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선] 키퍼 스토리 (Keeper's Story) -9- 다시 만난 위스피

꽤나 무거울 텐데 에밀리 엄마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안아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에밀리는 바로 곁에 서서 테이블 끝에 코를 대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나는 정말 아픈 것처럼 여전히 축 처진 채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수의사가 오래 전 내 이름이 '친구'였을 때 나를 치료하던 그 사람인지부터 살폈다. 테 없는 안경을 쓴 뚱뚱하고 유쾌한 그 의사! 아무리 보아도 그 의사가 분명했다.

그렇담 이제 연기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나는 수의사의 팔을 확 떠밀고 청진기를 밀언 낸 다음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그가 나를 붙들기 전에 재빨리 수많은 잡지와 텔레비전 광고를 장식했던 그 유명한 포즈를 취했다. 학구적이면서도 격식을 차리지 않는 그 포즈! 그런 다음 천천히 윗입술을 들어올려 당당하게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에밀리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텔레비전에 나왔던 그 개예요!"

에밀리 엄마가 나를 바라보더니 나지막이 내뱉었다.

"키퍼?"

그러나 나는 아직 키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계속하여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수의사가 나를 꼼꼼하게 살피더니 청진기를 내려놓았다.

"이 개를 어떻게 갖게 되었습니까?"

"글쎄요, 그게…."

그 때 에밀리가 끼어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나를 따라왔어요! 목걸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수의사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내 털을 문질렀다.

"그는 아픈 게 아니에요. 하지만 이 개의 얼굴은 굉장히 낯이 익군요."

"낯이 익은 것은 당연해요." 에밀리 엄마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지난 봄에 주사 맞히려고 데려왔었으니까요."

"아, 물론 그것은 나도 기억해요. 하지만 다른 쪽으로도 안면이 있어요."

나는 한숨을 쉬며 내 자신을 알리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애완용 개의 자취를 털어내고 과거에는 내가 유명한 스타였다는 것을 보이려 애썼다. 그렇지만 우쭐대며 앞으로 나설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테이블 위에서 타일 바닥으로 떨어질 테고, 그와 함께 내 목표와 위엄도 떨어지고 말 테니까. 사실 매끄러운 철판 테이블 위에서는 발톱을 세울 수가 없어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내가 슈퍼 모델이었던 때의 포즈를 취했다. 눈은 앞을 똑바로 보고 초연한 얼굴로 모두를 깔보는 듯한 포즈였다.

"친구?"

수의사의 외침에 나는 얼른 그에게로 돌아섰다. 이제는 사진 작가를 만나는 일만 남은 것이다.

"키퍼?"

그 순간 에밀리가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래서 이번엔 에밀리에게 돌아섰다. 에밀리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부드럽게 핥았다. 손에서는 땀 냄새가 났고 주머니 속에서 묻은 잔털이 남아 있었다.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바로 에밀리다운 맛이다.

 

수의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기록을 보관해 둔 캐비닛으로 갔다. 몇 분 전 '키퍼'라는 이름을 가진 개의 의료 기록을 꺼냈던 바로 그 '캐비닛'이었다. 그는 안을 뒤져 '친구'라는 개의 기록을 찾아 내더니 꼼꼼하게 몸무게와 다른 기록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동안 때때로 미심쩍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에 나왔던 그 개일 리가 없어요. 왜냐하면 바로 오늘 아침에 그 개가 텔레비전에서 요구르트 광고하는 것을 보았거든요."

에밀리 엄마가 말했다.

"엄마, 그런 광고는 반복해서 틀어 주는걸요."

에밀리의 목소리는 아주 우울했다.

"한 달 전쯤 그 광고를 찍었을 수도 있어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틀렸다. 나는 내 평생 요구르트 광고를 찍은 적이 없다.

"이 개를 돌려 주어야 하나요?"

