르에 의해 카고시마에 전파되어, 1613년, 에도 막부에 의해 전국에 기독교 금지령이 내려져 신앙 활동이 금지 되었습니다. 
  내 대답을 듣자, 수녀님은 이 번에 아래를 향해 조그맣게 웃으시며 「화학 뿐만 아니라 일본사도 자신있나 보네요.」라고 중얼거리셨다. 
「그 외에는, 더 이상 없나요?」 
  수녀님의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 시험관이 역시 웃음을 띈 채 물었다. 이 화제를 이렇게까지 질질 끌지 않아도 될텐데. 
「에,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함은 성모 마리아입니다.」 
「정답이에요.」 
  이 건 퀴즈인가 싶었다. 
  하지만, 뭐어, 면접은 정답 비율에 관계없이 그 대답으로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는 제도지만. 
「다음은, 이 학교를 지망한 이유를 얘기해 보세요.」 
  제일 나이가 들어보이는 반들반들 머리의 교사가 간신히 핵심에 도달한 질문을 했다. 
「이 학교 출신이신 대숙모의 희망사항이십니다.」 
  “호오,”  하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산성 알칼리성의 요츠야 선생님이 바로 옆의 서류를 사르륵 넘기시는 걸로 봐서, 거기에 응시자의 개인 정보가 적혀 있나 보다. 
「그러면, 학생이 원하는 곳은 다른 학교인가요?」 
  중년의 통통한 여성이 재빨리 물었다. 
「네.」 
  나는 똑똑히 대답했다. 그래서 떨어진다면 어쩔 수 없다.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합격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연 성직자라고 해야 하나. 한 가운데에 듬직한 자세를 지닌 수녀님은 제일 지망교가 아니라고 알게 되어 화내시기는 커녕, 대범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군요. 제일 지망교에 합격하면 좋겠네요.」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좋아요.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교실에서 나왔을 때, 나는 이 걸로 이 학교와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졌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２

 

「――그런데, 왠일인지 단단히 매듭지어져 연결되어 있더군요.」
  노리코쨩은 쓴웃음 지었다.
  그래 그래. 유미는 마음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노리코쨩은 몇 년에 한 번 밖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는 불상을 보러 교토에 갔다가 큰 눈이 내려서, 제일 지망이었던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볼 수 없었다는 드문 경력을 지닌 사람이었지.
「싫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싫은 예감?」
  노리코쨩은 「체념했다」란 말에 딱 들어 맞는 표정으로 말했다.
「면접을 끝내고 복도에 나오니, 중앙정원을 사이에 둔 반대 편 학교 건물의 교실 창문이 보였어요.」
「으응.」
「그 창문에 메세지가 쓰여져 있어서.」
「아아」
  유미는 퐁, 하고 손뼉을 쳤다. 그러자, 노리코쨩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고 할까, 작년에 우리도 했거든. 도화지에 글자를 써서 유리창에다 붙이는 거지?」
「그 거, 매년 있는 일인가요!?」
「아니, 글세. 잘 모르지만.」
  고등부의 입학 시험 날, 같은 시각에 고등부로 진학하길 희망하는 중등부 3학년은 완전히 똑같은 내용의 필기 시험을 친다. 중앙 정원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학교 건물에 있는 미래의 동급생을 향해, 창문에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붙이자고 한 건 대체 누구였을까. 그 제안을 한 동급생이 선배들의 전례를 따라했는지 아닌지는 유미도 몰랐다.
「제가 본 건 도화지가 아니라 저 거에요. 저기, 크리스마스 같은 때 창문에 눈 그림에 쓰는 스프레이 같은 거요.」
「헤에……」
  한 해가 지나면, 나름대로 진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창문 반대편에서 읽으려면 거꾸로 써야 되잖아요? 창문에다 하나하나 「4」「월」「부」 「터」「잘」「부」「탁」「드」「려」「요」라고 적어 놨지만, 「잘」을 뒤집어 놓은 거에요.」
「푸훗.」
  흐뭇해서, 유미는 엉겁결에 웃음소리를 냈다. 좌우가 거꾸로 된 글자를 써 놓고도 아무도 그 사이에 차이를 눈치채지 못 한 불행. 그 막바지 순간의 느슨함이 중학교 3학년의 미숙한 점이겠지만.
