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2권 어린 양들의 휴가 -1- 여름방학 예정

     어린 양들의 휴가(子羊たちの休暇)

작가: 콘노 오유키, (그림) 히비키 레이네

 

"안녕하세요.(ごきげんよう)"
"안녕하세요.(ごきげんよう)"

상쾌한 아침인사가, 청명한 하늘에 메아리친다.
마리아님의 정원에 모여드는 소녀들은, 오늘도 천사처럼 티없는 맑은 미소를 지으며, 높다란 문을 빠져나간다. 더러움이 닿지 않은 몸과 마음을 감싸는 짙은 색 교복. 스커트의 주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얀 세일러 칼라가 펄럭이지 않도록, 천천히 걷는 것이 이곳에서의 몸가짐. 물론, 지각 빠듯한 시간에 뛰어가는 경박한 학생이 있을 리도 없다.

사립 리리안 여학원(私立リリアン女學園).
메이지(明治) 34년(1902년)에 창립한 이 학원은, 원래는 귀족의 영애를 위해 세워졌다고 하는, 전통있는 카톨릭계의 아가씨 학교이다. 토쿄도 내. 무사시노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녹지가 많은 이 지구에서, 신의 가호를 받으며 유치부에서 대학까지 일괄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녀들의 정원.

시대는 변해, 원호가 메이지에서 3번이나 바뀌어 헤이세이(平成)가 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18년의 세월을 온실 속에서 자란 순종배양 아가씨가 포장돼 출시되는 시스템이 아직도 남아 있는 그야말로 귀중한 학교이다.

 

우중충한 장마가 그치고, 산뜻한 계절이 찾아와 기분은 상쾌.
하지만 계속 들떠 있을 수만도 없다. 즐거운 여름방학의 입구에서 기다리는 것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학기말 테스트.

아무튼 이것만 끝나면.

교과서, 노트, 참고서, 사전, 편람, 연표 등을 책상 위에 쌓아둔 뒤, 좋아하는 버라이어티 방송도 패스하고, 머리 속에 각 과목을 쑤셔 넣을 수 있을만큼 쑤셔 넣었다. 물론 그게 전부 머리 속에 들어온다면 불만은 없겠지만, 무리라면 하다못해 시험 기간 때만이라도 뇌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가능한한 머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를 쏟으며 등교했다.

아무튼 이것만 끝나면.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즐거운 여름방학이다.

 

 

 

- 여름방학 예정(夏休みの予定)-

 

 

1.

 

클립으로 모은 프린트 뭉치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로사 키넨시스이신 오가사와라 사치코님은 싸늘하게 말했다.
"안 가."
"엣?"
"그러니까 안 간다고 했어. 그보다 너 그 얼빠진 대답 좀 어떻게 할 수 없겠니?"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셔도. 입에서 나와버린 걸 이제와서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잖아요.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 경력 3개월 남짓, 조금은 버거운 칭호에도 이제 조금 익숙해진 후쿠자와 유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냉방기구라는 문명의 이기가 없는 장미의 저택은 창문이라는 창문은 모두 열어젖혀놔서, 마치 스테레오방송처럼 매미의 건조한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침입해 오고 있었다.
장마가 끝나고 제법 더워졌다. 계절은 이미 완연한 여름. 사치코님의 아름다운 이마에도 담수 진주 같은 땀방울이 희미하게 맺혀있었다. 그런 건 제껴두고.
유미가 지금 해야만 할 일은, 조금 전에 막 귀에 들려온 언니의 믿을 수 없는 말을 물어보는 것이다. '안 가'는 흘려들을 수 없다.
"하지만 언니."
몸을 쭉 내밀고는 "약속은요?" 하며 다가서자, 사치코님은 프린트에서 얼굴을 들며 한숨을 쉬었다. 
"약속을 휴지조각으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어. 하지만 유미, 너란 애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안달이잖니."
"....그럼 안되나요?"
유미는 입술을 약간 삐죽거렸다. 정말 스타트 전의 경주마처럼, 빨리요 빨리 하는 기운으로 가득 차 재촉하고 있다는 걸 자신도 물론 잘 알고 있다.
게이트. 그것은 바로 기말테스트. 그것만 끝난다면. 
그래서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드디어 오늘 그 마지막 날을 무사히 맞이했으니 들뜨는 것도 당연하다. 저기 앞에 기다리고 있을 목표를 향해 저돌맹진(猪突猛進), 말 그대로 멧돼지처럼 맹렬하게 돌진하고 싶은걸. - 어느새 비유를 든 동물이 말에서 멧돼지로 변하긴 했지만.
"그치만 쭈욱 기다렸단 말예요... 유원지."
그렇다.
지금 홍장미자매가 의논하고 있는 화제는 바로 유원지 데이트였다. 이게 원인이 되어 장마때 큰 싸움을 벌인 적도 있는, 복잡한 사연을 가진 화제였지만, 오해가 풀리고 화해도 했으니, 유미는 당연히 새롭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치코님은 그게 아니신가 보다.
"안 돼, 라고 말한 건 아니잖니? 단지 지금 당장은 좀 그렇다는 얘기야."
"거짓말. 방금 확실히 '안 가'라고 하셨으면서요."
"말꼬리 물고 늘어지는 건 그만 둬. 정말로 요즘 반항적이라니까. 지금 당장은 안 가, 라고 말하려다가 '지금 당장'이란 말을 그만 생략한 것 뿐인데 네가 오버한거야."
"오버라구요? 그렇다면 좀더 주의깊게 말을 골라 주셔야죠. 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심한 제 마음을 푹푹 찌른다구요."
"그 정도로 말대답하는 걸 소심한 사람이 들으면 어이없어하겠다."
사치코님은 프린트 뭉치를 테이블 위에 두들겼다. 그 기세에 놀라 로사 기간티아인 토도 시마코양이 '꺄앗' 하며 귀여운 비명을 질렀다. 홍장미자매의 대화가 상당히 흥미진진해서 존재가 희미해져 있었지만, 실은 이곳은 리리안여학원 고등부 학생회 본부인 장미의 저택 2층으로, 회의실 겸 살롱 내에는 산백합회 간부회원 6명 전원이 모여 있었다. 기말테스트 마지막날 오후. 내일부터 시험휴일이기도 해서, 여름방학 일이라든가 여러가지를 확인하기 위해 소집한 것이다.