에밀리가 들릴락 말락하게 말했을 때, 나는 에밀리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 '친구'의 기록을 찾아 낸 수의사는 전화기로 다가가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담쟁이덩굴이 덮인 농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었다. 고양이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속으로는 궁금해 죽을 지경이겠지만 겉으로는 전혀 무관심한 척 했다. 보통 때 같으면 에밀리와 엄마는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그러나 그 날 저녁엔 오직 접시에 딱딱 부딪치는 포크 소리만 들렸다. 어색한 기분을 떨쳐 내느라고 많은 사람들이 날씨 얘기를 하듯이 에밀리와 엄마도 가끔 날씨 얘기를 했다. 나는 페인트로 '개'라고 적은 우스꽝스런 내 밥그릇 앞에 앉아서 억지로 밥을 먹었다. 부엌에는 우울함마저 가득했다.

 

다음 날 아침 차를 타고 다시 도시로 가는 동안 우리 모두는 침묵을 지켰다. 에밀리와 엄마는 수의사의 전화를 받고 사진 작가가 보였던 반응에 낙담한 것 같았다. 사진 작가는 나를 발견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리고 나를 대신할 개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내 추측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 개는 위스피가 틀림 없다. 생각해 보시라! 이제 사진 작가는 한 쌍의 개를 갖게 된 것이다. 광고계가 얼마나 흥분할 것인가!

나는 에밀리와 함께 차 뒷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에밀리가 내 귀를 쓰다듬을 수 있도록 에밀리 무릎에 머리를 올려 놓았다. 에밀리는 사랑하는 개를 떠나 보낼 준비를 하면서 슬프게 울었다. 나는 에밀리가 우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내 의도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화려한 도시 생활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런 생활이 싫어 몇 달 전에 도망친 것이 아닌가.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여동생을 만나는 것 뿐이다! 하지만 내 뜻을 나타낼 방법이 없었다.

 

예전에 살던 장소로 가는 동안, 나는 일어서서 차 유리창으로 내 얼굴을 가져갔다. 그리곤 내 가족에게 가능한 많이 내 흔적을 남겨 놓기 위해─비록 지저분한 짓이긴 했지만─, 유리창에 내 입을 문질렀다. 의자에 붙어 있는 내 털과 반쯤 씹은 생가죽 뼈가 차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자 조금 기쁘기도 했다. 차가 모퉁이를 돌자 '투쥬르 퀴진'이 보였다. 그 식당 뒤에 있는 내가 태어난 골목을 생각하며 나는 슬피 울었다.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것이 언제인가.

얼마 가지 않아 에밀리 엄마는 약도를 확인하더니 사진 작가의 아파트 앞에다 차를 세웠다. 그는 아직도 그 멋진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내 가족들은 그 아파트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에밀리는 한숨을 지으면서 나를 위해 새로 산 가죽 끈을 역시 새 것인 목걸이에 고정시켰다. 난 오랫동안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시골 생활을 즐겨 왔다. 그 생각을 하자 조금 슬퍼졌다. 나는 시를 짓기 시작했다.

 

가죽 끈과 목걸이, 목걸이와 가죽 끈

꼭 벼락 부자 같이 보이는구나!

Leash and collar, collar and leash

Make a dog look nouveau riche!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렇게 비참하고 슬플 때 단 한 번에 음을 맞출 수 있다니, 뿐만 아니라 이 시는 내가 지금까지 지은 시 중 가장 잘 된 시가 아닌가!

첫 줄에서 서로 바꾸면서 되풀이한 단어들, 영어와 프랑스어의 조화 그리고 독창적이고 세련된 음! 하지만 계속 시만을 생각하고 있을 순 없었다. 용감하고 사랑스런 에밀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가 살던 8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끈을 꼭 잡았다. 또 사진 작가가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문을 연 사진 작가 옆에 사랑스런 위스피가 서 있는 것 아닌가!

 

위스피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다가와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내가 오빠라는 것을 확인하자 미친 듯이 기뻐하면서 뛰어오르고 내 귓가에 캥캥 짖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사진 작가가 물었다. 사진 작가와 에밀리, 에밀리 엄마가 지켜 보는 가운데 나와 여동생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마구 껴안으며 마루를 데굴데굴 굴렀다.

"내 생각에 이 개는 집 욕심이 많고 싸움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군요. 저 개는 자기 집에 다른 개가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난 것 같구요."

"아니오, 그는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차 안에서 굉장히 불안해 했었거든요."

사진 작가의 말에 에밀리 엄마가 대꾸했다.

