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선] 키퍼 스토리 (Keeper's Story) -6- 새 가족

내가 가져도 될까요? 바로 이것이다. 만약 개가 집까지 그를 따라왔다면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녀를 따라서. 사실 그 아이는 소녀였다. 나는 소녀를─소녀는 자신이 나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시골에서 이틀 밤낮을 헤맨 끝에 발견했다.

 

내가 정말로 해방되었고 야성을 되찾았다는 것을 처음 느꼈을 때는 너무 기뻤다. 나는 내 기쁨을 사슴과 너구리, 매와 숲 속에 사는 수많은 다른 동물들과 함께 나누며 걸어다녔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자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내가 엄마 젖을 떼고 처음 먹었던 식사는 파테 파이, 테린(냉육 보존용 항아리에 넣어 보존한 고기)과 가토 과자 같은 프랑스 음식이었다. 나는 베샤멜 소스와 네덜란드 소스의 차이도 알았고 그 차이는 내게 중요했다. 결코 사치스럽지는 않았지만 잭과 지낼 때도 음식에 관한 한 어떤 기준이 있었다. 시장이 문 닫은 다음에 우리는 음식을 찾기 위해서 쓰레기통을 뒤졌다. 쓰레기통에서 가끔 사과나 배가 나오기도 했는데 만약 썩은 곳이 있으면 잭은 주머니 칼을 꺼내 썩은 자리를 조심스럽게 베어 냈다. 그는 나와 자신을 위해 음식을 반으로 나누기 전에 반드시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폈다. 잭은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처지라 음식을 골라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지는 않았다.

어느 날 잭은 피자 조각을 주워 왔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음식을 먹는 기쁨을 맛보았다.

"나쁘진 않아, 럭키. 하지만 정말 좋은 파스타를 맛볼 날이 있을 테니 기다려 봐. 대합 조개 소스를 친 링귀니나 페투치니 알프레도가 좋겠지. 그걸 먹으면 진짜 이탈리아 요리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나는 사진 작가를 통해─우리 생활이 명성과 돈 때문에 망쳐지기 전에─ 이탈리아 요리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푸타네스카 소스! 푼기, 까르보나라! 개들은 우는 일이 없었지만, 이틀 간 숲에서 헤매는 동안 프랑스 소스와 이탈리아 소스 생각에 나는 거의 울 뻔 했다. 게걸스럽게 진흙 투성이 양배추 더미를 물어뜯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부드러운 아스파라거스를 생각했다. 죽은 토끼 시체를 놓고 떠돌이 주머니쥐와 다툴 땐 매운 소스를 뿌린 토끼 고기가 생각나 너무도 서글펐다. 토끼를 뜯어먹는 동안 쥐를 게걸스레 먹던 스카와 그 때 느꼈던 혐오감도 생각났다. 그 순간 내가 내 원수처럼 초라한 존재가 된 것 같아 갑자기 소름이 쫙 돋았다.

나는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틀 동안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인생은 달콤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숲 속에서 나온 나는 조심스럽게 길을 찾아 나섰다. 나는 몸을 흔들어 몸에 붙어 있는 썩은 토끼의 털부터 떨어 냈다. 그런 다음에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보다 나은 삶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런데 숲 속에서 나와 얼마 걷지 않았을 때 그 작은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는 손에 교과서를 들고 담쟁이덩굴이 덮인 작은 농장을 향해 지저분한 도로를 걷고 있었다. 소녀는 교육을 잘 받았는지 내게 부드러운 말씨로 인사하면서 얌전하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손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러자 소녀는 부드럽게 내 머리와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나는 내 멋진 꼬리를 자랑하려고 앞뒤로 흔들었다. 소녀도 나에 대한 인사로 머리 뒤쪽에 달린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나는 그 꼬리가 내 꼬리보다 멋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본 결과 사람 꼬리는 결코 개 꼬리보다 나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소녀는 꼬리를 리본으로 대충 묶었고 끝 부분에는 츄잉 껌 같은 덩어리가 달려 있었다. 내 몸에도 가끔 찐득거리는 것이 달라붙을 때가 있는데 그것을 떼어 낼 때마다 아주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소녀의 문제가 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소녀가 내게 미소짓자 앞니가 빠진 잇몸이 드러났다. 이를 제대로 닦지 않았거나 아니면 누구와 무섭게 싸운 것 같았다. 싸움을 생각하자 스카 생각이 났다. 나는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나는 도시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고, 스카는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이미 과거 속의 존재였다. 그리고 위스피도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집으로 가자!"

 

나는 소녀를 따라 졸래졸래 걷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자 소녀는 나를 위해 뒷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를 따라왔어요."

소녀가 엄마에게 말했다.

"정말이니?"