"저기, 저 두 사람 이대로 그냥 놔둬도 괜찮을까요?"
홍장미자매의 토론을 묵살하고 있는 황장미자매에게 시마코양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이좋게 자매싸움하는 거니까, 눈치없는 짓은 안해."
로사 페티다이신 하세쿠라 레이님이 샤프심을 짤깍짤깍거리며 읽고 있던 프린트에 체크마크를 기입하고 있었다.
"안 말린다고 해도..."
로사 기간티아 앙 부통인 니죠 노리코짱도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괜찮다니까. 서로 장난치는 것 뿐이야."
로사 페티다 앙 부통, 경력은 유미와 같지만 관록이 넘치는 시마즈 요시노양이 깍지낀 손가락 위로 턱을 괴며 태평스레 대답했다.
"서로 장난...?"
백장미자매는 얼굴을 마주보며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이 두 사람에게는 자매가 '사이좋게 싸움'이나 '서로 장난'이라는 행위는 실감할 수 없을런지도 모르겠다. 아직 로사리오를 주고받은 지 일개월도 채 안 된 따끈따끈한 자매다.
그건 그렇다치고, 여보세요들. 훤히 다 들린다구요.
하지만 실제로 장난치고 있었기 때문에, 유미는 아무런 항의도 할 수 없었다. 감정이 서로 엇갈리던 때에는 할 수 없었던 일도, 강한 인연의 끈을 확인한 후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아니 무엇이든지 하고 싶다. 요시노양과 레이님이 격의없이 대화하는 걸 전에는 신기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스트레이트로 마음을 전달하는 편이 기분좋다는 걸,  마음 속에 쌓아두는 건 몸에 독이 될 뿐이라는 걸 알게 된 유미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언니의 잔소리는 오히려 기뻐할 일이니까.

"아무튼 말야."
사치코님이 찻잔에 손가락을 살짝 댔다가 뗐다.
"아, 한잔 더 말이죠. 지금 타올게요."
유미는 일어나서 급히 전기포트로 향했다. 언니의 음식가리기야 셀 수없이 많지만, 미지근해진 차(茶) 역시 마음에 안들어했다.
"잘도 아는구나."
"그야."
동생이니까요. 마음이 통한게 기쁜지 사치코님의 웃는 얼굴에 미소로 답하자, "거봐 맞지."라며 요시노양이 백장미 패밀리에게 말했다.
"자매싸움은 개는 물론이고 박테리아도 방해 안해."
"과연."
공부가 되었어, 라니. 그러니까 전부 다 들린다고 했지. 나참 다른 자매를 가지고 놀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유원지는 여름방학때 혼잡하지 않아?"
다시 타온 홍차를 만족스러운 듯 한 모금 마시고선 사치코님이 말했다.
"하아."
유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차를 돌리면서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 일반적으로 행락지란게 다 그런 거 아닌가요.
"학원제 시기도 다가왔고."
"웃."
여기서 학원제를 들먹일거라곤 예상못했기에 유미는 무심코 절규했다.
뭐야 뭐야. 사치코님도 참. 유원지로의 길을 선택하는데 왜 하찮은 장애물을 늘어놓기 시작하는거야.
"무엇보다 난 더운 건 질색이야."
나왔습니다. 아가씨의 어리광 공격. 이게 나오면 끝이다. 그럼 유원지만이 아니라 여름방학 내내 자매동반외출은 전부 기각당한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매년 여름은 피서지의 별장에 가서 지내."
"한달 반 동안 계속요?"
"그렇진 않아. 올해는 7월말부터 8월초까지 예정하고 있어."
"그럼 8월 후반기는 어때요?"
유미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요 앞전에 돌아가셨던 사치코님의 할머님의 일도 생각해서, 일단, 오봉(일본의 추석)은 비껴서 말했다. 할머님의 종교가 뭔지는 잘모르겠지만 말이다.
"여름방학 후반기는 학교에 나와서 학원제 준비해야지."
"에엣."
"말 안 했었어? 여름방학 자율등교는 산백합회 간부 연례행사야."
레이님이 냉장고 문을 열며 말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방학기간은 전반기뿐이야."
제빙기에서 꺼낸 정육면체 얼음이 컵에 부딪히는 고음을 들으며 유미는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드 스케쥴이라니. 그럼 만약 여름이 질색이 아니라고 해도, 여름방학에 혼잡하지않다고 해도, 유원지 갈 시간같은 건 낼 엄두도 못내겠다.
"그럼 유원지는..."
"그러니까 겨울에 가자."
"....네."
뭐 처음부터 승부는 정해져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언니를 상대로 건투한 편이라고 생각해. 유미가 자기 자리로 돌아올 때 요시노양도 "분발했어."란 표정을 지어줬다.
"서두르지 않더라도 유원지는 안도망가니까."
"그치만.."
여름방학때 함께 가고 싶다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니까 요시노양은 "잠자코 들어봐."라며 역시 볼륨을 줄이고 속삭였다.
"여름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장소를 제안하는 거야. 그럼 사치코님이라도 겨울까지 기다리자고는 말 못하겠지. 난 그렇게 했거든."
요시노양의 어드바이스는 어딘지 악마의 속삭임이란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레이님을 설득했으니까 꼭 잘못된 비유라고만은 할 수도 없겠지만.
"난 그렇게 했거든, 이라니. 요시노양은 이번 여름에 어디 갈건데?"
"훗훗훗"
"훗훗훗?"
"후지산 등반."
"왓, 정말?"
일단 방해가 안되게끔 속닥속닥 얘기하고 있었지만, 유미는 무심코 큰 소리를 내버렸다. 사치코님이 한번 눈초리를 올리며 두 사람을 째려보고는 다시 프린트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없다. 후지산 등반이라고 하면, 후지산에 올라가는 거잖아. 후지산은 말안해도 누구나 잘 아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 작년 이맘때쯤 체육수업은 거의 견학으로 때우다시피한 인간이 잘도 도전할 생각을 했구나.
"줄곧 꿈이었다구. 수술한 후 곧있음 10개월이고, 주치의의 양해도 얻었고, 보호자도 함께고 말야."
보호자역의 레이님을 보니 대화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지만, 차분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상상해보건데 요시노양은 아마 협박에 가까운 설득으로 주치의 선생님께 강제로 OK를 얻어냈을지도 모른다. 친구니까 감히 말하지만, 요시노양은 그런 사람이다.
그러고보니 대조적인 또 한사람의 친구는...
유미는 일단 회의가 끝난 뒤 자유시간이 되자, 실내를 주르르 가로질러 포송포송 머리를 감아올린 미소녀가 앉아있는 의자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시마코양."
"에?"
의자에 딱 달라붙어서 올려다보는 친구를 눈치챈 시마코양은 "어느새" 라는 표정으로 눈을 둥그렇게 뜨며 놀라고 있었다. 거기엔 별 상관하지 않고 유미는 "있잖아~ 있잖아~"하면서 시마코양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저기 있지, 여름방학때 어디 갈 예정있어?"
"노리코와 같이 교회랑 불상전 순회할 생각인데."
그 노리코짱과 눈을 서로 마주치며 웃는다.
"굉장해. 그럴듯한 조합이야."
무심코 "납득"하며 끄덕였다. 이 두사람은 리리안 여학원 학생으로선 드물게 불교로 인연을 맺은 자매인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유미양은?"
"으음. 예전대로라면 야마나시에 계신 할머니 댁일까. 하지만 할머니 올해는 이쪽으로 오실 것 같다고 그러셨으니까 어떻게 될지."
어쩐지 혼자서만 제대로 된 예정이 없어서 시시하다. 시시하다기 보다 다른 사람들이 부럽다. 당연하지. 다들 자매동반스케쥴인걸.