"그는 불안해 하지 않았어요. 그저 조금 우울할 뿐이에요."

에밀리가 고쳐 말했다.

 

 

잠시 후에 위스피와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 바닥에 나란히 엎드렸다. 우리 꼬리가 바닥을 리듬감 있게 톡톡 쳐 댔다. 나는 위스피 꼬리를 바라보았다. 어릴 때 빈약하던 꼬리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지만 아직도 위풍당당한 내 꼬리에는 한참 못 미쳤다. 그것을 보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 안도감에 약간 죄책감을 느낀 나는 사과의 표시로 위스피 얼굴을 핥아 주었다. 위스피도 내 얼굴을 핥았다. 우리는 에밀리 옆에 나란히 누워 지난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나는 내 여동생에게 고백했다.

"사람들이 너를 데려갈 때 사실 난 엿보고 있었어. 마분지 상자 밑에 숨어 있었거든. 그런데 너와 함께 가려고 마음을 바꿔 달려나가자 벌써 식당 문이 닫혔지 뭐야. 그리고 너는 가 버렸어."

"나를 따라올 생각을 하다니 오빠는 정말 용감했구나." 위스피가 말했다.

"아니야. 전혀 용감하지 않았어. 비겁했어! 무서워서 숨어 있었거든. 그런데 사람들이 너를 보호소로 데려가서는 잠을 재운다고 하잖아. 난 네가 좋은 담요와 따뜻한 불 옆에 잠자리를 갖게 될 거라 생각했어."

위스피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난 철장 안에 갇혀 있었는걸. 벼룩 투성이인 데다가 음식도 형편 없었어."

"나도 그렇게 좋은 음식을 먹지는 못했어."

나는 동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위스피에게 잭하고 지낼 때 어떻게 쓰레기통을 뒤지며 음식을 구했는지 얘기해 주었다. 내가 쥐에 대해 말하자 위스피는 무서움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내가 살던 곳도 벼룩은 많았어."

나는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사진 작가는 에밀리 엄마에게 커피를 대접하기 위해 부엌으로 데려갔다. 부엌에서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에밀리는 나와 위스피 사이에 누워 우리 몸 위로 팔을 걸쳤다. 인간에게는 낑낑거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텐데도 에밀리는 마치 우리 대화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보호소에서 사는 게 나쁘진 않았어. 하지만 사람들이 와서 다른 개들을 데려가는 것을 보면 슬펐어. 다른 오빠들도 집과 가정을 찾았거든. 터그는 식당 요리사가 데려갔어. 그런데 터슬을 데려가겠다고 한 그의 친구는 마음이 변했나 봐. 그래서 나와 터슬은 보호소로 갔지. 하지만 며칠 뒤에 어떤 사람이 오더니 자기 아이에게 생일 선물로 주겠다고 터슬을 데려갔어. 그래서 터슬도 가족을 갖게 되었는데 누구도 나를 고르지 않는 거야."

위스피의 입술이 조금 떨렸다. 위스피는 같이 지내던 테리어나 셰퍼드 등이 얼마나 귀여움을 받았고, 어떻게 하나씩 입양되었는지 이야기했다. 위스피는 수줍음이 많아서 친구를 사귀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마침내 위스피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보호소 생활에 익숙해지면 바로 그 친구를 누군가가 와서 데려갔다.

"고양이들도 데려가더라니까!" 위스피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상상을 해 봐! 사람들이 오더니 고양이를 고르는 거야! 고양이를 골랐다니까!"

고양이까지 입양되어 가는데 자신을 고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내 여동생은 얼마나 슬펐을까? 난 동정의 표시로 으르렁거렸다.

"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 보호소에선 일정 기간만 맡거든. 그런 다음엔 없애는 거야."

"없앤다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위스피가 슬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잠시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선택받지 못한 개와 고양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묵념했다.

 

"너는 어떻게 살아남았니?" 내가 물었다.

