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선] 키퍼 스토리 (Keeper's Story) -8- 텔레비전 속의 위스피

평온한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가족의 일원으로, 어린 아이의 애완견으로 편안한 날들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나는 에밀리 침대 옆에서 잠을 잤고, 베개 하나를 차지한 버트와 어니가 찡찡대는 것을 무시하면서 아침마다 에밀리의 얼굴을 핥아 잠을 깨웠다.

 

여름은 정말 좋은 계절이었다. 방학을 한 에밀리는 매일 집에 있어서, 우리는 함께 뜰에서 뛰어 놀고 근처 풀밭을 산책했다. 나는 강아지처럼 나비와 여치를 쫓아 깡충깡충 뛰어 다니기도 하고, 에밀리와 키 큰 수풀 속에서 숨바꼭질도 했다. 그건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서로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장난이었다. 나는 에밀리에게 공을 던지는 법도 가르쳤다. 에밀리가 공을 던지면 그것을 물어다 주었다. 어쩌다 가끔씩 고양이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우리와 함께 놀기 위해 문 밖으로 나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놀이가 지루하고 유치하다는 듯이 잠시 어슬렁거리다가는 햇볕 잘 드는 자리를 발견하고 그 곳에 누워 하품을 해 대며 빈둥거렸다.

 

한가한 시골의 여름이 거의 끝날 무렵, 에밀리의 앞니가 다시 났다. 에밀리 엄마는 에밀리에게 새 신발을 사 주었다. 어느덧 다시 학교로 돌아갈 때가 온 것이다. 아침마다 나는 에밀리와 함께 지저분한 길을 걸어 에밀리가 학교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을 본 다음에야 농장으로 돌아왔다. 낮에는 뜰에서 쉬면서 우리 집을 감시하거나 에밀리를 기다렸다. 가끔씩 재미 삼아 다람쥐를 쫓아 다니기도 했다. 버트와 어니는 창틀에 늘어지게 앉아서는 나의 익살맞은 행동을 멸시하는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거의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그들은 발에 진흙이 묻지 않을까, 윤기 흐르는 털에 이슬이 묻지 않을까 그것만 걱정했다. 내 평생에 그들처럼 게으르고 쓸모 없는 동물들은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나는 그 둘이 싫지 않았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땐 난 공손하게 부엌 문을 긁었다. 그러면 에밀리 엄마는 내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 주었다. 내 밥그릇엔 언제나 깨끗한 물이 담겨 있었고 부엌에는 야채와 방금 구운 빵 냄새가 떠돌았다. 얼마나 행복하고 평온한 삶인가! 난 화려한 슈퍼 모델 시절을 떠올렸다. 그런 날들이 끝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후회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함께 고생했던 사진 작가는 때때로 생각났다. 또한 다정다감했던 잭을 생각할 때마다 슬픔이 북받쳤다. 하지만 함석 지붕 아래서 떨며 잠자고,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찾던 것만은 생각하기 싫었다.

어렸을 때 기억은 엄마에 대한 것이 대부분으로 그 때를 생각하면 어느덧 내 가슴은 따뜻해진다. 비록 엄마는 우리를 버리고 떠났지만 나는 오래 전에 엄마를 용서했다. 하지만 사납고 싸우기 좋아하던 내 형제들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없었다. 나는 오직 위스피만 그리웠다. 때때로 버트와 어니가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위스피를 잃은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오래 전, 내게도 여동생이 있었지!

오, 상상할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동생에게…

Once, long ago, I had a sister!

Oh, can you imagine how I have…

 

나는 두 번째 줄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내가 생각한 음은 '입을 맞췄는지(kissed her)'였으나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나는 햇살 가득한 뜰에 누워 꾸벅꾸벅 졸면서 계속 시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데 비가 내리던 어느 아침이었다. 에밀리를 학교에 바래다 주는 것은 이제 내 의무가 되었다. 에밀리는 반짝이는 비옷과 장화를 신고 비 때문에 생긴 진흙 구덩이를 철벅거리면서 걸었다. 나는 내 겉모습이 망가질까 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털이 물에 젖으면 꼴불견이기 때문에 나는 이슬이 묻을까 봐 아침 산책도 썩 즐기지 않았다. 언젠가 비옷을 입은 바이마라너(사냥개의 일종)를 보고 아주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젖고 보니 비옷을 입는 것이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에밀리 엄마는 고맙게도 두터운 타월로 내 몸을 닦아 주었다. 과자를 만드는 중이었는지 부엌에서는 밀가루 냄새가 났다. 나는 몸을 흔들어 아직도 몸에 딱 달라붙어 있는 내 털을 부풀어 오르게 했다. 주방 한 쪽에는 작은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나는 텔레비전 광은 아니지만 오래 된 래시 영화를 보는 것은 즐거웠다. 더할 나위 없이 지적이고 귀족적인 모습을 한 래시를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났다. 개가 농장의 부엌으로 들어오고, 엄마는 과자를 굽는 내 상황은 정말 래시의 배경과 비슷했다. 물론 래시의 생활에는 샴고양이는 없었지만.