  「’잘 못 적었어요.’라고 마음 속에서 딴죽을 걸면서, 어째선지 제가 그 메세지에 걸려 버렸다고 생각했어요.」
「그 게 예감이었어?」
「뭐어,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정도의 얘기지만요. 사실, 메세지 보고 “잘 부탁드려요.”라고 대답해야 하나요?」
  노리코쨩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얘길 하니 오히려 우스꽝스러워. 유미는 무심결에「하하하」하고 소리내 웃었다. 노리코쨩이 이렇게 재밌는 애였다니.
「……그런데, 뭐하고 있니?」
  한바탕 웃어대다가 노리코쨩을 보니, 그녀는 이 번에 탁자 위에서 뭔가 만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포켓 티슈를 접은 걸 다시 화장지로 둘러 쌌다. 이 형태는 본 적 있어. 뭐라 하더라――.
「테루테루보즈(역주: 테루테루보즈[てるてる坊主]는 일본의 민간 풍습으로 비가 그치길 기원하면서 판쵸를 씌워둔 채 창문에 실로 매달아 두는 헝겊 인형입니다.)에요.」
「……지금, 그런 생각이 들었어.」
  유미는 왜 이런 걸 만들기 시작했냐고 물어 본 셈이었지만, 노리코쨩은 대답하는 대신, 묵묵히 고무밴드로 조일 데를 묶었다.
「정말 이런 걸로 개일까요?」
「……글세.」
  “비가 그치지 않네요.”의 연장선상에 있는 걸까. 테루테루보즈라고 했을 때, 유미는 노리코쨩이 서브한 공을 어떻게든 받아쳐서 반격하는 게 정답일 테다.  그러나. 안쓰럽게도, 후쿠자와 유미. 테루테루보즈가 얽힌 얘깃거리가 없었다.
 (테루테루보즈, 테루테루보즈……라면.）
  고민하고 있자, 노리코쨩이 들고 있던 테루테루보즈를 높이 매달면서 말했다.
「……테루테루보즈는 지장님을 닮았어요.」
  에엣, 이 번엔 지장님? 노리코쨩, 화제를 바꾸는 게 너무 빨라.
「지장님은 부처님이야?」
  그렇게, 무슨 수를 써서든 리시브하자 노리코쨩은 배시시 웃었다.
「뭐어, 넓은 의미로 보면 부처님이에요. 보살이니까요.」
「보살?」
「네, 지장보살이라고 해요. 관음님도 보살이에요. 관세음보살」
  여하튼, 탁구 랠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불상 쪽은 노리코쨩의 전문 영역이었다.
「그러면, 테루테루보즈는?」
  다시 화제로 되돌아가 질문하자, 노리코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이 아닐까요? 스님(원문: 坊主)이라고 하니까요.」
  우응, 이 번에는 미스인가.
  하지만, 그런가, 인간이었네. 머리가 반들반들하니까 스님이겠지. 하지만, 문어(원문: 海坊主)처럼 인간이 아닌 것도 있는데. 그러면 작심삼일(원문: 三日坊主)의 스님은 뭐지? ――그렇게 유미 혼자서 삼천포로 빠지고 있자.
「……테루테루보즈 패거리.」
   노리코쨩은 고무줄 위에 바느질 세트의 실을 묶어서 올가미를 만들면서 중얼거렸다.
「응?」
  지금 뭐라 했냐고 유미는 되물었다.
「아니요. 리리안 여학원은 저한테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그 중에서 충격적이었던 건 테루테루보즈 패거리를 봤을 때에요.」
「테루테루보즈 패거리?」
「네. 저한테는 그렇게 보였어요.」
  말하면서, 노리코쨩은 일어나서 창문 밖으로 손을 뻗었다. 조금 전보다는 덜하지만, 비는 여전히 계속 내리고 있엇다.  노리코쨩은 잠시 망설인 것 같지만, 티슈로 만들어진 테루테루보즈가 젖으면 불쌍하다고 생각했는지 커텐 레일에 매달면서 중얼거렸다.  이 건 어쩐지 정말 불안하다고.