....그 와중에 사치코님이 갑자기 이름을 불렀다.
"유미."
"네, 넷."
불만이 얼굴에 나와버렸을까. 급히 일어나 뒤돌아보며 대답했다. "불만이 있으면 말해."라고 말씀하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말해서 어떻게든 되는 거라면 말해보겠지만,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괜히 말했다가 그저 허무해질 뿐이니까.
하지만 사치코님은 유미가 상상하고 있던 말을 꺼내지 않으셨다. 그 대신에, 주어가 없는 서술어만이 유미의 귀에 닿았다.
"올래?"
"에?"
올래,라니. 동사의 가행변격활용에 의한 "오다(くる,쿠루)"이 종지형 또는 연체형으로...아니, 그런 건 테스트 종료와 함께 잊어버려도 좋을 일. 지금 문제는, "누가", "어디로"오느냐 하는 것이다. 생략되어 있는 주어가 만약 일인칭 "나", 즉 사치코님 본인을 가리킨다고 하면 어떨까. 그 경우, 목적어는 "여기"라든가 "학교"등이 적당할테다. 그야 "난 파리로 온다" 라고는 말안하니까. "여기"라는 건 보통 지금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가 파리가 아닌 이상, 파리로는 "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학교(여기)에 온다"라고 일부러 말할 것까지 있을까. 사치코님의 말은 의문형이었다. 그렇다면 주어는 오히려 "너"라든가 "유미"라든가. 그렇게 되면 대체 어디에 "올래"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온다"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는 이상, 역시 사치코님이 계신 곳일테지. 물음표를 수없이 날리면서 생각하고 있으니까, 사치코님이 어이없다는 듯 다시 한번, 이번에는 표현을 바꿔 말해주셨다.

"엣 엣 엣 에엣?!"

그걸 들은 유미는, 진짜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 놀라움을 표현할 길이 마땅치 않아, 무심코 양손바닥을 나란히 펴서 차의 와이퍼처럼 입술 앞에다 반원을 그리고 말았다. 언니의 말은, 유미가 전혀 생각도 못한 것이었으니까. 
확실히 생각도 못했다.

괜찮다면, 우리 별장에 올래 - 라고 하실 줄은.

 

 

2.

 

놀란 건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별장?! 오가사와라 댁에?!"
아빠는 물양갱병 캔 뚜껑을 퐁하고 딴 자세로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었고, 엄마는 차주전자를 든 채 잠깐 버벅거렸다. 저녁 식사 후 소파에서 잡담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떡하나. 유미짱 여권 아직 신청 안 했는데. 7월 마지막 주라고 하면 곧 금방이잖니. 지금 해도 안 늦을까?"
"........"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이 사람은 틀림없이 나를 낳아주신 분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언급 안 했지만, 엄마 말은 사치코님의 초대를 받아들인 직후에 유미가 내뱉은 말과 거의 똑같았다.
"분명 2주정도 걸렸었지 아마."
하지만 식사중에 말을 꺼내지 않은게 다행이다. 이렇게 놀라는 모습으로 예상컨데, 둘중 어느 한 분은 저녁식사의 고기당고가 목에 걸려 구급차를 부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국내라니까요."
사치코님이 매년 여름에 방문하는 별장은 도쿄에서 신간선으로 한시간 반정도 거리에 있는 고원의 피서지에 있었다. 
"국내... 그렇겠네. 보통 일본이겠지. 어머나 나도 참, 별장이라고만 해도 고져스한 느낌인데다, 오가사와라 가문까지 더블로 압박해 오니까 그만 머리가 마비됐나보네."
엄마가 볼을 잡아당기시며 웃었다. 하지만 해외라고 생각해 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유미의 언니인 오가사와라 사치코님은 천하의 오가사와라 그룹의 아가씨. 세계 전역에 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부자다. 가령 스웨덴이라든가 그리스라든가 로마라든가... 실제 가본 적은 없으니까 이미지로 상상해볼 뿐이지만.
"하지만 그쪽 가족분들도 함께 가시지? 전혀 모르는 곳인데, 방해되는 거 아냐?"
"아버님도 할아버님도 회사일이 있으셔서, 오봉휴가(일본의 추석인 오봉을 기해 대부분의 회사가 쉰다)때 오실 예정인가 봐요. 어머님도 거기에 맞춘다고 하시고요."
여름방학 후반기에 학교에 나와야만 하는 사치코님만 먼저 가서 머물기로 했기 때문에, 유미도 거리낌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며 초대해 주신 것이다.
"네에~? 가도 되죠?"
유미는 아빠 팔에 매달리며 보챘다. 어리광부리며 뭔가 부탁하다니, 실로 오랜만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아빠는 살짝 코밑을 당기며 엄마를 쳐다봤다.
"그러네. 하지만 그쪽 부모님께 먼저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지."
"저쪽 부모님께?"
뭐 그룹과제를 한데 모아 정리하자고 누구네 집에 모이는 것과는 좀 틀리니까 그런 식으로 소란을 피우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아니, 우리 엄마는 그 정도의 일이라도 신세질 댁에 인사전화를 드릴 만큼 성실하신 분이지만.
"그럼 엄마가 사치코님 어머님께 전화해서 제대로 얘기를 나눠보고 납득할 수 있으면 된다는 얘기야?"
"그렇겠지. ... 아아, 하지만 긴장되는구나. 왠지 딸 시집보내기 전에 인사드리는 것 같아서."
"....엄마도 참."
그런 반응은 리리안 졸업생답다고나 할까.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이지만 남자들에게는 이해불가능일테다.
"선물같은 건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은행에서 고급과자선물세트 같은 걸 사서 가져가면 될까? 하지만 그런 물건은 그쪽에도 분명 질릴만큼 있겠지. 아니 오히려 아주 서민다운 걸 좋아할지도 몰라. 아아 그보다 체제비 같은 건 얼마 정도 필요하려나? 하지만 현금 같은 걸 가지고 갔다간 저쪽 분들 괜히 불쾌하게 만들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상품권으로 될 문제도 아니잖아? 도대체 신세진 답례의 시세는 하루에 얼마로 계산하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패닉일보직전의 엄마는 "생활 속의 교제 편리수첩 Q&A"라는 책을 집어들고선 색인을 뒤지기 시작했지만, 애초부터 "아이가, 언제나 지도해주시는(부잣집) 언니의 별장에 놀러가는 경우의 부모의 마음가짐"같은 항목은 실려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색인을 응시하는 눈이 반짝반짝 충혈되기 시작한다.