 

그 순간에도 버트와 어니는 그들 자리인 창틀에 앉아서 째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혀로 내 털을 핥으면서 래시의 부엌에는 텔레비전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양탄자 주위를 빙빙 돌다가 누워 하품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고양이들이 한 목소리로 앵앵거렸다.

"키이이이이퍼."

동시에 에밀리 엄마의 놀란 목소리도 들렸다.

"키퍼!"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셋이 동시에 내 이름을 불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편안한 자리를 떠나기가 싫은 나는 목을 뒤튼 채 작은 화면을 올려다 보았다. 텔레비전에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처음엔 개의 뒷모습만 보였는데 그 개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꼬리를 내리고 건방진 태도로 걷고 있었다. 그 다음에 카메라는 저지방 요구르트를 마시는 여자에게 초점을 맞추어 요구르트의 상표가 눈에 확 들어오도록 비추었다. 여자가 입술을 빨더니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정말 좋아요!" 여자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에밀리 엄마는 웃음을 터뜨리며 과자판을 오븐 안으로 밀어 넣고, 다시 오븐 문을 닫았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껐다. 고양이들도 다시 자리에 앉더니 발톱을 한 번 살피고 눈을 감았다.

"저 개는 꼭 너를 닮았구나, 키퍼! 그 개를 봤지? 요구르트를 맛보더니 얼굴에 표정을 짓는 거야.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 버리더라니까!"

나는 개의 뒷모습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꼬리는 굽어 있었고 엉덩이에는 희미한 반점이 있었다. 언젠가 거울에 비친 내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내 엉덩이에도 그런 반점이 있다. 에밀리 엄마로부터 그 개 표정에 대해 들은 나는 비웃는 표정을 상상해 보았다. 그것은 내 표정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개는 내가 아니다. 나는 요구르트 광고를 찍은 적이 없다. 사진 작가가 나와 비슷하게 생겼고 또 나처럼 되고 싶어하는 개를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혹시 그 개가? 갑자기 내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오래 전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먼저 골목 모습부터 그려 보았다. 쓰레기통 뒤에 있던 안락했던 우리 집과 거기에서 서로 껴안고 잠자던 형제들. 그리고…우리 가운데 가장 작았고 항상 엄마 젖을 빨기 위해 버둥거리던 위스피! 위스피는 영양 부족에다 지저분하고 얼굴도 못생겼었다. 털은 단정치 못했고 꼬리도 반듯하지 않았다. 갑자기 나는 위스피 왼쪽 엉덩이에 희미한 반점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믿을 수 없어진 나는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갔다. 마치 그 광고를 다시 볼 수 있기나 한 것처럼. 하지만 텔레비전은 이미 꺼져 있었고 에밀리 엄마도 없었다. 농장 부엌에서 나는 소리는 오직 냉장고 모터가 희미하게 돌아가는 소리와 샴고양이 두 마리가 코 고는 소리, 그리고 창문에 부딪는 물방울 소리 뿐이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 만약 개가 사람의 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살기가 쉬울까! 만약 우리가 편지를 쓸 수 있고, 전자 메일을 보낼 수 있고,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말해!" 하고 명령하면 짧게 "우!" 하고 외칠 뿐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잘 했다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비스킷을 준다. 나는 칭찬도 비스킷도 필요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정보였다. 양탄자 위에서 낮잠을 자는 척하면서 나는 그 날 하루 대부분을 위스피를 찾을 방법을 궁리하면서 보냈다. 광고에 나왔던 개는 위스피가 분명하다. 세상 어느 개도 나와 그렇게 비슷한 행동을 할 수 없고, 꼬리가 이어지는 부분에 나와 똑같은 희미한 반점을 가질 수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걸어서 위스피에게 가는 것인데 그 방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방향에 대한 개의 본능과 냄새, 기억을 되살린다면 물론 내가 살았던 도시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겠지. 그러나 시간도 많이 걸릴 테고 내가 도망친 골프장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숲을 이리저리 헤매야 한다. 거기부터는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머리가 나쁜 개들도 차도를 따라서 몇 십 킬로미터를 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니 결국 도시로 가기는 갈 것이다. 그리고 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진 작가에게 가는 길을 찾아 그 집에서 드디어 위스피를 만날 테지. 대체 위스피는 어떻게 나를 대신하는 역할을 얻게 되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게 되었고 내 것이라고 생각한 이 작은 농장과 가족을─고양이까지─ 떠난다는 뜻이다. 만약 내가 가족을 버린다면 지킨다는 뜻인 '키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준 사람들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은 일이다. 나는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어떤 선택이 옳은지 생각하느라고 끙끙거렸다.