 

　　　　　　　　　　＊
　　　　　　　　　　＊

 

   그 게 무엇이고, 사용 목적이 뭔지 알았다면 그 정도 충격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이제서야 말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왜냐하면, 몰랐던 건 몰랐던 거니까.
「『교복, 가죽 구두, 체육복, 운동화(운동장용), 전과 동일(체육관용). 이상의 물품은 학교가 지정한 취급점에서 각자 준비 할 것』…이라.」
  이 건 내일 K역에 가서 사기로 했기 때문에 OK.
  얇은 책자에 인쇄된 항목에 샤프로 체크 마크를 기입했다.
「 『교과서(필수 과목)은 입학식 날의 낮 12시부터 강당 앞에서 판매 예정. 참고로, 선택 과목은 담당 교사의 지시에 따른다.』라니。헤에」
  교과서는 사는가 싶어서 감탄했다. 의무 교육 도중엔 당연한 것처럼 배부된 교과서. 그 걸 당연한 것처럼 받아서 아무 의문도 갖지 않고 공부했는데.
「그렇다는 건, 입학식 날에 그 만큼 더 현금을 들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네.」
  책자에 쓰여진 금액을 확인하며 마음 속에 새겼다.
「 『체육 시간에 사용되는 헤어밴드는 학급이 발표된 뒤에 매점에서 구입』? 어째서 하필이면 학급이 발표된 다음이지?」
  체육 시간에 사용하는 헤어밴드라고 하면, 중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던 빨간색과 흰색의 리버서블(역주: Reversible―앞면 뒷면의 구별 없이 뒤집어 쓸 수 있는 머리띠) 밖에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헤어밴드 색은 학급의 색상이거든. 반을 모르면 살 수 없겠지.」
  갑자기 문이 열렸다 싶더니, 스미레코《二? 菫子》 아주머니가 방에 들어왔다.
「와앗!」
  그 모습을 본 나는 엉겁결에 외쳤다.
「와앗은 뭐야. 집주인한테.」
「아, 미안해. 하지만.」
  갑자기 새하얀 마사지팩[주3] 얼굴로 나타나면 누구나 놀랄 거라고 봐. 대숙모이자 집주인, 게다가 하마터면 고등학교 재수생이 될 뻔한 걸 구해준 은인이기도 한 니죠 스미레코 아주머니(연령 미상이지만, 아마 상당히 나이가 들었을 터)는 내일 쇼핑을 대비해 얼굴 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미레코 아주머니는 긴자든 가까운 상점가든, 친척 조카딸의 쇼핑에 동행하는 것뿐인데도 제대로 화장하고 옷치장을 할 작정이니 굉장했다.
「후응, 학급 색이 있구나.」
  내가 신선하게 놀란 것하곤 달리, 스미레코 아주머니는 대단치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있어. 복숭아색이나 소나무색이라든지.」
「복숭아색? 핑크색? 게다가 뭐야, 소나무색은?」
   처음 듣는 얘기. 설마 나무 줄기 색깔은 아닐테니, 역시 짙은 녹색일까.
「핑크가 아니라 복숭아색. 그래서 학급 색이란 거야.」
「하앗?」
「공부 잘 하는 것에 비하면 미리 회전이 둔하네, 리코.」
「…………」
  나는.  입학 예정인 학교에서 학급마다 일일이 식물 이름을 붙인다는 것조차 모르는,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입학 시험을 쳤을 때 교실의 학급 명패 위에『수험번호 ○번～○번』이란 종이가 붙어 있어서 복숭아반이나 소나무반 같은 글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마음을 돌려서 입학 안내서의 「당일 준비물」항목을 계속 읽기 시작하자, 수수께끼의 글자가 눈에 들어 왔다. 
  하얀색 판쵸.
「뭐야,  이 『하얀색 판쵸』란 건?」
  나는 소리를 지르며 얇은 책자를 탁탁 두들겼다. 눈 앞에 뭔가 정체불명의 물체가 있는 건 털벌레가 책상 위를 기어 가고 있을 때처럼 기분이 나빠.
「하얀색 판쵸?」
  그 말을 복창하고 나서 3초 정도 지났을 때인가. 스미레코 아주머니의 기억 회로가 삐삐빗, 연결 되었다는 걸 눈으로 알게 되었다.