그건 아마도 올해 정월, 오가사와라 댁에 유미가 하룻밤 묵으러 갔던 일에서 시작되었다. 그 때 유미는 세이님에게 속아 끌려갔기 때문에 사치코님 댁인줄 몰랐고, 그래서 당연히 엄마에게 그냥 합숙이라는 뉘앙스로 외출했던 것이다. 과자선물세트 하나 가지고 갔으니까 됐잖아, 라고 유미는 생각했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딸이 언니집에 하룻밤 신세지는데도 사전에 제대로 인사조차 못 드렸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나보다. 덤으로 무관한 아들내미마저 신세졌다는 소릴 듣고 더블쇼크. 
언젠가 만회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에 마침 사치코님의 할머님께서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유미는 학교에서 곧장 그곳으로 향했기에, 당연히 아무 것도 지참하지 못했고, 돌아오는 길에 같이 갔던 요코님에게 그 일을 상담했더니, 집안끼리만 모여 치른 장인데다 그 집은 딱딱한 걸 싫어하니까 새삼 다시 와서 영전에 뭔가 바칠 것까진 없다고 하셔서, 결국 그냥 그렇게 지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꼭"이라며 의욕에 넘쳐 있었다. 요코님도 말씀하셨듯이, 사치코님뿐만 아니라 사치코님의 어머님이신 사야코 고모님조차도 전혀 그런 일에 신경쓰지 않는 분들인 것 같지만.

"유미짱은 어쩌다 오가사와라 가문같은 굉장한 집안의 아가씨 눈에 들어버린걸까. 이렇게 되면 신데렐라도 꿈이 아닐지도 몰라. 친척들 입장까지 생각하면, 엄마아빤 골치아프단다. 부탁이니까 다음에 시집갈 때는 부디 서민을 선택해주렴."
엄마는 사고가 뒤죽박죽이 됐는지 결국 전혀 알아듣지 못할 소릴 내뱉기 시작했다.
"나참, 오늘 밤은 이정도로 하고 이만 자러들 가거라."
결국 보기딱했던지 아빠가 조금 이르지만 엄마를 침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닥터스톱이 아니라 남편스톱이다.
"야단스럽다니까."
동생 유키가 소파위에서 하품을 했다. 조용해서 존재를 잊고 있었지만, 유키는 줄곧 거실에 있었다. 가족의 우왕좌왕하는 꼴을 냉정침착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응."
유미는 찻잔에 일본차를 따랐다. 엄마가 차주전자에 물을 따라놓고선 그냥 방치해뒀기 때문에 예상대로 꽤 진한 색을 띠고 있었다. 진한 연두빛, 아니 이미 모스그린(황록색)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저래 보여도 말야, 엄마는 기쁜거야."
"그러게."
남매 두사람이 사이좋게 뜨거운 물로 엷게 만든 차를 마신다. 계절적으로는 보리차가 좋겠지만, 녹색의 따끈한 차도 나쁘진 않아. 미각이 어른이 되어간다는걸까.
"별장인가... 나도 그 때쯤이면 그 쪽 방면으로 합숙하러 갈 거니까."
그쪽에서 만날 수도 있겠다며 유키는 쿠션을 껴안은채 웃었다. 유키는 리리안 여학원의 이웃에 있는 하나데라 학원고교 2학년생.
"합숙? 유키, 부활동같은 거 했었어?"
"학생회."
"너도, 학생회랑 관련되어 있구나."
"뭐 그렇지."
중학교까지는 학생회와 전혀 관계없이 살아온 평범한 남매였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오고나서부터는 둘 다 생활이 확 변해서, 어지럽고도 드라마틱한 학원라이프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학생회라고 하면...
"설마 카시와기씨도 함께야?"
위험해. 위험해. 그 사람만큼은 위험하다.
"졸업했는데?"
"아, 그래?"
사치코님의 사촌이기도 한 카시와기 스구루씨는 유미들보다 2살 위였다. 올 봄, 하나데라 학원고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현재는 하나데라 대학에 재학중이다. 
"하지만 카시와기씨니까 후배지도같은 걸 사칭해서 합숙소에 몰래 잠입하지 않을까. 유키, 조심해."
"저기, 유미. 난 동생으로서, 지금 누나의 입에서 나온 문제발언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조심하라구. 카시와기씨는, 반항하는 유키를 좋아한다고 그랬으니까."
"어떻게 조심하라는 거야. 반항하면 녀석이 좋아할거고, 그렇다고 반항 안 할 수도 없고."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상을 지켜야 해. 비정상에 빠져들면 안 돼."
겨울산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동료에게 잠들지 못하도록 격려하는 것처럼, 유미는 유키의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같은 나이에 같은 학년인 동생은 냉정하다. 입술을 조금 삐죽거리더니 풋하며 가볍게 웃었다.
"지금 무슨 뜻인지 알고서 하는 소리야?"
"....대강은."
결국 누나가 갸-갸- 소란을 떨어봤자 아무 것도 안되는 것이다. 유키는 자기 몸을 자기가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남자도 참 큰일이다.
"그런데 학생회 합숙은 뭐하는건데?"
"학원제 회의같은 게 메인이지만, 뭐 친목회를 겸해 열심히 해보자는 모임이라고 해야 하나?"
"아아, 학원제구나."
리리안에서도 준비해야해-하는 분위기가 날마다 진해지고 있었다. 고등부 학생회장인 장미님들은 학원제의 실행위원과 함께 리더쉽을 취할 입장이니까 동생들도 돕느라 바쁘다. 게다가 산백합회의 간부들은 산백합회의 간판을 업고 기획을 제출해야만 한다. 
작년은 무대극 <신데렐라>. 하지만 학원제란 말을 들을 때마다, 시간 참 빠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사치코님과 자매가 된 때가 바로 작년 학원제였다.

