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4권 로사 카니나 -1- 쓸쓸한 따뜻함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マリア樣が見てる)

로사 카니나(ロサ カニ-ナ, Rosa Canina)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

상쾌한 아침인사가 맑게 갠 하늘에 메아리친다.
마리아님의 정원에 모인 소녀들이 오늘도 천사같이 천진한 웃음을 띠고 높은 문을 지나간다. 더러움을 모르는 몸과 마음을 짙은 색의 교복으로 감싸고.
스커트의 주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얀 세일러 칼라가 펄럭이지 않도록, 차분히 걷는 것이이곳에서의 몸가짐. 물론 등교시간 아슬아슬하게 뛰어가는 등의 품위없는 학생따위 존재할 리도 없다.
사립 리리안 여학원.
메이지 34년(1902년)에 건립된 이 학교는 원래 귀족의 영애를 위해 세워졌다는, 전통있는 가톨릭계열 아가씨 학교이다.
도쿄시내, 무사시노의 옛 모습이 남아 나무가 많은 이 지역에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일괄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녀들의 정원.
시대는 변하고 연호가 메이지에서 세번 바뀌어 헤이세이가 된 오늘날에도 18년간 다니면 온실에서 순수배양된 아가씨들이 박스에 포장되어 출하된다는 시스템이 아직도 남아 있는 귀중한 학교인 것이다.
 
새해가 밝아 새학기.
온 세상의 수험생들은 칠초죽(七草粥. 정월 7일에 일곱가지 봄 나물을 넣어 끓인 죽 - 역자주)으로 정월 기분에 일단 마침표를 찍고 막바지 준비를 위해 머리띠를 다시 졸라맬 시기지만, 그곳은 느긋한 아가씨들이 모인 리리안 여학원. 팽팽한 분위기 같은 건, 어딜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시업식날, 새해 첫 인사고 해서 '안녕하셔요(ごきげんよう)가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おめでとう)'로 바뀐 정도를 빼면, 뭐 이렇다할 변화도 없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이것도 다, 마리아님이 지켜보고 계시는 덕택.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며, 두갈래 갈림길의 작은 숲 속에 서 계신 하얀 마리아상 앞에서 장갑을 벗고 양손을 모으는 학생들의 모습도 단아하다.
그 중에서.
뭔가 특별한 기도라도 하고 있는 건지, 아까부터 꽤 오랫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기도를 드리고 있는 학생이 한명. 마리아님의 정원을 둘러싼 울타리의 약간 오른쪽에서, 부드러운 검은 머리를 턱선에서 깔끔하고 가지런히 자른, 시원한 얼굴의 소녀.
뒤이어 등교한 학생들이 차례차례 그녀 옆에 서서 마리아님께 인사하길 벌써 5명째인데도, 그 기도는 끝나지 않는다. 일일이 옆 사람을 확인하고 기도하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이래저래 이미 3분은 지났겠지.
이윽고 눈을 뜬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듯 힘있는 눈길로 마리아님을 올려보았다.

 

 

          쓸쓸한 따뜻함(寂しいぬくもり)

 

 

    1

 