「아, 그렇지. 하얀색 판쵸구나. 내일 교복 치수를 재고 오는 길에 포목점에도 들르자.」
「그래서 하얀색 판쵸는 뭐야?」
「하얀색 판쵸라고 하면, 하얀 판쵸겠지.」
  스미레코 아주머니는 하얀색 판쵸가 아닌 하얀색 팩을 얼굴처럼 차악 벗겨냈다. 아, 물로 씻는 타입이 아니었던 거네. ――이런 걸 한가롭게 관찰해 봤자, 시간이 지나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판쵸 모르니?」
「알고 있지만. 저기, 모포 한가운데에 구멍을 내서 머리를 넣어서 입는 민족의상이지. 남미인가 어딘가의.」
  엄마를 찾아 삼천리를 여행한 소년이 주인공인 만화영화의 주제가에도 나온다. 분명히.
「그 정도 알고 있으면 되잖아.」
  아니, 그 건 다르지. 지금 내가 필요한 건 판쵸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입학하고 나서 필요하게 될 「하얀색 판쵸」란 것에 관한 정보다.
「그럼, 『하얀색』 쪽이 뭔지 모르는 거니?」
「……혹시, 스미레코 아주머니, 심술 부리는 거야?」
  말한 뒤에, 나는 「혹시」는 붙일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쩜,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하겠다. 다만, 난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로 남겨 두는 게 훗날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할 뿐이란다.」
「그 훗날이 다가 왔을 때, 왕창 창피당하는 쪽은 나지만.」
「흐음.」
  스미레코 아주머니는 화장수를 면에 묻힌 뒤 얼굴에 톡톡 치기 시작했다. 
「리코는 말이지, 재미가 없어. 실수하지 않을려고, 실수하지 않을려고, 그렇게 애쓰기나 하고.」
「미안하네요.」
  성격이야.
「폭설에 발이 묶여 공립 쪽의 시험을 치르지 못 한 건 조금 재미있었는데 말이지.」
  속뜻있는 웃음이 챙그랑, 하고 다가왔다. 게다가 거기는 건드리면 안 되는 위험지대《Dangerous Zone》인 것이다.
「반 세기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조카딸을 괴롭히면 즐거워?」
「그, 반세기 이상이란 말 쪽이 악의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머나, 하다못해 우정으로 적게 에누리한 건데.」
「됐어. 내일, K역으로 데려가 주려고 생각했는데, 중지야, 중지.」
「괜찮아, 억지로 데려가 주지 않아도. 교복 쯤이야, 혼자서도 만들어 올 수 있으니.」
「헤에, 하얀색 판쵸는?」
「그 것도 어떻게든 할 거야. 여기 써져 있는 대로 만들면 되겠지.」
  서로 나이가 비슷하다면 그럭저럭이지만, 나이 차이를 넘어서 맞짱을 뜨니까 곤란하다. 어느 쪽이든 조금이라도 어른스럽게 「물러난다」면 회피할 수 있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스미레코 아주머니가 삐졌기 때문에 나는 입학을 준비하는 쇼핑을 혼자서 끝내도록 되어 버렸다.  K역까지 나와서, 학교가 지정한 가게에서 교복, 체육복 등을 한 벌 주문한 다음, 문제의 하얀색 판쵸의 재료를 구하지 위해 옷감가게에 갔다.
「…………」
  교복 때도 그랬지만, K역은 리리안 여학원 주변 역이란 것도 있어서 가게 측은 신입생이 가게에 들어 오는 걸 환영하는 태세였다.
  하얀색 면직물 코너에 가자 「하얀색 판쵸에 가장 적당함」이란 꼬리표가 달린 옷감이 손수레에 수북히 쌓여서 팔리고 있었다.
  손으로 만져 보니, 과연 설명서에 적혀 있던 것처럼 정확히 와이셔츠의 두께의 하얀 민무늬, 면 100%이다. 