"그래서 올해는 뭘 하는데?"
유키가 물었다.
"그쪽은?"
"아직 안정해졌어."
"이쪽도 마찬가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장미님 세 분들 사이에서는 이미 구상까지 다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유미를 비롯한 봉오리들은 두려워서 언니들에게 묻지 못하고 있는 상태. 왜냐면. 작년만 해도 전 장미님들이 싫어하는 사치코님을 억지로 끼워넣는 듯한 형태로 "신데렐라"가 상연되었으니까. 그 전철을 밞는다면 올해는 봉오리인 유미와 요시노양이 엄청난 일을 받아들여야 할 운명일 게 분명했다. 아마, 작년보다 한 술 더 떠서.
".....남학교 학원제는 어떤 느낌일까. 올해는 구경하러 하나데라에 가볼까나."
참고삼아, 라기 보다, 기분전환삼아, 라는 쪽에 가까울지 모른다. 매년 하나데라 학원제는 리리안보다 한발 앞서 열렸다. 어차피 남의 일이니까,라는 편안한 심정으로 한 유미의 발언을 유키가 정정했다.
"가볼까나, 가 아니라 가야만 하잖아?"
"에?"
"리리안과 하나데라는, 매년 학원제때 학생회가 서로 도와주기로 되어 있으니까."
"아."
"아,가 아니야."
나참. 동생아. 그런 한심한 표정까지 지을 거 없잖아.
"그럼 올해는 유키도 우리 학교에 오는거야? 하지만, 작년 리리안 학원제에는 카시와기씨 혼자 왔었으니까, 전원 참가는 아닌 모양이네."
"상대측의 요구에 맞춰 도와주는 거니까."
"그런가. 그럼 역시 유키가 올 가능성도 있겠구나. 하지만 말야, 가족끼리 남앞에 선다는게 좀 싫다. 작년에 아빠랑 엄마가 올거란 걸 필사적으로 말렸거든."
그렇지? 라며 동의를 구하려니까 동생은 잠깐 침묵. 그 침묵은 대체 무슨 의미야라며 다 가서니까 마지못해 입을 연다.
".....나, 갔었어. 작년 리리안에."
"거짓말!?"
"카시와기 선배가 나가니까. 다른 선배한테 억지로 끌려갔었어."
"히엑....." 
아무리 억지로라고 해도, 그 "신데렐라"를 봤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어째서, 그걸 1년도 지난 지금에서야 말하는거야. 싫다. 믿을 수 없어."
유미는 동생한테서 쿠션을 빼앗아 푹푹 두들겼다. 그 서툴기짝이 없는 언니B를, 그것도 동생이 봤다니. 그걸 지금까지 모르고 태평하게 살아왔다니. 자신이 얼마나 복받을 인간인가, 라며 진짜로 낙담했다.
"새삼스레 묻지도 않았잖아. 게다가 그런 반응 나올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잠자코 있었던 거고. 흐응. 1년 지나도 아직 부끄러운가보네 유미는."
냉정하게 분석해주는 건 약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의 차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엿한 친동생. 아아, 왠지 밉살스러워. 아니, 부러운거다, 아마도. 정신적으로 뒤쳐진 것 같았으니까.
"정말 괜찮았어."
유키는 삐져서 돌아선 유미의 어깨에 손을 얹고선 그렇게 말했다.
"정말?"
언제부터 이토록 자연스럽게 상냥해질 수 있는 남자가 되었을까. 다시 돌아선 유미는, 동생의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야 유키는 옛날부터 상냥한 애긴했지만, 표현하는 건 서툴기 짝이 없었으니까.
"응. 심술궂은 언니역치고는 귀여워서 미워하질 못하겠더라."
"그거 연기력에 문제있다란 소리잖아..."
"뭐 어때, 본업도 아닌데. 우리들 중에서도 평가 꽤 좋았다구."
어떻게 저토록 세심한 배려의  말을 할 수 있는지 가끔씩 감탄한다. 하다못해 유키의 반만이라도 좋아. 상대가 원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좀더 좀더 언니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동생이 될텐데.
"올해도 올 거야?"
"아마 안갈수가 없겠지. 그쪽이 어떤 기획을 가지고 오느냐에 달려있지만."
그리고 유키는 또 힘이 솟아날 듯한 말을 유미에게 해주었다.
"올해는 나도 함께 창피당할 거니까말야."
-라고.

사치코님한테서 전화가 온 건 시험휴일 이틀째였다. 처음에 전화를 받은 건 엄마였지만, 이틀 전의 그 패닉상태에서 이미 완전히 벗어난 상태여서, 접대용 모드로 똑부러지게 "언제나 딸이 신세지고 있습니다" 라고 인사했고, 사치코님도 믿음직한 상급생답게 "저야말로 유미양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유미는 사치코님 전화란 걸 알자, 수화기에 바짝 붙어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논란이었던 그 쪽 부모님과의 인사는 어떻게 됐냐 하면, 사치코님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마침 집에 안계신 듯해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세요" 란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엄마 혼자서 저토록 끙끙거리셨는데도 현실은 어이없을 정도다. 불의의 일격처럼 상대쪽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고민하고 있을 틈조차 없었다는 게 때마침 다행이었던 것 같다.