3학기 첫날.
리리안 여학원도, 다른 학교들과 똑같이 시업식으로 새학기의 막을 올린다.
"우- 추웠"
1학년 복숭아반 35번, 후쿠자와 유미는 복도에 나서자 마자 부들부들부들하고 말이 몸서리치듯떨었다.
봄에 태어난 관계로 겨울에는 힘들다. 게다가 이 오래된 교정 구조란 비참할 정도니까. 복도같은건 거의 바람통로나 마찬가지. 지금 곧바로 교실에 돌아가, 난로 옆에서 따끈따끈하고 싶어.
하지만 그걸 할 수 없는 게 학교생활의 힘든 부분이니. 지금부터 강당에서 시작될 시업식에 나가는 것이, 학교에 온 학생들의 의무이며 권리니까 어쩔 수 없다.
조금 전 울린 종은, 오랜만에 듣는 탓인지 묘하게 낭랑한 소리로 차가운 공기 속을 퍼져나갔다.
평소라면, 아침 종이 그치는 것과 동시에 방송으로 아침예배가 시작된다. 하지만, 식이 있는 날은 패스. 시업식 전에 전교 아침예배를 해버리자는 게 학교측의 합리적인 생각. 담임 선생님도 새해 인사를 하고 출석을 부른 후, 평소의 HR을 생략하고 교무실로 돌아갔다.
"신속히 복도에 정렬해서, 앞 반을 따라 강당으로 가도록"
선생님이 남긴 지시에 학생들은 '예에-' 하고 얌전히 대답한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부터 세어도 시업식과 종업식을 합하면 다섯번째. 이쯤 되면 익숙해져서,선생님의 눈이 있건 없건 나름대로 문제없이 해 내게 된다. 아니, 선생님 눈이 없어지니까 제대로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강당은 따뜻할 거야, 분명히"
겨울에 태어난 카츠라양이 쓴 웃음을 짓는다. 너무 추워서, 일회용 손난로를 파리마냥 양손으로비벼대고 있는 동급생의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양이다.
"그 포즈, 잘먹을께"
목소리와 함께 플래쉬가 터진다.
놀라서 그쪽을 보자, 다케시마 츠타코양이 2학기 종업식때 가지고 있던 것과는 또 다른 새 카메라를 '어때' 하는 듯이 들고는 웃고 있다. 지난번 건 크리스마스 선물이고, 이번엔 세뱃돈으로 산 거겠지 하고 예상은 되지만. 대체 몇 대 가지고 있으면 속이 풀리는 걸까.
"츠타코양, 식장에 카메라는 곤란해"
클래스메이트 몇명이 무서운 얼굴로 그녀를 둘러싸, 엄중히 주의를 주었다.
실은, 츠타코양. 2학기 종업식때 급기야 플래쉬를 터뜨려 선생님들의 시선이 우리 반에 집중되었다는 전과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 곧바로 카메라를 숨기고 그 뒤로는 얌전히 있었기 때문에 식은 그대로 진행되었지만. 근처에 있었던 학생들은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니까.
"......알았어요. 카메라는 케이스에 넣어 둘께요. 그러니까 빼앗지 마"
"어쩔 수 없구나. 절대로 꺼내면 안돼"
귀중품 주머니는 이미 선생님이 가지고 가신 후라서, 다들 어쩔 수 없이 카메라의 휴대를 허락했다. 자칫 교실에 놔둔 채로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카메라는 비싸니까. 그건 그렇고 호주머니에 카메라를 넣으니, 원피스의 주름이 부풀어 올라서 조금 보기 흉했다.
"출석번호대로 섰어? 국화반이 나갔으니까, 따라서 나가 줘"
반장의 호령 아래, 1학년 복숭아반도 두줄로 서서 추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도중에 지나친 중앙정원의 그늘에는 서리기둥이 흙을 들어올려서 마치 버섯이 무리지어 자라는 것 처럼 보였다.학교에서의, 추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강당에 들어가는 순서는 저학년부터. 맨먼저 1학년 자두반, 다음은 등나무반, 그 다음은 국화반.이후로 복숭아반, 소나무반, 동백반 순서로 들어가서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1학년이 입장하고 나면 다음은 2학년, 그리고 3학년. 입학식이나 졸업식은 주역이 마지막이라고 정해져 있지만, 그 외에는 나이 어린 사람이 언니분들은 맞는다는 형식이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2학년이 강당에 들어왔을 때, 버릇없게도 유미는 무심코 뒤돌아 언니를 찾아 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셨다간 '두리번거리지 마' 라며 야단맞을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런건 이미 동생의 천성이나 마찬가지니, 특별히 용서해 주셨으면 한다. 이건 학부모 수업 참관일에 뒤를 돌아보는 아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유미 외에도, 똑같이 입구를 보고 있는 1학년은 몇명이나 있다.
'뭐어, 시마코양은 그렇다 치고'