「…………」
  나는 이미 재단된 그 옷감과 함께 손수레에 들어 있는 하얀색 바이어스 테이프(역주: 천을 나비 2cm 정도로 비끼어 잘라 만든 테이프)(이 쪽도 사용분만큼 절단된 상태)를 집었다. 한 가운데 뚫린 구멍 주위는 그대로 놔두면 흐트러질테니 바이어스 테이프로 처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판쵸의 옷자락 혹은 소맷부리 격인 네모꼴의 사방을 접어 서로 겹치도록 재봉을 하면 완성(역주: 오버랩 미싱주).
  바이어스 테이프 쪽도 클리어하면 하얀색 판쵸를 만드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아、그렇지.」
  단 번에 계산대로 향하던 나였지만, 알맞게 굵은 하얀색 재봉틀용 실이 집에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에 되돌아가서 실도 구입하기로 했다. 도중에 레이스의 프릴이나 리본 같은 게 나란히 있는 화려한 코너를 우연히 지나가는데, 상품에 열중하며 음미하고 있는소녀 세 명이 눈에 띄었다.  걔네들은 수다를 떨고 있어서 날 눈치채지 못 했지만, 모두 나와 똑같은 옷감과 바이어스 테이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추측컨대, 아마 리리안 여학원의 고등부에 올해 봄 입학할 예정인 동급생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봐요, 여기. 이 레이스도 귀여워요」
「어머나, 좀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하지만 무척 마음에 드는 걸요. 흰색이면 괜찮겠죠? 사실은 버튼 같은 걸 달고 싶지만……」
「버튼은 안 돼요.」
「그럼 스팽글(역주: 금속이나 플라스틱 따위로 만든 얇고 조그만 조각)은요?」
「그러고 보니, 스팽글은 뭘로 만들어 진 거지？」
  그런 얘기를 하면서 하얀색 판쵸의 재료인 옷감을 리본이나 레이스 옆에 갖다 대었다.
  얘네들은 설마 저 것들을 하얀색 판쵸에 붙일 생각일까. ……그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얀색 판쵸의 제작 방법이 적힌 「별책부록」에는 저런 걸로 장식하는 얘기는 한 마디도 담겨 있지 않았다.  뭐어, 거기서 용기를 내어 그 삼인조와 얘기했으면 구입했겠지만, 나는 왠일인지 그럴 수 없었다. 평소엔 그런 일로 겁먹는 성격은 아닌데, 하얀색 판쵸를 당연한 듯이 알고 있는 사람한테 정직하게  가르쳐 달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스미레코 아주머니 탓이다.  그래서 나는 계산대에서 돈을 내고 서둘러 돌아가기로 했다. 계산기를 치고 있던 점원은 내 쇼핑 물건을 봉투에 넣으면서 말했다.
「리리안 여학원에 입학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아아, 역시.
  이런 쇼핑을 하는 사람은 리리안 학생이 전부인 것이다.
  집에 돌아 와서, 시험삼아 인터넷으로 찾아 봤지만 역시 내가 알고 싶은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머리 10센치 정도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 하얀색 판쵸란 걸 설계도에 따라 성실히 제작했다.
  스미레코 아주머니는 묵묵히 재봉틀질을 하는 내 모습을 가끔씩 엿보러 왔지만, 돕거나 뭐에 사용되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도 열받아서 두 번 다신 물어 보지 않았다.
  그리고 입학식 다음 날. 마침내 난 테루테루보즈 패거리와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되는 1학년생은 그 날 선생님이나 수녀님한테서 학원 생활의 주의 사항이나 유의할 점을 설교 받고, 덧붙여 선택 과목을 이수하는 방법 등의 설명을 들은 다음, 낮이 되기 전에 일찍 학교를 마쳤다.  다른 중학교에서 들어 온 나는 아직 친한 친구도 없었고 원래 누구랑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에 혼자 서둘러 교실을 떠났다.   2학년이나 3학년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하지만, 여섯 학급이 있는 1학년생이 한꺼번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JR(역주: 일본 철도 by Gu님) 역으로 가는 버스는 반드시 혼잡하기 일쑤였다. 나는 사람이 우글대는 게 정말 질색이야.  출입구에서 나온 데서 뭔가 눈 앞을 횡단했다.
「히익……！」
  출입구의 문이 몸무게를 받쳐 준 덕에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놀라운 광경에 깜짝 놀라 기겁하고 있었다.
