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선] 키퍼 스토리 (Keeper's Story) -7- 신분증 사건

그렇게 해서 나는 그 집에서 고양이와 살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살았다. 버트와 어니는 불친절하다기보다는 내성적이었고 이제는 내게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이 내게 그렇게 적대감을 보였던 것은 그들도 놀라서였다. 우리는 가끔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그들 목소리에 섞여 있는 콧소리는 내 기분을 언짢게 하기 일쑤였다. 또한 그들은 모든 고양이가 그렇듯이 지루하고 자아도취적인 데다 시끄러웠다. 때문에 나는 대부분 다른 곳에서 내 즐거움을 찾았다.

우리는 부엌에서 나란히 밥그릇 두 개를 놓고─고양이들은 하나를 같이 썼다─ 밥을 먹었다. 그들의 밥에서는 참치 냄새가 났는데 나는 그 냄새가 싫어 맛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내 밥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 밥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밥은 깡통에 든 고품질 말고기였는데 나는 여러 가지 소스를 뿌린 파스타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느덧 말고기 먹는 데 익숙해지긴 했지만 때때로 에밀리와 엄마가 마카로니나 토텔리니를 먹을 때면 나도 그런 음식을 좋아한다는 표시를 하고 싶었다. 나는 식탁 옆에 얌전하게 앉아 그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먹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가끔 에밀리가 조금씩 주긴 했지만 엄마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만약 이 개가 귀찮게 군다면 내보냈을 거야. 밥 먹을 때 조르는 개는 질색이거든. 그런데 저렇게 얌전히 앉아 있기만 하니까 뭐라고 할 말이 없구나."

어느 날 에밀리 엄마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에밀리 엄마가 발로 구걸하는 자세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엄마가 내게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구걸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얼굴이 잘 생겼죠?" 에밀리가 엄마에게 말했다.

"그는 항상 미소를 짓고 있어요."

나는 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침을 꿀꺽 삼켰다. 내 표정에 대한 에밀리의 이야기는 옳았다. 그 곳에 도착한 후 나는 기분 좋고 쾌활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이 집 식구들이 모두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이어서 고양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를 제외하곤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끊임없이 미소를 지은 이유는 에밀리 가족들이 내 옛날 신분을 알아내지 못했으면 해서였다.

 

예전에 비웃는 듯하고 깔보는 듯한 내 표정은 유명했다. 도시에서 살 땐 내가 산책이라도 나가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피플> 지는 나를 산책시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서 온 할 일 없는 배우의 사진과 함께 간략한 약력을 싣기도 했다. 에밀리 엄마는 몇 번이나 내 얼굴이 정말 눈에 익숙하고, 전에 어디선가 본 것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나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평온하고 축복받은 표정을 지니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아마 개들이 가끔 자신의 옆구리를 긁으면서 무심코 웃는 모습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미소를 몇 번이고 연습한 다음 습관화시켰다. 처음 몇 주 동안은 그 집에서 계속 살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가져도 될까요?' 라는 아이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의 경우 '안 돼.' 였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머물러도 될 것 같은 조짐이 나타났다. 에밀리 엄마는 이 빠진 빵 굽는 접시에 밥을 담아서 내게 주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새 밥그릇이 나타났다. 별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 옆에 '개'라는 글씨를 쓴 무거운 도자기 그릇이었다. 그리 품질이 좋은 도자기는 아니었지만 나를 위해 산 것이었으므로 그 밥그릇은 내가 이 곳에서 계속 살아도 된다는 표시였다.

 

그리고 이름도 갖게 되었다. 어느 서늘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벽난로 옆에 앉아 있는데 에밀리가 또 다시 말했다.

"정말 잘생기지 않았어요?"

에밀리 엄마는 웃으면서 내가 잘생겼다는 것에 동의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키퍼(keeper; 사냥터지기)가 아닌가 싶어."

"엄마 말씀 들었니, 키퍼?"

에밀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엔 럭키, 그 다음엔 친구, 이제는 키퍼가 내 이름인 모양이다. 나는 그 이름에 대답을 했다. 그들이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면 달려갔고, 그 이름의 뜻에 맞게 살아가려고 했다. 그들이 나를 키퍼라고 부르는 것은 나에게 집을 지키라는 뜻이 아닌가!