"별장에 누구 초대하고 싶은 사람 있어?"
유미가 전화를 바꾸자, 사치코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다.
"네?"
"원한다면 두 세 명정도 불러도 괜찮아."
"하아."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서, 유미는 애매모호하게 맞장구쳤다.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이해못했으니까. 왜 사치코님의 별장에 초대된 손님인 자신이 다른 참가자를 모집해야 할까. 혹시 매년 엄청 불러모아서 떠들썩하게 지내는 것이 관습이고, 유미는 그 중 한사람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올해는 가족이 같이 못가니까 그만큼 사람을 늘리려는 생각에 사치코님은 그런 제안을 하신걸까.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다가,
"언니는 저말고도 다른 사람을 부르셨나요?"
시험삼아 물어보니 대답은
"아니. 부른 사람 없는데."
더더욱 알 수 없어졌다.
"난 괜찮아."
그럼 저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일부러 전화를 걸어왔다는 건, 사치코님은 혹시 떠들썩하게 지내길 원하시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음 그러니까요."
속마음을 알아낸다는 건 어려워. 사치코님은 심술꾸러기시니까, 잘 듣고 파악해내지 못하면, 토라지실 지도 모른다.
"저기, 그럼 요코님을 부르는 건 어떨까요?"
미즈노 요코님은 전 로사 키넨시스로 사치코님의 언니다. 사치코님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모르는 와중에서도 거기서 어떡해서든 누군가를 끌어들여야 한다면 요코님말고 누가 있겠는가. 
"그 분은 언제나 바쁘신 것 같아."
요코님이라면 틀림없이 괜찮을거라 믿고 말했는데, 사치코님이 "바쁘신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이상, 이 방안은 쓸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요코님을 뺀, 다른 두 전 장미님을 부르는 것도 좀 그래.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아니다싶은 기분이 들어.
다음에 요시노양과 시마코양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그래서야 평소 멤버가 되고 말지. 사치코님이 혹시 그걸 바라고 계셨다면, 빙빙 돌려서 말씀하실 것까지 없이 "산백합회 간부 합숙으로 하자." 라고 제안하셨을테니까.
"그럼 언니 반 친구는요?"
"너, 내 얘기 제대로 듣고 있니? 난 네가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부르라고 말했어."
듣고 있다구요. 제대로 듣고 있고 말구요. 그러니까 더 고민되잖아요. 유미는 마음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이 문제, 학기말에 치른 어떤 교과목 테스트보다도 어려워. 너무 하드해서 아, 모르겠어요. 어서 정답 가르쳐주세요 라며 항복하고 싶은 심정이야. 
"아무튼 시험휴일중에는 얘길 해두도록 해. 종업식때 들을 테니까."
결국 그 문제는 숙제가 되고 말았다. 이건 여름방학의 숙제를 전부 뒤져봐도, 가장 머리를 굴려야 할 과제일테지. - 아마도.

 

        *

 

"안 가."
"헷?"
"그러니까 안 간다고 그랬지. 그보다 유미양. 그 얼빠진 대답 좀 어떻게 안 하면, 사치코님이 싫어하실거야."
왠지 며칠 전에 다른 누군가랑 똑같은 대화를 한 듯한 기분이 - . 유미는 자기 방에서 전화기를 든 채로 "흐음"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그건 그렇고, 요시노양. 지금 안간다고 했어?"
"했고말고. 유미양이 오가사와라 가문 별장에 머무는 일정과 우리 후지산 등반일정이 겹치는걸."
결국 유미는 "별장에 안갈래요?"라는 초대의 전화를 망설이다가 요시노양에게 걸고 만 것이다. 평소랑 다를 바 없는 멤버가 되긴 하겠지만, 그만큼 큰 실수는 없을테고, 별로 유키의 이야기에 혹한 건 아니지만 산백합회 합숙같은 것도 나름대로 재밌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시마코 자매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하는데."
뭐 후반기부터 학교에서의 스케쥴이 꽉 잡혀있으니까, 그 외의 시기에 마찬가지로 예정이 들어있다고 한들 우연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겠지. 
"게다가말야, 우리들 부활합숙도 있어. 역시 산백합회와 같이 하는 건 힘드네."
"그렇구나."
유미는 침대에서 데구르르 구르며 손가까이에 있던 크림 화장품을 잡고 돌렸다. 요시노양은 올해 봄부터 레이님과 같은 검도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초대받은 건 유미양뿐이잖아. 방해할 생각없네요."
요시노양은 전화기 건너편에서 놀려대며 웃었다.
"방해라니."
유미는 쓴웃음지었다.
"사치코님이 다른 사람도 초대해도 괜찮다고 말씀하시는거야. 아니 초대하는게 어떻겠느냐라는 식이었나."
"그게 무슨 말이야?"
"잘 모르겠어. 왠지 말야, 두 사람으론 부족한 걸까. 아니면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은 걸까. 하지만 그렇다면 자기 반 친구라든가 부르면 되잖아? 난 사치코님 친구라면 전혀 상관없으니까. 오히려 사이좋게 지내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게 아니니까. 사치코님의 말투를 봐선 유미가 데려오고 싶다면 데려와라란 느낌이거든"
특별히 여름방학때 어디 갈 예정이 없다면 오가사와라 가문이 별장을 제공하지, 같은 말투로. 하지만 유미는 별장에 죽어도 가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언니와의 추억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회사 휴양소가 있으니까 친구들 데리고 갖다오렴 같은 초대방식은 뭔가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고 만다.
"잘 모르겠다."
"그렇지?"
"그게 아냐. 난 사치코님의 말은 처음부터 이해할 생각도 안하고 있었어. 내가 말하는 건, 유미양의 마음이야"
"에?"
"왜 전혀 상관없어? 두사람끼리가 좋다고 왜 말을 못해?"
요시노양은 "왜"를 중복해서 대답을 강요해온다.
".....글쎄. 생각해보니 꼭 두사람끼리가 아니라도 상관없지 않나 해서.."
"거짓말. 왜?"
"왜라고 물어도.."
유미는 다시 생각해봤다. 정월에 오가사와라 저택을 방문했을 때도 세이님들과 함께 즐겁게 지냈었고. 요전번에 사치코님의 할머님댁에 갔을 때도 요코님들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의외로 사치코님도 모두가 모여서 떠들썩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시는걸까, 하는 생각이 요즘들어 문득문득 떠오른다.
"믿을 수 없어."
요시노양의 중얼거림이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요시노양에게 있어서 언니인 레이님은 언제나 함께가 당연하고 우선순위는 항상 톱, 다른 사람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든 존재니까, 자신들과는 다른 자매관계와 맞닥뜨리면 "믿을 수 없어"라는 말이 이미 입버릇이 되었다. 유미가 보기엔 오히려 황장미자매의 끈적끈적한 관계야말로  "믿을 수 없어"인데. 저 정도까지 꼭 붙어다닐 수 있다는 건 기적이란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거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하지만 요시노양이랑 시마코양이 안된다고 한다면...."
그럼 어떻게 할까.
츠타코양이랑 마미양한테 얘기하면 펄쩍 뛰면서 좋아라 따라오겠지만, 일단은 사생활이니까 사진부나 신문부의 눈길이 닿는 곳은 왠지 안심하고 지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고. 그렇다고 카메라 반입 불가라든가 취재거부같은 조건을 내건다는 건, 오히려 걔네들한데 잔혹한 처사 같았다.
"차라리 토오코짱을 부를까."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중얼거리자, 수화기 저편에서 요시노양이 또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바보바보바보바보. 바보아냐 유미양."
"그렇게 '바보'를 반복할 것까지야.."
손가락 꼽아가며 세어보니 합계 다섯 번이다
"그치만 바보잖아."
아, 여섯번째.
"라이벌을 불러서 어쩌자는거야. 오가사와라 가문 별장이란 장소는말야. 그냥만해도 처음 가 보는 유미양한테는 어웨이 경기라고. 그 불리한 상황에서 그 건방진 세로롤머리와 동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해?"
"어웨이 경기-...."
과연 취미 스포츠관람의 요시노양. 비유 하나하나가 어딘가 평범치 않다.
"그럼 토오코짱은 홈경기란 얘기야?"
"홈도 아주 홈이지. 피는 이어져있지 않지만, 그 애는 사치코님의 친척이니까."
"아, 그런가"
그런 얘기도 있었지 참. 유미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열세에 놓인 인간이 우세한 적에게 기회를 줘서 어쩌자는건데."
"아, 응."
"잘 들어. 절대로 부르면 안돼. 사치코님이 뭐라고 그러셔도 안돼."
"요시노양. 무서워."
"유미양이 사람이 너무 좋으니까 걱정해주고 있는거잖아. 아니지, 그보다 어수룩한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우-"
반박할 수 없다는게 괴롭다. 요시노양은 유미가 아무 말 없자, 더더욱 신이나서
"사치코님한테는 둘이서만 가요, 라고 말하는거야. 알겠지? 알아들었어?"
그 박력에 눌린 유미는 일단 그 자리에서는 끄덕였지만-.

