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선] 키퍼 스토리 (Keeper's Story) -10- 마지막 승부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오랫동안 헤어져 살던 오빠와 여동생이 다시 만났다. 작은 소녀는 사랑하는 개와 함께 살 수 있고, 엄마는 매력적이고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남자를 만났다. 미래를 위한 계획도 세워졌으며 사람들은 미소지었다. 우리는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나 역시 그들 중의 하나로, 이제는 나도 시 뿐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의 세계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 남았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가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을 본 위스피가 낑낑거리자 사진 작가는 부엌에 걸어 두었던 끈을 가져와 위스피 목에 묶었다.

"샐도 나가고 싶은가 봐요. 차 있는 곳까지 바래다 드리죠."

사진 작가가 말했다.

"키퍼? 너도 나가고 싶니?"

나를 보면서 에밀리가 말했다.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육체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움직여 준다는 것을 부드럽게 표현한 말이다. 나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어 나가고 싶다는 표시를 했다.

"좋아." 에밀리 엄마가 제안했다.

"돌아가기 전에 개들을 산책시키면 어떨까요? 먼 길이라서요."

 

그래서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끈에 묶인 채 내가 옛날에 살던 동네를 걷게 되었다.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사랑하는 에밀리가 내 끈을 잡고 있는 것이고, 그 때는 제대로 훈련도 받지 않은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서 온 일거리 없는 배우가 내 끈을 잡았다는 것이다.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에밀리에게 어릴 때 일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곳을 보여 주고, 위스피가 어렸을 때에는 꼬리도 굽고 못생긴 혼혈 개였지만 순진한 내 동생이고 내 마음의 동반자라는 것도 말해 주고 싶었다.

낯익은 모퉁이를 돌아 잭과 같이 앉곤 했던 장소가 나타나자 내 마음은 슬퍼졌다. 잭과 내가 어떻게 행인들을 속여 우리에게 동전을 던지게 했는지, 그 돈으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았는지를 에밀리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좋은 식당이에요?"

에밀리 엄마가 밝은 목소리로 사진 작가에게 물었다. 우리는 '투쥬르 퀴진'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식당 문은 여전히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었다. 사진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식당이에요. 언제 당신 시간이 넉넉할 때 같이 가서 저녁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개들이 없을 때 가도록 하죠." 에밀리 엄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에밀리 엄마가 우리가 프랑스 요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기만 한다면! 위스피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함께 미소를 지었다. 프랑스 음식에 대한 행복한 기억들!

"셀 다뇨 로띠(어린 양갈비 구이)."

내가 여동생에게 속삭였다.

"라구 드 보(후추를 많이 친 쇠고기 스튜)."

위스피도 잘 기억하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오후인가! 도시의 냄새와 소음, 좋은 인간 친구를 가졌다는 만족감. 그리고 바로 내 옆에 있는 여동생과 함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회상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런데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코, 귀, 눈의 감각이 순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나는 스카의 냄새를 맡았다. 분명 그건 결코 잊을 수 없는 내 원수의 냄새였다. 이어서 내 귀는 그의 낮고 위협적인 으르렁거림을 들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서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의 모습을 보았다. 길 건너편 신문 가판대 옆에 넓적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얼굴과 때가 잔뜩 붇은 짧은 목, 뭉툭한 다리와 나무토막 같이 못생긴 꼬리를 가진 스카가 있었다. 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스카도 나를 알아 보았다. 그의 목에서는 끄르륵대는 소리가 났고, 눈에는 나를 없애겠다는 적의가 불타올랐다.

가만히 둘러보니 에밀리 엄마와 사진 작가는 여전히 식당 앞에 세워 둔 메뉴판을 읽고 있었다. 또 에밀리는 나를 묶은 끈을 느슨하게 잡은 채 위스피에게 몸을 기대 조용하지만 애정 넘치는 목소리로 위스피─절대로 샐이 아니라─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스카의 위협을 알아차린 것이다. 내 오래 전의 각오, 언젠가는 스카를 무찔러 없애겠다는 맹세가 떠올랐다. 지난 몇 달 사이에 나는 훌륭한 시를 많이 지었다. 이제 나는 완전한 시인이었다.

하지만 오래 전에 지은 이 시만큼 나의 씩씩한 각오를 영웅적으로 보여 주는 시도 없었다. 나는 그 시를 다시 한 번 외워 보았다.

 

나는 맹세한다, 스카, 내 모든 힘을 다하리라!

언젠가는 너를 물리치리라!

I vow this, Scar, with all my might!

Someday I'll beat you in a fight!

  

우리 사이에는 넓은 찻길이 있었고, 길 건너편에서 스카는 곧 나를 죽일 듯한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밥을 구걸하다가 협박에 못 이겨 도망가는 애송이가 아니었다. 또 한밤중에 일어나 싸움이나 하려는 사춘기도 지났다. 나는 이제 완전히 자랐다. 나는 화강암처럼 강한 이빨, 단호한 으르렁거림, 단단한 근육질 몸 그리고 누구보다도 멋진 꼬리를 가졌다. 나는 스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우렁차게 짖었다. 그리곤 앞으로 닥칠 싸움에 대비해 에밀리가 쥔 끈을 좀 느슨하게 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지나가던 차들이나 사람들은 그저 무서운 개들이 모여 서로 길 건너편을 향해 짖어 대고 이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스카가 에밀리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스카를 향해 펄쩍 뛰어올라 그를 가로막은 다음 내 강한 이빨을 그의 더러운 목덜미에 박아 넣었다. 그는 증오가 가득한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일생일대의 싸움을 시작했다. 이 싸움에선 오직 하나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에밀리는 좀 떨어진 곳에서 엄마와 함께 비명을 질러 댔다.