비스듬히 앞쪽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시마코양은, 예상대로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어, 이쪽 스-루(자매)는 특수한 경우니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레이님 없인 못살 요시노양은'
그러나, 먼저 입장한 국화반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요시노양은 옆자리 클래스메이트와 소근소근뭔가 이야기하고 있는 참. 이제 마침 레이님이 등장하는 장면인데도 그쪽을 힐끔이나마 바라보지 않는다.
"......"
생각해 보면.
시마코양 쪽은 방임주의적 자매인데다, 요시노양 쪽은 항상 같이 있는 자매니까 새삼 존재를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라는 건, 부끄럽게도 유미는 장미 패밀리의 1학년 중에서 혼자만 침착성 없이 눈을 움직이고 있었다는 게 되는 것 같다.
'나, 혹시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건가......?'
확하고 머리에 피가 몰렸다. 그러던 때, 마침 타이밍도 좋게 2학년 소나무반이 입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니의 이름은, 오가사와라 사치코. 반에서 줄설 땐 이름순이 기본이니까, 차례 같은건 금방 돌아온다.
두근두근.
버릇없다고 야단맞더라도, 역시 시선이 그쪽에서 헤엄쳐 버리고 마는 걸.
1, 2, 3, 4...... 결석한 사람이 있는지, 다섯번째에 사치코님이 나타났다. 나타나서는, 유미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떽' 하고 야단치는 듯한 표정을 한 후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왓, 왓, 왓......!'
야단맞았는데도, 어째선지 볼 근육이 풀린다. 할 수만 있다면 곁에 가서, 직접 꾸짖는 말을 듣고 싶어, 라니.
'혹시 나, 마조히스트?'
언니가 그저 동경하는 상급생이었던 때에 비해서 유미의 '사치코님 병'은 완전히, 그리고 확실히진행하고 있다.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로군요. 약을 지어 드릴 테니, 매 식사 후 반드시 복용해주세요>
로사 기간티아와 똑같은 얼굴을 한 의사 선생님의 환각이 나타나서, 심술궂게 씨익하고 웃었다. 흠칫하고 얼굴을 들자, 벌써 3학년의 입장도 시작되어 있었다.
"유미양, 곧 시작되니까 그만 일어나는게 좋아"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카츠라양이, 작은 소리로 말해 주었다. -아무래도, 5분쯤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유미는 하품을 눌러 삼켰다. 조금 수면부족 기미였다.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언니. 몇일이나 못 만났던 언니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젯밤은 흥분해서 제대로 자질 못했던 것이다. 역시,꽤 심각한 '사치코님 병' 이다.
'안돼, 안돼'
멍하니 있으니, 또다시 로사 기간티아의 환상이 나타나서 억지로 꿈나라에 데려가 버린다. 갑자기 따뜻해져 버린 바람에, 방심하면 즉시 눈꺼풀이 자동적으로 내려 온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앞을 본다. 단상의 마리아님과 눈이 마주쳐, 왠지 존 것을 야단맞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그것은 교문에서 이어지는 은행 가로수의 갈림길에 계시는 새하얀 마리아상이 아니라, 평소에는 손님용 현관에서 이어지는 사무소 앞의 홀에 계시는 풀컬러의 마리아님. 왼손에 예수님을 안고, 머리 위에는 훌륭한 관을 얹고 계신다. 오늘은 식을 위해, 특별히 강당에 출장와 계시는 모양이다.
'어라?'
출석을 다 부르자 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던 클래스메이트 한명이, 요리사복 같은 하얀 옷을 교복위에 겹쳐입고서 찬미가를 부르고 있다.
'아아, 그런가'
성가대도 3학년이 은퇴한 거구나, 하고 알아챈다. 그때까지 1학년은, 성가대라고 해도 주로 뒤치닥거리 밖에 하지 못한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던가. 뭐어, 뒤치닥거리 하면서 성가를 배우거나 하고 있었겠지만. 드디어 오늘 데뷔라는 건가.
학생들의 입장이 끝난 후 강당을 돌아보자, 왠지 3학년 근처가 한적한 것 같았다. 아무리 느긋한교풍의 리리안 여학원이라 해도, 역시 이 시기의 고등학교 3학년은 이래저래 바쁜 걸지도 모른다. 1학년 1학기나 2학기때의 시업식에 비하면, 결석자 수가 꽤나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2