"그래? 그럼 세이님이라도 부를까?"
학기 종업식이 끝나고 홈룸 후 만나기로 한 중정에서, 유미의 이야기를 들은 사치코님이 말씀하셨다.
"세이님말인가요?"
전 장미님이라면 에리코님도 계신데 왜 세이님의 이름을 꺼냈을까. 혹시 1개월전의 그 사건을 사치코님은 아직도 신경쓰고 계신건가.
연일 계속된 장마철 하늘처럼, 자매를 짓누르듯 구름이 낮게 드리웠던 그 날, 토오코짱을 질투한 유미는 사치코님한테서 도망치듯 세이님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여름의 오후.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이 짧은 소매 밖으로 나온 팔을 가차없이 태운다. 
유미의 몸과 마음을 차갑게 적셨던 그 날의 장대비가 마치 거짓말이라는 듯. 그 후로 아직 일개월밖에 안지났건만.
"세이님이 함께라면 유미도 즐겁겠지?"
"....."
신기하게도 세이님이란 사람은 유미가 위기에 닥칠 때마다 그 자리에 나타나는 일이 많다. 깨닫고 보면, 언제나 구원의 손길을 뻗어 주신다. 그래서 그만 의지하고 마는 것이다. 사치코님이 그걸 그다지 재밌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걸 유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거 혹시, 질투? - 같은 뻔뻔스러운 분석도 해보곤 했다.
하지만 유미는 줄곧 오로지 사치코님뿐이었고, 바람같은 건 피지도 않았다. 아, 볼에 키스한 적은 있지만, 세이님한테는 그저 인사에 불과할테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유미는 솔직히 자신을 반성했다. 이런 식으로 감각이 마비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생이면 세미나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아, 그럴지도 모르겠네."
사치코님은 수분을 듬뿍 머금어 싱싱한 키작은 나무의 잎을 살짝 어루만지며, 그늘을 골라 중정의 작은 길을 천천히 걸었다. 대충 보니 두사람 외에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맑게 개인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운 법이다. 
혹시 사치코님은 전혀 신경쓰지 않으실지도 몰라. 뒤를 따라 걸으며 유미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세이님을 부르는 건 좀 아니다 싶어, 세이님 대신 다른 이름을 머리 속에서 필사적으로 검색하고는 가장 먼저 튀어나온 이름을 일단 재생시켜 봤다.
"토오코짱은 어떨까요."
머리 속에서 요시노양이 7번째 "바보"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입밖에 나와버린 건 주워담을 수 없는 노릇.
"토오코짱?"
사치코님은 조금 의아한 듯이 되물었다. 그 때 유미는 퍼뜩 깨닫고는 자신의 마음을 향해 통산 8번째 "바보"를 중얼거렸다. 사치코님과 똑같은 행동을 자신이 돌려줘서 뭘 어쩌자는거야. 이래서야 토오코짱을 과잉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말잖아.
"그 애는 안돼."
사치코님이 곧장 대답했다.
"안된다고 하시면..?"
유미는 무언가 살피듯이 물었다. 괜찮아, 아무튼 지금은 사치코산(祥子山)이 분화할 기색은 없다.
"7월에 부모님과 함께 캐나다 여행 간대."
".....캐나다"
그건 뭐라고 할까, 럭셔리한데.
"그럼 안부르는게 좋겠네요."
국내 피서와 해외 바캉스. 아무리 사치코님을 따르는 토오코짱이라 해도, 저울에 달면 역시 해외로 기울겠지.
아무튼 적어도 요시노양에게 혼날만한 사태만큼은 면한 셈인가. 한숨놓은 유미가 사치코님을 바라보자, 희노애락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조용한 옆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듯한 분위기라서 유미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무슨 생각하시는지 물어보는 건 쉬운 일이지만, 지금 말을 걸면 언니한테 방해되는게 아닐까하고 유미도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사치코님이 시선을 느끼고 유미를 바라보자, 유미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언니, 저 혼자서는 불안하신건가요?"
"그럴 리 없잖니. 너란 애는 어째서 이렇게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을 하는걸까."
말은 엄했지만 사치코님은 웃고 계셨다. 
"난 유미가 와주는 것만으로 충분해."
"에."
이 무슨 뿅가는 말씀.
- "유미가 와주는 것만으로 충분"
아, 학생수첩에 적어서 늘 몸에 지니고 다니고픈 말 아닌가.
"저도 언니만 계신다면..!"
날아오를 것만 같은 기분을 간신히 눌렀다. 두사람 다 똑같은 생각이었다니, 너무 너무 기뻤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사치코님은 다른 사람도 부르려고 하신걸까. 그러나 그런 사소한 의문같은 건 "유미가 와주는 것만으로"라는 강렬한 말 앞에서 금새 윤곽이 흐려져 곧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둘만으로 괜찮겠어?"
또또 사치코님은 그런 말씀하시고.
"네!"
유미는 기운차게 대답했다. 두 사람이면 장소가 어디건 즐거울테니까. 
이 때만해도,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들었나요?"
"들었죠."
홍장미자매가 사이좋게 중정에서 어깨를 나란히하며 돌아간 바로 뒤, 무성한 나무 뒤에서 두 그림자가 나타났다.
"오가사와라 가문의 별장. 반드시 초대받고 싶은데. 무리라면 홍장미자매의 휴가를 살며시 엿볼 수만 있어도 좋아."