  (뭐, 뭐지, 이 건……!)
  나는 눈을 의심했다.
  하얀색 판쵸로 감싼 학생들이 한 줄로 학교 건물의 좁은 보도를 걷고 있었다.
  줄줄. 줄줄.
  그 모습은 색다르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상반신이 쏘옥 들어간 채, 어깨에서 무릎 위 10센치쯤 까지 내려간 하얀색 판쵸. 물론 스스로 시범삼아 입어 보고 어떻게 될지 확인을 끝낸 상태였다. 하지만 숫자가 많으니 박력이 달랐다.
  일일이 세지 않았지만 서른 명 쯤 되는 것 같아서 아마 한 학급이었을 것이었다.
  과장하는 게 아니라, 그 건 테루테루보즈의 집단 이동, 그 자체 였다.
  혹은 리뉴얼판 삼장법사 [원문: お遍路さん, 주4].
  아니, 아니, 여기 리리안 여학원은 가톨릭 학교니 비유로선 적당치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달밤에 소복차림의 처녀 귀신 [역주: 백일기도에 축시참배, 주5]. 흑마술에 백마술. 이 세상에는 봐서는 안 될 게 분명히 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
     그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테루테루보즈 패거리를 뒤쫓아 갔다. 그 앞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돌아가면 불쾌해서 밤에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정체를 알면 안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곧바로 호기심이 부정했다.
  나는 행렬의 꼬리에서 10미터 쯤 뒤에서 미행했다.
  등 뒤에서 관찰하자 당황했을 때 몰랐던 일을 점점 알 수 있었다.
  그녀들―아마 선배겠지―는, 모두 손에 A4 사이즈의 종이를 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적힌 글자까진 안 보였지만, 아무래도 본인한테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았다. 그 이유는, 각자 가슴에 안은 채 수비하고 있었고, 난데없이 엿보이면 당황하면서 숨기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후아）
  하얀색 판쵸는 정식으론 교복 위에 입는 게 아니고, 하반신은 체육복을 착용하는 거라고 판명났다.
  (다만, 그것은 무릎길이의 스패츠나, 운동복의 트레이닝 바지도 가능, ……하구나.)
  그저 감싼 채 펄럭펄럭거리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휘날리지 않게 허리를 끈으로 묶는 변형도 있어 보였다. 그 끈이란 건 학급 색인 헤어밴드가 대부분이지만, 속에다가 끈을 직접 좌우에 꿰매서 연결시킨 용의주도한 하얀색 판쵸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나는 옷감가게에서 만난 소녀 일행을 떠올렸다. 걔네들도 역시 이런 개조를 계획하고 있었나 싶었다.
이것저것 하고 있는 동안에도, 테루테루보즈 채거리는 슬슬 남쪽으로 행진했다. 아래는 체육복이니까 혹시 이대로 운동장에 가나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도중에서 진로를 변경했다. 나도 뒤따라서 도서관 건물을 따라 왼쪽으로 돌았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성모 마리아상을 지나자 거기엔 흰 버스가 세워져 있었다.
  (앗)
   그리고, 테루테루보즈 패거리는 한 사람, 또 한 사람씩, 그 버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３

 

「――그 거 말이지. X-RAY 차겠지.」
  마지막을 기다리지 않고, 유미가 말했다.
「……유미님. 다른 사람이 필사적으로 하는 얘기를 중간에 새치기하는 건 반칙이 아닌가요?」
「미안해. 하지만 말야.」
「알고 있어요. 중등부에서 올라 온 학생한테는 다 아는 얘기지요.」
  노리코쨩은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친구한테 메일로 보냈을 때는 그 게 아주 대호평이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하얀색 판쵸는 평범한 게 아니었네.’라고 유미는 재차 생각했다.
  내막을 밝히자면.
  하얀색 판쵸란 건 리리안 여학원의 건강 진단 때 입는 옷이다.
  브래지어를 벗고 맨살 위에 바로 입기 때문에, 그대로 X-RAY 촬영도 할 수 있고, 내과 의사가 진찰할 때 청진기를 판쵸 안에 넣으면 되기 때문에 따로 옷을 벗을(주6)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유서깊은 학교니까.