 

대답은 무엇일까? 어떤 것이 옳은 길일까?

떠나는 것? 남는 것? 어디로? 누구에게…

What is the answer? What is the way?

To leave? Remain? To go? To…

 

나는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었고 시에 맞는 적당한 말도 찾을 수 없어 괴로웠다. '머무르는 것(abide)'이 의미는 정확했지만 음으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창틀에서 내가 도덕적, 문학적 고민 때문에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을 내려다보던 버트와 어니가 더 이상은 봐 줄 수 없다는 시늉을 했다. 내 고민이 무엇인지 그들이 알 리 없었다.

"아아아아."

언제나처럼 그들은 함께 말했다.

"네가 그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니까 우리가 잠을 못 자자아아아아잖아."

둘은 다른 잠자리를 찾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에밀리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도 다는 여전히 양탄자 위에 누워 있었다.

"오늘은 나를 기다리지도 않았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니, 키퍼?"

에밀리는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머리를 들어서 진지하고 믿음직한 에밀리 눈을 바라보았다. 가엾은 에밀리! 에밀리는 내가 떠날 생각을 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그 생각을 하니 다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 에밀리가 엄마를 불렀다.

"키퍼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봐요! 신음을 해요! 어디가 아픈가 봐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에밀리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서둘러 달려온 에밀리 엄마가 에밀리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 순간 나는 정말 행복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감기가 든 것일지도 몰라." 에밀리 엄마가 말했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네. 오늘 아침에 비를 맞고 들어와서는 재채기도 했거든."

"배도 아픈 것 같아요, 엄마. 방금 전에 신음 소리를 냈어요."

 

그 순간 갑자기 내 마음 속에 한 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내 동생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썩은 토끼 고기를 먹으면서 숲 속을 헤맬 필요도 없다. 갑자기 눈 앞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내가 끙끙거리면서 언짢다는 듯이 머리를 맨바닥에 내려놓자 에밀리 엄마는 냉장고로 갔다.

"먹을 것을 좀 주어 보자. 뭘 가장 좋아하지? 어떤 게 식욕을 돋울까?"

"개 먹이는 말고요. 개 먹이는 싫어해요. 혹시 마카로니나 치즈 남은 것 없어요? 마카로니와 치즈를 좋아하거든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에밀리 얼굴이 빨개졌다.

"식탁 밑으로 몇 번 주었더니 정말 좋아했어요."

에밀리가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는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은 눈을 반쯤 뜬 채 에밀리 엄마가 한숨을 쉬며 냉장고에서 접시 꺼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좀 데우는 것이 좋겠지?"

에밀리 엄마가 물었다. 나는 끙끙거렸다. 개들은 음식을 데울 필요가 없다. 차가운 마카로니와 치즈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였다. 나는 머리를 들고 귀를 약간 치켜 올렸다. 내 꼬리가 애처롭게 바닥을 탁탁 치는 것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찬 음식도 상관 없어요. 보세요. 음식 얘기만 듣고도 벌써 아까보다 나아 보이죠?"

에밀리가 말했다. 나는 에밀리 엄마가 '개'라고 씌어진 그릇에 마카로니와 치즈를 쏟아 붓는 것을 지켜 보았다.

하지만 밥그릇이 내 옆에 놓이는 순간 나는 내 계획을 생각했다. 나는 내 여동생을 찾아야 한다. 이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동생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거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바로 내 코 앞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놓여 있다. 마카로니 냄새, 특히 체다 치즈와 파르마 치즈 냄새가 내 코를 간질였다. 그 음식을 포기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다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그릇에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포기한 것이다. 나는 큰 소리로 신음하고 몸부림치면서 머리를 바닥에 비벼댔다.

 

"이제 알겠다."

에밀리 엄마가 밥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아픈 게 확실하구나. 비옷을 다시 입어라, 에밀리. 수의사에게 데려가야겠다."

에밀리 엄마가 나를 차로 데려가는 동안 나는 축 처진 채 팔에 안겨 있었다. 마치 래시나 린-틴-틴 같은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그들을 속이는 건 미안했지만 내 계획을 이루자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마지막에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