 

"그건 일리있는 말이구나"
장미의 관에서 언니가 대답했다.
"시험치는 분들은 그 준비로 바쁠 테고. 3학년 학생주임 선생님도 무리하게 나올 필요없다고 하신 것 같으니까"
"그런가요?"
요시노양이 늦게 들어온 사치코님 앞에 따뜻한 홍차를 끓여 왔다. 의자에서 약간 늦게 일어서는 바람에 일을 빼았겨 버린 유미는 하릴없이 미지근해진 컵에 입을 대고 뜸을 들였다. 왠지, 긴장된다. 만나지 않으면 쓸쓸한데, 곁에 있으면 어쩌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된다. '언니'란, 정말로 신기한 존재다.
"리리안은 그다지 입시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으니까, 각자의 자주성에 맡기고 있달까"
그렇게 말하며, 사치코님은 곱은 양손을 녹이려는 듯 양손으로 컵을 감쌌다.
종업식이 끝나고, 통지표를 회수하는 것이 주 목적인 HR을 마친 방과 후.
산백합회의 본부인 통칭 '장미의 관'에 현재 모여있는 건, 로사 키넨시스 안 뷔통(홍장미 봉오리)과 그 동생, 그리고 로사 페티다 안 뷔통(황장미 봉오리)의 동생 이렇게 세 명 뿐이었다.홍백황 세 장미님들은 사치코님에게 연락사항만 이야기한 후 일찍 하교해버리셨다고. 레이님과시마코양은 클럽활동과 학급위원 일로 늦는 것 뿐이니까 조만간 올 것이다.
"조금 쓸쓸하구나"
사치코님이 조금 시선을 내리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 그런가'
새해가 밝으면, 아무래도 '졸업'이라는 두 글자를 의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사치코님에게 있어로사 키넨시스는 단 한명의 언니이고, 유미에게 있어서의 사치코님과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의지하고 있는 언니가 멀리 가 버린다는 걸 생각하면, 그건 역시 쓸쓸한 게 당연하다. 게다가 로사키넨시스는 오래 전부터 다른 대학교에 지원한다는 걸 공언하고 있었다. 졸업하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같은 구역 안의 대학교에 다녀 주신다면 든든할 거라고, 사치코 님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하실 게 틀림없지만.
"언니는-"
유미는 말하려다, 그만뒀다. 역시 묻는 게 무서워. 1년 후, 사치코님은 어떤 선택을 하실 건지.사치코님이 없어진 학원 같은건 생각할 수도 없다. 아니, 어떤 선택을 하시건 졸업만은 피할 수 없는 거니까, 고등학교 생활 자체가 어둠에 싸여 버리는 것이다.
"왜 그래?"
"아뇨, 아무 것도"
언니가 유급해 주시면 같은 학년이 될 수 있을 텐데, 같은 무책임한 생각이나 하고 있는 유미는인간이 덜 됐다고 스스로 반성했다. 너무나도 제멋대로라, 마리아님을 뵐 면목이 없다.
요시노양은 좋겠다, 하고 부러워진다. 레이님은 리리안의 대학교로 간다고 선언하고 있으니까이런 식으로 어물어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데다, 애초에 같은 부지 안의 이웃사이라는 좋은 환경이니까 졸업한다해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끼익끼익 하고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유미들이 있는 방에 들려왔다. 로사 기간티아의 초인적 청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유미라도 그게 한명분의 발소리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조금 빠른 걸음이라 레이님인가 했더니 의외로 시마코양이었다. 다소곳한 그녀로서는 드문 일이다.
"혹시 누구, 로사 카니나라는 말 들은 적 있으세요?"
시마코양이 이 또한 보기 드물게, 방에 들어오자 마자 인사도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로사 카니나?"
세 명은 동시에 복창하고, 그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뭐야, 그게"
사치코님은 미심쩍은 듯한 표정을 했지만, 시마코양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옆으로 흔들어 버렸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뭐어, 모르니까 '누구 아는 사람 없나' 하고 물은 거겠지만.