소녀의 엄마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잘 보이고 싶어서 최대한 멋진 자세를 취했다. 머리를 세우고 목을 약간 기울인 다음 귀를 기울이는 바로 그 자세! 나는 비단결 같은 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꼬리까지 살래살래 흔들었다. 꼬리로 물음표 모양도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아시다시피 꼬리는 제멋대로여서 주인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내가 가져도 돼요?"

소녀가 망설이며 말하자 소녀의 엄마는 피식 웃었다.

"분명히 주인이 있을 거야."

"목걸이도 없는걸요."

"어디 떨어뜨렸겠지. 주인을 찾아 보도록 하자. 그런데 정말이지…."

별안간 소녀의 엄마는 몸을 숙이더니 나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야."

소녀의 엄마는 내 머리를 토닥이면서 자세히 내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그 토닥거림과 소녀의 엄마에게서 나는 냄새가 마음에 들었다. 그건 향수 냄새가 아니라 케이크 반죽 냄새였다.

나는 혹시 소녀의 엄마가 나를 알아볼까 걱정이 되었다. 내 얼굴이 낯익은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소녀의 엄마는 잡지 표지나 광고판 또는 텔레비전 광고에서 내가 비웃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 그녀가 나를 기억해 내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나는 다르게 웃으려고 애쓰며 입술을 움직였다. 내 유명한 표정을 감춰서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고 싶었다. 걱정으로 가득한 내 마음 속에 짧은 시가 떠올랐다.

 

입술아, 미소지어라! 비웃는 표정아, 사라져라!

Smile, lips! Hide, sneer!

  

나는 두 번째 줄의 음을 생각했다. '선물(souvenir)', '선구자(pioneer)', '샹들리에(chandelier)' 등의 말이 떠올랐지만 정말로 쓰고 싶었던 말은 '두려움(fear)'이었다. 그 말이야말로 내 기분을 정확히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발 가까이 놓인 유리 그릇 때문에 나는 두 번째 줄의 음을 맞추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어느 새 내 발 옆에는 그릇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에는 물이 담겼고 다른 하나에는 놀랍게도 뵈프 부르기뇽(부르고뉴산 쇠고기 찜)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당장 그릇에 입을 댔다.

"스튜 남은 거야."

소녀의 엄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딸을 돌아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 개가 버섯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에밀리!"

오, 이 아주머니가 내 과거를 알기만 한다면. 버섯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내 형제들은 그 작은 덩어리들을 싫어했지만 위스피와 나는 버섯을 아주 좋아했다. 엄마는 우리가 좋은 음식을 보는 눈이 있다고 좋아했다. 나는 우아하게 스튜에 들어 있는 버섯을 혀로 골라 낸 다음 하나씩 하나씩 맛있게 먹었다. 그 다음에는 쇠고기와 국물, 하다 못해 내가 싫어하는 야채인 당근까지도 깨끗이 먹어 치웠다. 스튜 옆에 있던 물그릇에서 물을 마시는 것으로 나는 멋진 점심 식사를 끝냈다. 뵈프 부르기뇽은 볼로냐 스파게티 다음으로 맛있는 음식이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렇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나는 집 주위를 돌아보고 싶어졌다. 숲 속에서는 주변에 관심을 두진 않았지만 사진 작가와 살 때는 하루에 두 번씩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잭과 지낼 때에도 우리는 아침마다 강가를 거닐면서 주변 경치를 즐기고 우정을 나누었다. 나는 당당하게 문으로 걸어가서 열어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절대로 비웃는 표정은 짓지 말자고 수없이 내 자신에게 말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그 표정은 안 돼!

"에밀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가 보다. 문을 열어 주어라."

소녀의 엄마가 다시 케이크 반죽을 하면서 말했다.

"도망가면 어떡하지?"

작은 소녀는 걱정스런 목소리였다. 난 속으로 웃었지만, 소녀의 엄마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에밀리, 그 개가 방금 쇠고기 스튜를 한 그릇이나 먹었는데 도대체 왜 도망을 가겠니?"

아, 정말로 이 아주머니는 나를 잘 이해하는군. 나는 내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 기뻐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나는 수풀을 헤치고 다니면서 주변에 무엇이 사는지 알아보기 위해 냄새를 맡았다. 근처에 개들이 살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잘 된 일이었다. 아직 나는 영토 전쟁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방에서 고양이 냄새가 났다. 우리 개들은 고양이의 특이하고 기름기가 많으며 톡 쏘는 듯한 냄새를 싫어한다. 또 고양이를 다루는 것은 지겨운 일이다. 하지만 맛있는 스튜도 먹은 데다가 귀여운 아이와 친절한 목소리를 가진 아주머니가 있고, 또 이틀 밤낮을 숲 속을 헤매느라 나는 무척 피곤했다. 결국 나는 이 곳을 떠나지 않고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리를 들어올려 상록수 잎더미에다 일을 보았다. 여기가 내 땅이라는 표시였다. 그런 다음에 새로운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 예의 바르게 문을 박박 긁었다.