"보호소를 운영하던 사람 덕분에. 날 좋아했던 것 같아. 나는 음식에 대해서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었고 주는 대로 다 먹었거든. 음식을 남긴 적도 없고, 여간해선 짖지도 않았어. 집도 항상 깨끗하게 청소했고. 그래서 나를 그냥 두기로 결정했나 봐. 내 생각엔 그가 보호소 규칙을 깬 것 같아. 그러던 어느 날 사진 작가가 보호소로 왔어. 그는 거의 미쳐 있었어. 굉장히 비싼 개를 잃어버렸다면서…."

나는 '비싼'이란 단어를 음미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위스피가 말을 멈추었다.

"계속해 봐. 그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말했니?"

"글쎄, 오빠가 다 자란 남자고 굉장히 지적이고…."

"정말 그가 '굉장히'라고 그랬어?"

"응, 정말 그랬어. 그가 보호소장에게 혹시 누군가가 오빠를 데려오지 않았느냐고 물었거든. 몸집은 중간쯤 되고 털이 긴 개를 찾는다고 했어."

"그냥 털이 길다고만 했어? 털 자체가 얼마나 멋진지는 얘기하지 않고? 아마 그가 풍성한 털이라고 말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것 같기도 해. 하지만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해." 위스피가 대답했다.

"혹시 꼬리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어?"

멋진 꼬리로 양탄자를 휙휙 쓸면서 내가 물었다. 그에 답하듯 위스피도 자기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기억을 해. 왜냐하면 그 날 보호소 당직이 사진 작가에게 모든 개집을 돌아 보도록 했는데 사진 작가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거든! '오, 하나님! 내가 찾는 개는 아니에요. 하지만 둘은 정말 닮았어요! 저 꼬리 좀 보세요!'."

 

나는 이야기하는 동안 고개를 돌려 위스피 꼬리를 바라보았다. 어릴 때 볼품 없었던 그 꼬리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스피의 꼬리는 숱이 적은데다가 끝은 휘어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나는 적절한 표현을 찾으려고 애쓰며 위스피에게 물었다.

"사진 작가가 네 꼬리를 내 것에 비교했다는 뜻이니?"

"그래, 맞아. 우리 꼬리가 너무 닮았다면서 놀라더라니까."

위스피가 발랄하게 대답했다. 맙소사! 나는 바야흐로 우리가 유치한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물론 네 꼬리가 나쁘진 않지.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내 꼬리가 훨씬 멋지다고 생각해."

"하지만 내 꼬리는 개성이 있는걸.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위스피가 상냥하게 물었다.

"그럼. 네 꼬리는 확실히 개성이 있어." 나는 인정했다.

 

위스피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야기는 단순했다. 사진 작가가 위스피를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는 위스피를 훈련시키고 다듬어 내 후계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위스피는 모델 일을 즐기고 있었다. 위스피는 촬영장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 끊임 없는 빗질, 털을 건조하게 하는 밝은 조명─물론 위스피는 한 번도 내 털처럼 윤기가 흘렀던 적이 없었다─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진 작가와 위스피는 행복하게 살았다. 또 그 둘은 서로 뜻이 맞았다. 만약 오늘 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위스피의 생활은 전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크리스토퍼는 이렇게 결정했어!"

양탄자 위에 엎드려서 우리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에밀리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위스피와 나는 에밀리 엄마를 올려다 보았다. 에밀리도 엄마를 바라보았다. 크리스토퍼라고? 나는 그게 사진 작가의 이름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키퍼를 집으로 데려갈 거야."

그 말에 에밀리 얼굴이 환해졌다. 내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이다. 가족과 함께 농장으로 돌아가게 되다니! 이제 위스피가 안전한 곳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마음 놓고 농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

"키퍼가 내 이름이야." 나는 여동생에게 속삭였다.

"내 이름은 샐이야." 부끄러운지 위스피가 킬킬거리면서 속삭였다.

"하지만 두 마리가 모두 필요한 특별한 경우가 생기면 그 때는 크리스토퍼가 키퍼를 빌려 갈 거야."

사진 작가가 엄마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그리고 주말에, 그러니까 샐과 내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우리가 농장으로 가서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개들을 함께 놀게 할 거야. 둘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니까."

위스피─나는 절대로 샐이라 부르지 않겠다─는 굉장히 기뻐하며 사랑이 가득한 몸짓으로 내 목을 비벼 댔다. 나는 위스피의 귀를 핥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