그건 그렇고 '로사 카니나'. 뭔가, 장미님과 관계가 있는 걸까. -로사 키넨시스, 로사 기간티아,로사 페티다. 그리고, 로사 카니나.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없이 팔짱이나 끼고 있을 때, 이번에야 말로 레이님이겠지. 우지끈 우지끈 하는 굉장한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땅울림처럼 들려왔다.
"얘들아, 로사 카니나라니 누구야!?"
비스켓같은 문을 여는 둥 마는 둥, 레이님은 큰소리로 방 안 사람들에게 물었다. 신기하게도, 그건시마코양과 거의 같은 내용. 말투는 꽤나 다르지만.
"그럼, 로사 카니나는 '사람'이라는 거지?"
사치코님이 확인한다. 지금 막 장미의 관에 도착한 레이님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채당연하잖아하듯 끄덕였다.
"당연히 사람이지. 우리 학교 학생인걸"
"과연. 3분 늦은 만큼, 시마코보다 정보가 자세해져 있구나"
과연 사치코님.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확실히, 시마코양은 로사 카니나라는 단어에 대해 물어본 것 뿐이었다.
"레이......아니, 언니. 언니는, 어디서 그 말을?"
겨울방학 동안 완전히 사촌자매 모드에 젖어 있었던 듯, 요시노양은 학교 안에서도 레이님을 잘못 불러 버렸다.
"우리 반 앞의 복도. 학생들 몇명인가가 잡담하고 있었어. 그것만이라면 신경쓸 것도 없지만, 날 알아채고는 갑자기 이야기를 그만뒀다는 거지. 그럼 역시 신경쓰이잖아. 그 애들이 이야기를
그만두기 직전에 나온 단어가, 묘하게 귀에 박혀서 너무 신경쓰여"
"그게, 로사 카니나?"
"그래"
레이님이 끄덕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시마코양이 '저도' 하고 중얼거렸다.
"저도, 레이님과 거의 같아요. 아마 2학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계단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학생들이 제 모습을 보고는 복잡한 얼굴로 그 곳을 피했어요"
"시마코양이 들으면 곤란한 이야기였다는 걸까"
초능력자, 아니 명탐정 요시노양은 고뇌한다. 아니, 그녀의 경우라면 시대극의 포도대장이라고하는 걸 더 좋아할지도.
그럼, 사치코님은 판관인가. 다들 일어서서 작은 원을 그리고 있는 모습은, 포도청의 작전회의 딱 그대론데.
"저, 라기 보다 산백합회 간부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 직감했어요"
시마코양은 곱씹는듯이, 조용히 천장을 올려보았다. 덩달아 유미도 올려봤다. 아, 거미집.
"잠깐. 시마코는 그렇다 치고, 어째서 레이는 로사 카니나가 학생이라고 생각했어?"
사치코님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슬프기도 하지,유미는 지적받지 않으면, 그 '당연한것'에 스스로 도달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걸 언니가 알아채시지 못하도록 가능한 얼굴 근육을 움직이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어라, 어째서더라"
레이님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유미도 아래를 봤다. 이번엔 바닥 구석에 먼지덩어리를 발견. 역시 약 2주간 그냥 놔두면, 아무도 안 쓰더라도 방은 지저분해지는 법인 모양이다.
"아, 맞아. 뭔가 한다, 라고 했었어. 그 로사 카니나가"
"뭔가, 라니?"
요시노양이 재촉한다.
"에에 그러니까. 분명히, 입후보라고 했었던가"
"입후보?"
레이님을 뺀 나머지 네명이, 동시에 되물었다. 하지만, 유미만 다른 사람과 약간 목소리 톤이 다르다. 유미 것이 '입후보라니, 무슨 말이에요?' 라면, 사치코님을 시작으로 시마코양, 요시노양은 그 의문의 대답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설마 입후보라니' 하는 느낌인 것이다.
"재미있잖아, 받아 주자"
사치코님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별로 안 내키는데"
레이님이 짧은 머리카락을 긁적긁적 긁었다.
"......그렇군요"
시마코양은, 그냥 그렇게 말하고 미소지었을 뿐이었다.
요시노양은.
"어떻게 할까, 유미양"
당황스럽게도, 이야기를 유미에게 돌려 왔다.
'......'
어떻게 할까, 라고 해 봤자. 지금 문제가 뭔지부터 전혀 모르는 사람이, 무슨 좋은 아이디어를낼 수 있으랴.
하지만, 아아.