에밀리 엄마가 내 이름을 키퍼라고 지어 주자 나는 평생 그 집에서 살아도 될 것 같았다. 어느 한가한 시간에 나는 내 이름으로 짧고 가벼운 시를 지었다.

 

한때는 럭키였고, 친구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이제는 마침내 키퍼가 되었다…

Lucky I was, Pal I became!

Now, at last, Keeper…

 

두 번째 줄은 골치 아팠다. '이제는 키퍼로 불린다(Keeper's what I'm called)'는 어떨까? 왠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시 짓기를 그만 두었다.

그러던 중에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신분증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저녁 벽난로 앞에 앉아 있을 때 에밀리 엄마가 말했다.

"키퍼에게 신분증을 만들어 주어야겠다."

나는 이미 신분증이 있다. 도시에서 사진 작가와 아파트에서 살 때, 나는 금속제 신분증을 갖고 있었다. 그 신분증은 목걸이에 매달아 두었는데 사진 작가는 그 목걸이를 가죽 끈과 함께 항상 부엌에 걸어 두었다. 아마 지금쯤 나를 추억하기 위해 사진 작가는 그 신분증을 잘 모셔 두었을 것이다. 어쩌면 액자에 넣어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액자에 담겨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유리를 끼운 다음 '친구'라고 생긴 이름표를 붙여 내가 그와 함께 살았던 기간을 적어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액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피아노 옆 벽에 걸려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목이 메어 왔다. 나는 친구들 몇 명을 아파트로 불러 함께 식사하는 사진 작가를 그려 보았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사이, 누군가가 피아노 쪽으로 가서는 건반에 손가락을 내려놓고 옛 노래를 칠 것이다. 그 때 그는 벽에 걸린 액자를 발견한다. '친구'라는 이름표가 붙은 액자 말이다. 액자 속에는 벨벳 바탕에 단단히 고정시킨 작은 신분증─아마 지금은 청동을 입혔을지도 모른다─이 들어 있을 것이다. 사진 작가가 친구들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피아니스트는 그에 어울리는 곡을 부드럽게 칠 것이다. 그들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고 잠시 침묵이 흐르겠지. 그들은 나에 대해 노래를 부를지도 모른다.

 

점잖은 친구, 아 정말 뛰어난 개였지─

넌 지금 어디 있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Gentle Pal, O dog supreme─

Where are you now? What might have been?

 

두 번째 줄은 음이 맞지 않았다. 첫 줄을 '깨끗한 개였지(O dog so clean)'로 바꾸면 어떨까? 그렇다면 두 번째 음을 영국식으로 길게 발음을 해야 할 텐데…. 아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개였지(O dog, my Pal through thick or thin)'가 더 나을 것 같다. 이제야 음이 제대로 맞는 것 같다. 음을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시인은 때때로 시를 여러 번 고쳐야만 한다.

"수의사와 약속을 했어. 신분증을 만들려면 먼저 광견병 주사를 맞아야 하거든."

에밀리 엄마가 말했다. 내가 이미 필요한 주사는 다 맞았다는 것을 에밀리 엄마가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몇 번이고 다시 맞으면 어떠랴. 내 신분증을 위해서라면, 합법적이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되기 위해서라면!

나는 버트와 어니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들이 에밀리 침대에 앉아 있는 모습은 꼭 베개처럼 보였다. 가까운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끔씩 얘기를 나누었다. 거실에는 에밀리와 엄마가 있었다. 계단에서는 거실이 아주 잘 보인다. 나는 잠시 계단에 서서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포즈, 진정으로 고마워하는 포즈를 취했다.

 

저 개를 보아라! 그는 너의 것! 너는 그의 것!

이 얼마나 영광스런 날인가!

Observe the dog! He's yours! you're his!

What a glorious day this is!

 

물론 아무도 내 시를 듣지 못했다. 내 시는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에밀리는 고개를 들더니 내가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미소 지었다. 나는 계속 계단을 올라갔다. 버트와 어니는 하나로 똘똘 뭉친 채 에밀리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코로 툭툭 쳐 그들을 깨우자 둘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여전히 잠에 취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어어어~야?" 그들이 말했다.

"왜 깨애애애~우고 그래?"