 

 

이 집에는 아빠가 없는 것 같았다. 그 점에서 나의 새 가족은 개의 가족과 닮았다. 엄마들은 어린 아이들을 자상하게 돌보지만 아빠들은 대개 나 몰라라 하고 어디론가 가 버리기 일쑤이다. 나는 에밀리 엄마는 에밀리를 잘 돌보는데 내가 사랑하는 엄마는 왜 우리들을 버렸는지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개들은 늘 그러니까. 개와 사람이 다르다는 것, 그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가족은 우리 가족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형제가 없다는 것이다. 에밀리는 외동딸이었다. 귀여운 에밀리는 나에게 집 구경을 시켜 주면서 놀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가르쳐 주었다. 창을 통해 큰 방 한 구석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고 그 햇살을 받은 마루는 따뜻했다. 나는 그 자리가 어떤지 보려고 반쯤 몸을 말고 햇살 아래 누웠다. 아직 숲 속을 헤맬 때 쌓인 피로가 남아 있어서인지 졸음이 쏟아졌다. 그러나 에밀리는 다른 곳을 더 보아야 한다면서 나를 재촉했다.

"봐, 이건 벽난로야!"

나를 거실로 데려가면서 에밀리가 말했다.

"겨울에는 여기에다 불을 피워. 냄새가 아주 좋단다."

에밀리는 벽난로 앞에 놓인 양탄자를 가리키면서 내가 그 위에서 잠자도 된다고 했다. 내 마음 속에는 달력에 쓰면 딱 어울릴 멋진 장면이 하나 떠올랐다. '벽난로 옆에서' 아니면 다른 가정적인 제목을 단 사진. 그 그림은 내가 예전에 달력용으로 찍었던 사진들보다는 훨씬 소박할 것이다. 달력에 쓸 사진을 쓸 때 나는 매 달마다 다른 표정을 지어야 했는데─12월의 사진을 찍을 땐 산타 클로스를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상상해 보시라!─, 그 때 조용하고 가정적인 사진이 더욱 사람의 마음을 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고양이 냄새가 계속 났다. 나는 그 냄새가 신경에 거슬려, 불안하게 거실을 둘러보았다. 의자 위에 놓인 시커먼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것은 그냥 접어 놓은 스웨터였다.

  

코는 예민하게! 눈은 빈틈없이!

절대로─

Alert, my nose! Be watchful, eyes!

Don't let─

 

두 번째 줄의 음으로 '놀라다(surprise)'라는 말을 생각하고 있는데 에밀리가 다시 한 번 나를 불렀다. 에밀리는 내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이리 와, 내 방을 보여 줄게. 버트와 어니도 만날 수 있단다. 내 침대에 있을 거야."

에밀리는 계단을 향해 깡충깡충 뛰었다. 그 뒤를 따라 좁은 계단을 타박타박 걸어 올라가면서 나는 속으로 킬킬 웃었다. 개와 어린이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함께 놀고 뒹굴고 같이 잘 인형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사진 작가와 살았을 때─난 그 때를 벌써 과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여러 가지 양 가죽 장난감을 사 주었다. 양이나 사람 모양도 있었고, 공도 있었다. 내가 너무 험하게 갖고 노는 바람에 곧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말았지만 숲 속을 헤맬 때도 그 장난감들이 생각났고, 지금도 보고 싶다. 어쩌면 에밀리는 자기 장난감 중에서 하나를 나에게 줄지도 모른다. 버트나 어니, 둘 중의 하나를. 나는 텔레비전에서 봐서 둘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얼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야한 색깔의 옷을 입은 장난감들로, 옛날 내 양 가죽 장난감만큼은 맘에 들지 않지만 부드러워서 씹기에는 좋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장난감'이란 상표를 위해서 광고를 한 번 찍었는데 그 때 촬영장에 버트와 어니 인형이 몇 개 굴러 다녔었다.

 

나는 에밀리를 따라 청소가 잘 된 복도를 지나 두꺼운 양탄자가 깔리고 책과 장난감이 가득한 방으로 들어갔다.

"버트, 이리 와! 어니, 어딨니?"

에밀리가 혀를 끌끌 찼다.

"새로 온 우리 개야. 아직은 이름이 없어. 그렇지만…."