  비록 의사라 해도 남성한테 신체를 보여주는 건 예(禮)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선배들이 고안해 낸 건 지도 모른다. 아니, 당연히 요즘 학생도 함부로 다른 사람 앞에서 알몸을 내보이고 싶진 않지만.
「하지만, 그러니까, 하얀색 판쵸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노리코쨩도 실제로 사용해 보고 나서 좋은 점을 실감했나 보다.
「하지만 그 입학 안내서는 설명이 부족한 게 아닐까요. 하얀색 판쵸의 제작 방법은 들어 있어도 사용 방법은 전혀 적혀 있지 않아요.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으응, 그랬나 보구나. 나는 중등부에 입학할 때 만든 걸 여태껏 쓰고 있어서 입학 안내서는 대충 훑어 봤으니 잘 모르거든.」
  유미의 대답에 노리코쨩은 순간 「네?」라는 표정을 지었다.
「신입생은 꼭 만들어야 되지 않나요?」
「1년에 한 번, 모두 합쳐 3번 밖에 사용하지 않거든. 제대로 빨아서 보관하면 6년 쯤은 버텨. 글세, 매 년 새로 만들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으니 다시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아. 토오코쨩이 확실히 후자에요.」
「토오코쨩？」
  유미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얘기하는 빙글빙글 드릴(역주: ……daidong님, 죄송해요. >.< [<- 반성의 기미 전혀 없음])의 1학년생을 떠올렸다. 토오코쨩은 유미와 언니가 다투는데 계기가 된 소녀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옷감가게에서 본 사람들은 토오코 일행이었던 것 같아요. 걔 올해는 사방을 화려한 프릴로 장식해 왔어요.」
「프, 프릴?」
「네. 하지만 선생님한테서 점잖게 꾸중들었습니다.」
「……그렇구나.」
  유미의 동급생이라도 거기까지 질러버린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허리를 조이는 것처럼 끈을 묶거나, 앞뒤의 길이를 바꾸는 정도다.
「하지만 기죽지 않았어요, 토오코는. 내 년에 흰 실로 수를 놓을 거라고 말하면서 불타오르고 있어요. 정말, 바보죠?」
  노리코쨩이 웃었기 때문에 유미도 웃었다. 노리코쨩의 「바보」는 아주 상냥하고 애정이 듬뿍 담긴 「바보」였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탄력이 붙어 두 사람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자, 일명 비스킷문이 열리며 사람이 들어 왔다.
  「미안해요, 늦어져 버렸어요.」
  시마코씨였다.
  노리코쨩은 의자에서 일어나 찻주전자를 가지러 서둘렀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언니에게 차를 대접하려고. 청순한 자매는 조금 부러워 보였다.
「왜, 웃고 있었어? 즐거워 보이네.」
  시마코씨가 물었지만, 노리코쨩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비가 그치면 좋겠다고 유미님과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비? 그치고 있어요.」
  시마코씨가 말했다.
「네?」
  유미는 창문으로 달려가 바깥을 봤다.
「진짜야.」
  확실히, 어느새 비는 그치고 있었다.
「테루테루보즈, 역시 효과가 있었나 봐, 노리코쨩.」
「다행이에요.」
  노리코쨩은 싱글벙글 웃으며 시마코씨한테 따뜻한 홍차를 대접했다.
「유미씨, 비가 그쳤으니 답례로 테루테루보즈한테 얼굴을 그려 줘야 돼요.」
「그런 거야?」
「어머, 자주 그러지 않아요?」
  시마코씨의 말에 유미도 노리코쨩도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우선, 테루테루보즈로 비가 그치도록 주문을 건 게 몇 년만의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그런 얘기가 있다면.」
  유미는 창가에 매단 테루테루보즈를 빼내 볼펜으로 눈과 코와 입을 그렸다.
「뭐, 환하게 웃는 얼굴이네요」
  옆에서 보고 있던 시마코씨가 그렇게 말했을 때, 유미는 「아차, 그랬구나.」라고 간신히 눈치챘다.
  단 둘이 있었을 때, 노리코쨩은 격려해 줄 생각으로 저 얘기를 해 준 거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