이 고양이들은 함께 동시에 말하는 버릇이 있다. 날카롭게 낑낑거리는 그들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묵직한 개들의 목소리와는 딴판이다.

"나는 신분증을 만들 거야."

나는 자랑스럽게 그러나 조금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버트가 다시 하품을 하더니 기지개를 켰다. 그러자 어니는 까탈스럽게 그의 발을 핥았다.

"왜애애애애?" 그들이 물었다.

"물론 너희들은 이해 못 할 거야. 고양이들은 신분증이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개를 선택하면 말이지… 그 개를 평생 돌보겠다고 결심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여."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똑같이 하품을 했다. 그리곤 버트는 그의 수염을 다듬고, 어니는 늘쩍지근하게 발을 폈다 접었다 했다. 둘 다 나를 질투하는 것이 분명했다.

"개들은 신분증이 있어. 그건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표시야. 일종의 상징이지."

나는 그들이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을 모르는 척 했다. 아마 속으로는 내가 굉장히 부러울 것이다.

"신분증이라." 고양이들이 능글맞고 거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때를 위해서 난 시를 하나 지었어."

나는 한껏 감정을 담아 내 시를 외우기 시작했다.

 

저 개를 보아라! 그는 너의 것! 너는 그의 것!

이 얼마나 영광스런 날인가!

Observe the dog! He's yours! you're his!

What a glorious day this is!

  

버트가 목을 울리면서 킬킬 웃었다.

"시인 신분증이라도 된단 말이니?"

그의 말에 어니가 코웃음을 치며 쌀쌀맞게 말했다.

"정말 웃기는군."

그리곤 그들은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쭉 펴더니 서로를 휘감아 안았다. 눈이 다시 한 번 쭉 째지는가 싶더니 내 존재를 무시해 버리고 그들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기분이 상해 거실로 내려왔다. 잠시 동안 저 고양이들을 아주 죽여 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상상도 했다. 그러나 에밀리가 귀 뒤를 긁어 주자 나도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다음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에밀리 엄마와 찾아간 병원이 사진 작가와 함께 살 때 들렀던 바로 그 병원인 거이다. 나는 오래 전에 똑같은 금속제 테이블에 앉아 혈통 좋은 개라면 반드시 맞아야 하는 예방 접종을 받았던 일을 기억했다. 나는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구 떨었다. 주사 맞을 때 고통이 거의 없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수의사가 나를 알아볼 것 같아 걱정되었다. 나는 잔뜩 움츠린 채 떨면서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완전히 바뀐 나의 표정만이 이 상황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작가가 찍어서 유명해진 비웃는 듯한 표정은 바로 나의 상징이었다. 그 표정만 없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나를 다른 개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나는 제멋대로인 내 꼬리를 내렸다. 멋진 꼬리지만 이 때만은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다행히도 오늘은 꼬리가 내 말을 잘 들었다. 내가 불안해하는 것을 알았는지 꼬리도 겁에 질려 밑으로 축 처졌다. 그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캐비닛 속 어딘가에 '친구'의 의료 기록이 있을 테지만 아무도 나를 '친구'와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이름 '키퍼'로 새로운 기록을 갖게 되었다.

 

주사를 맞기 전 에밀리와 엄마가 따뜻함이 가득한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광견병 주사와 그 외에 신분증을 얻을 때 필요한 다른 예방 접종을 받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내 이름이 새겨진 금속제 신분증이 도착했다. 그 신분증은 내 이름표를 단 목걸이에 고정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목걸이를 걸었지만 난 반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 그 신분증은 내게 매우 중요했다. 내 목에서 찰랑거리는 신분증은 고양이를 포함하여 모두에게, 이제는 내게 집과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은 내가 이름표를 찰랑거리면서 지나갈 때마다 그 소리 때문에 그들의 예민한 귀가 고통받는다는 듯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상처받은 것은 귀가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 줄 증명서가 없었다. 그들의 빈정대는 버릇은 열등한 동물에게 흔한 방어 수단일 뿐이다. 고양이들은 내가 이름표를 찰랑거리고 지나가는 것을 보기만 하면 '웃기는 핫도그'라면서 건방진 목소리로 나를 비꼬았다. 하지만 나는 대꾸할 가치도 없어서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