7:3 앞머리를 핀으로 고정한 짧은 머리의 소녀(이하 73)가 펼쳐둔 수첩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유지니까요."
대답한 사람은 은테 안경의 소녀(이하 안경). 손에 소형 카메라를 들고 있다.
"마음대로는 들어갈 수 없겠군요"
"그건 그렇고 홍장미자매를 쫓아 이 덤불에 숨었을 때는 설마 먼저온 분이 계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뇨 뭘요. 저도 당신이 나타났을 때에는 깜짝 놀랬는걸요."
"관심의 방향이 같다는 얘기군요."
두사람은 웃으면서 등을 쭉 펴고 어깨를 풀었다. 계속 같은 자세로 그곳에 숨어있었던 증거다.
"이건 포기하고 황장미자매나 백장미자매를 타겟으로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의견은 73이 안경에게 물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백장미는 어디로?"
"확실히 교회와 불상전 순회라고."
"황장미는"
"후지산 등반."
73의 취재메모에는 주로 산백합회 간부에 관한 정보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뭐 어느 쪽도 보통 수단으로는 어림없는 곳뿐이군요."
"네. 정말입니다. 하지만 별장부지 밖으로 언제 나와줄지 모를 두 사람에게 매달리기보다는 승산이 있을 듯도."
"하지만 교회와 불상전은 말이죠. 미행은 쉽지만 사진찍기 힘든 곳이 많아서 좀 그렇군요..."
"그렇다고 해서 후지산 등반을 선택하는 날에는. 완벽한 기사에는 완벽한 취재, 가 모토인 저로서는 미행하면서 등반해야만 하기때문에."
"차라리 미행이 아니라 동행으로 변경하는건요? 그 정도로까지 나오면 황장미자매도 분명 취재협력해주겠죠."
안경이 73에게 카메라를 향한다.
"자랑이 아닙니다만, 전 체력에 자신없어요."
"어머나, 신문기자로서는 치명적이네요."
매미의 울음소리를 잘라내듯 셔터의 기분좋은 소리가 한번 울렸다. 교사에 들어가 얼마간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홍장미자매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기력이 몸을 움직여 취재했습니다만, 후지산 등반은 기분상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거니까요."
"상대가 일본 제일이라면 누구라도 떨 수밖에요."
안경은 카메라를 내리며 웃었다.
"그럼 역시 본래 목표는 홍장미자매가 유력한가요. 함께 데리고 가달라고 유미양에게 부탁해볼까요? 의외로 OK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하지만 저 두 사람의 세계란 느낌을 몰래 보고 난 뒤라서 부탁하기도 좀 그렇군요."
"방해꾼일테니까요."
"방해꾼이죠."
후쿠자와 유미의 클래스메이트인 두 사람은 그녀가 얼마나 언니를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 만큼, 아무리 좋은 기사나 사진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그녀의 자그마한 행복을 비집고 들어가는 행동은, 우정이 방해해서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자매의 휴가는 보여주기 보다 보고싶은 법이죠."
"동감합니다. 동감예요. 원하는 건 보도용 미소가 아니라, 사생활 속의 자연스러운 표정이죠."
"그 말씀대롭니다."
의기투합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사진과 신문이라는 장르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기호는 꽤나 비슷하다.
"몰래 숨어들건가요?"
동료가 생기면 사람은 가속이 붙어 대담해진다. 73이 여름방학 전에 짧게 가지런히 친 머리를 귀에 걸치며 살짝 웃었다.
"그건 무모하겠죠. 오가사와라 가문 소유의 별장이면 충분한 경비가 갖추어져 있을테니까요."
너무 나가버리면 제지해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 오히려 안심하고 큰일을 할 수 있는 법. 그 점에서 안경은 기대대로 서포트해 줄 수는 있는 적임자다.
"특히 아가씨께서 머무는 기간이라고 하면 말이죠. 당연히 만전의 세큐리티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불법침입자가 있다면 곧바로 세큐리티 회사가 감지하고 달려든다. 아니, 그정도로 끝나지 않겠죠."
"담장 위에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
"네, 그렇겠죠. 오가사와라 가문이 고용한 가드맨이 위병처럼 문을 지키고, 또 높은 담 주위를 순찰하고-"
"덧붙여 보디가드는 물론 파리 콜렉션 남자모델 출신의 미남자들로 구성."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세계에 파묻혀 있으니까, 그런 남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수비범위를 넘은 상상력은 망상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부풀고 있다.
"반드시 보고 싶군요."
"네, 저도."
두 사람이 꿈꾸는 건, 오가사와라 별장에서 느긋하게 쉬는 홍장미자매의 아름답고도 은밀한 휴가.
덧붙여서 73의 이름은 야마구치 마미, 안경의 이름은 타케시마 츠타코라 한다.
자신들이 모르는 곳에서 그런 대화가 전개되고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못한 채, 그날 밤 유미는 짐꾸리기에 열중했다. 7월의 마지막주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예정으로, 언니와 함께 고원의 별장에 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