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에밀리 베개에 몸을 기대고 있던 두 털복숭이 고양이들도 기겁을 했다. 창백하고 겁에 질린 눈 두 개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쥐 틈에서 보내야 했던 그 끔찍했던 밤들이 기억났다. 그들은 파란 눈에 짧은 털을 가진 샴 고양이였는데 그 어떤 고양이일지라도 개에게는 정말 끔찍한 존재다. 조금도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털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나와 에밀리가 보는 가운데 그들의 몸이 점점 커지더니 둘이 동시에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그것은 음침하고도 불길한 소리였다. 그들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도 물론 그들처럼 으르렁거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나운 소리에 비한다면 내 것은 그저 신음 소리에 불과했다. 애처로운 울음일 뿐이었다. 나는 차라리 입을 다물기로 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제껏 계속 사람의 보호를 받은 나는 진정한 두려움을 겪은 적이 없었다. 가장 무서웠던 건 오래 전 스카와 맞닥뜨렸던 때로, 그 때 나는 아주 어렸었지만 내 본능은 나보다 한 수 위인 상대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 주었다. 정말 힘이 달릴 때는 훗날을 약속하고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덕분에 나는 스카에게서 무사히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한밤중에 스카와 격투를 벌였을 때인데 그 때는 오직 잭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싸움은 무승부였으며 나는 많은 피를 흘렸다.

 

지금도 나는 스카 못지 않게 무서운 적과 마주 보고 있다.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의 적과 말이다. 너무 무서워서 에밀리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에밀리는 쾌활하게 방 안으로 들어서더니 전혀 떨지도 않고, 여전히 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이미 다 자란 어른이었다. 한때는 유명한 스타였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내게 적대적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싸워 봤자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둘이고 나는 혼자다. 그들은 고양이고 나는 개이다. 나는 이 고양이들에게 내 움직임이 그들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질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가능한 한 몸을 덜 움직이며 조심스럽게 바닥에 엎드린 다음 발랑 누워 그들에게 배를 내밀었다. 그것은 항복의 표시였고 정말 치욕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좁은 방 안에서 두 마리 악당에게 포위된 내가 그 방에서 무사히 살아 나가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나는 덜덜 떨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시를 지었다. 내 충성의 표시로, 그들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표시로 그들에게 바치는 시였다. 내 시를 듣는다면 그들은 나를 살려 줄지도 모른다.

 

멋진 고양이님! 완벽한 동물이시여!

아… 당신을 최고로 존경합니다!

Noble felines! O beasts supreme!

I hold you in…ah…extreme esteem!

 

별로 잘 된 시는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진심으로 항복한다는 것과, 내가 정말 살고 싶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 줄 말을 찾느라고 허둥거렸다. 하지만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서 시를 짓는 것은 어려웠다. 이렇게 시를 지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시를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에밀리는 어쩌면 그렇게 겁도 없는지 침대로 조금씩 다가갔다. 침대 위에는 나를 공격할 채비를 갖춘 고양이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등을 바닥에 대고 배를 드러낸 비참한 자세로 누워 에밀리를 바라보았다. 내 다리들은 공중에서 버둥거리고 있었고 쓸모 없는 내 꼬리는 등 밑에 깔린 채였다.

"이런 못된 것들 같으니라고."

에밀리가 겁도 없이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자 나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다. 너무 가까이 다가섰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고양이들이 그 무서운 송곳니로 에밀리 손을 물 것만 같았다.

"그냥 개야."

고양이들을 하나씩 쓰다듬으면서 에밀리가 설명했다. 그러자 고양이들의 털이 점점 가라앉더니 본래의 반지르르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곧 그들의 눈이 감겼다.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잦아들었고 대신 만족감으로 목에서 가르랑가르랑 소리가 났다. 아무도 내 시를 듣지는 않았지만 나는 방금 전에 지었던 시를 고쳤다. 고양이를 늘 기억하고 있기는 하겠지만 다시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내 의지를 강조한 시였다.

 

털은 정말 아름답다! 눈은 번쩍인다!

네 자존심만큼은 나에게 뒤지지 않는구나!

Fur so fine! Eyes agleam!

You rival me in self-esteem!

 

좀 전의 비참하고 굴욕적인 내 모습을 아무도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나는 얼른 몸을 추스려 바닥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등을 침대 모서리에 비벼댔다. 내가 방금 바닥에 누웠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뭔가 내 등을 간질였기 때문이라는 시늉을 하면서.

"이리 와서 버트와 어니에게 인사해."

에밀리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서 고양이의 목을 간질이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목을 구부린 채 관능적이고 버릇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나를 완전히 무시했다. 나는 여전히 얼어 있었지만, 에밀리가 시키는 대로 몸을 앞으로 숙여 버트와 어니에게 차례대로 코를 갖다 댔다. 그런 다음 재빨리 물러나 하품을 했다. 정말 마침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하품이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