그 순간 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다. 우리를 발견한 트럭이 갑자기 멈추어 서긴 했지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스카는 나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거대한 트럭 바퀴 밑으로 사라졌다. 나 역시 거대한 차에 받쳤다. 하지만 처음에는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을 뿐이다. 차들의 클랙슨(자동차나 오토바이의 경적음) 소리, 덜컥대는 소리, 사람들의 수군거림, 그리고 아마도 내가 질렀을 고통에 찬 비명 소리….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없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뒤죽박죽이었다가 잠시 후에는 깜깜한 침묵과 망각이 이어졌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의식을 회복했다가 다시 혼수상태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내 신경이 다시 살아나서 겨우 눈을 떴을 때, 또 다시 나는 그 수의사의 병원에 있었다.

나는 쾌적한 우리 안에 누워 있었다. 내 머리맡에는 물그릇이 있었고 상처 입은 내 몸은 깨끗한 담요 위에 있었다. 수의사가 내 옛날 이름이 친구였다는 것을 밝혀 낸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 우리로 들어온 수의사는 내가 의식을 회복한 것을 보더니 내 맥을 짚어 보고 내 눈동자를 꼼꼼하게 들여다 보았다. 그리곤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친구 맞아?"

내가 한숨을 쉬자 그는 다시 물었다.

"키퍼?"

내 진짜 이름, 키퍼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머리를 들려고 애썼다. 그러자 의사가 내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너는 아주 많이 다쳤어."

그런 말은 필요 없었다. 내가 얼마나 다쳤는가는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 하자 끔찍한 고통이 밀려났다.

"하지만 넌 회복할 거야."

내 목을 쓰다듬으면서 수의사가 말했다.

"곧 완치될 거야. 그리고… 너는 영웅이야. 네가 그 어린 소녀를 구했거든. 넌 에밀리를 구했어."

그 소중한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높이 들었다. 의사가 미소지었다.

"에밀리는 옆방에 있어. 널 보려고 기다리고 있단다." 의사가 말했다.

"모두들 기다리고 있지. 너의 모든 가족들이. 너와 꼭 닮은 개도 함께 있어. 그 개의 이름이 뭐더라? 샐이던가?"

나는 희미하게 끙끙 소리를 내며 머리를 다시 담요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절대 위스피를 샐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위스피를 샐이라고 부를 것이고, 결국 나도 그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내 가족들이 버트와 어니는 데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정이 필요하긴 했지만 고양이들이 늘 하는 입에 발린 거짓 동정은 원치 않았다.

"좋아, 키퍼." 의사가 말을 이었다.

"네가 가족들과 잠시 만날 수 있도록 해 주마. 하지만 넌 편히 쉬어야 한다. 일어서려고도 하면 안 돼. 알았지? 아마 한동안은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울 거야. 하지만 곧 익숙해지겠지. 오래 걸리지는 않아. 아마 네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예전처럼 좋아져서 집에 갈 수 있을걸,"

그러더니 그가 잠시 주저했다.

"어쩌면 완전히 좋아지지는 않을 수도 있어. 좀 달라지긴 할 거야. 하지만 그래도 넌 건강할 테고 모두 너를 영웅으로 생각할 거야. 네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지 항상 그걸 생각하길 바란다."

 

수의사는 우리에서 나가기 전에 내가 얼마나 많이 다쳤는지 말해 주었다. 나는 너무도 놀라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깊게 숨을 내쉬면서 내 스스로를 달래고 마음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시! 시를 지어야겠어. 시를 짓다 보면 이 고통을 잊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혹시 시를 지을 능력마저 내게서 사라져 버린 걸까?

나는 고통스럽게 누워 있었다. 상처 때문이 아니라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 고통스러웠다. 어렴풋이 의사가 내 가족에게 들어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 앞에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용기 있게 행동했다. 내 가족의 품에서도─다행히도 그들은 고양이들을 데려오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했다. 가족들은 번갈아 가면서 나를 껴안고 입맞추고 위로했다. 그러나 마침내 여동생과 단둘이만 남았을 때─가족들은 위스피를 내 우리로 넣은 후 우리끼리만 있도록 조용히 물러갔다─, 나는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처음에 나는 머리를 들고 사랑과 동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평범하지만 진실한 내 여동생에게 상처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앞발을 내밀어라!

Forward my feet!

 

나는 시를 외웠다.

 

세워라 내…

Upright my…

 

하지만 나는 곧 비통하게 울기 시작했다.

"위스피." 나는 울부짖었다.

"내 멋진 꼬리가 잘려 나갔대!"

위스피는 코로 내 목을 문지르면서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내 턱을 핥았다.

"오빠, 오빠 꼬리가 다 잘린 것은 아니야. 오빠 꼬리는 여전히 멋있어."

위스피는 따뜻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했다.

"그렇지, 오빠? 어서 그렇다고 말해 봐."

나는 울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그래, 위스피. 내 꼬리는 여전히 멋있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