여기서 '무슨 말이에요' 하고 질문하는 행위는, 거침없이 진행되어 가던 이야기의 흐름에 그대로돌을 던지는 격이고. 애초에, 그런 짓을 했다간 또 언니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된다. 차라리 돌 대신에 내가 그 강에몸을 던져 버리고 싶어. 진심으로, 어딘가에 떠내려가 버리고 싶을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라구.
"1월말에, 다음 학생회 임원 선거가 있어. 입후보한다고 하면, 시기적으로 일단 그 선거에 출마하는 거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옆자리의 사치코님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속삭임보다는 크게, 그러면서도 유미에게만 들릴 정도의 볼륨으로.
"어, 언니......"
이심전심이라고 하면, 듣기는 좋지만. 이건 그저 동생이 창피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사치코님의 배려일 뿐이다. 덜되먹은 동생을 가진 언니는, 그만큼 헌명해져야만 한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같은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지.
"그, 그, 그럼. 그 선거 결과에 따라선, 언니가 다음 로사 키넨시스가 아니게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건가요!?"
정신을 차리고, 조금 전 사치코님의 설명을 거꾸로 생각해 본 후 그제서야 일의 중대함을 깨달았다.
"잠깐, 유미. 사람 어깨 흔드는 건 그만두도록 해, 아프잖니"
"앗, 죄송합니다"
실패, 실패. 흥분해서, 무심코 언니께 달려들어 버렸다. 손을 놓자, 사치코님은 질린 표정으로 비뚤어진 소매를 고쳤다. 이제 겨우 이야기가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뷔통(봉오리)라고 해서 무조건 장미님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야, 리리안 여학원이 있는여기, 일본이라는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니까. 학생회장을 정하는데 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건 역시 이상한 거지만. 하지만, 역시 '뷔통'은 봉오리인 거니까, 다음으로 커다란 꽃을 피워 줬으면 좋겠어. 개인적인의견이지만.
"딱히 사치코는 아냐. 나도 시마코도, 그 가능성은 똑같이 있는 거지"
레이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가능성은 같아도, 확률은 다르겠지만요"
"시마코"
사치코님이 야단치는 듯한 말투로 이름을 불렀지만, 시마코양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만약 그 로사 카니나라고 불리는 학생이 현재 2학년이라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죠"
'아......'
시마코양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어렴풋이긴 하지만, 유미도 알 것 같았다. 현재 백장미 패밀리에는 2학년생이 없다. 그건 지금의 로사 기간티아(백장미님)가 두 학년 아래의 동생을 골라 버렸기 때문이라는, 꽤나 단순한 이유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시마코양은 아직 1학년인데도 로사 기간티아 안 뷔통(백장미 봉오리)라는 무지무지 무거운 짐을짊어지고 학교생활을 해 온 것이다. 좋건 싫건. 이대로 가면, 내년에는 2학년임에도 로사 기간티아(백장미님). 하지만 사치코님이나 레이님과 같은학년에 적절한 인물이 있다면, 자신보다 그 사람이 적당하지 않을까 하고 있는 것이다. 시마코양은 분명히. 그런 걸 두고 물러선다, 라고 하는 걸까. 아니,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좀더 적절한 말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도망치는 거야?"
절묘한 타이밍에, 사치코님이 말했다. 뉘앙스 적으로는 비슷하지만, 그렇게까지 심한 말을 고를필요야, 싶을 정도로 엄한 말. 만약 유미였다면, 잘못한 게 없더라도 '죄송해요' 하고 울면서 사과해 버렸겠지.
"아니요"
하지만, 그것은 시마코양. 학년은 달라도 서로 같은 봉오리. 똑바로 눈을 보고 반론한다.
"저를 동생으로 골라 주신 언니께 죄송한걸요. 선거에는, 나가겠어요. 물론, 질 생각은 없습니다"
"꽤나 소극적으로 세게 나오는구나"
사치코님의 지적에, 시마코양은 대답하지 않고 미소지을 뿐이었다.
시마코양이란 예측불허다. -다시금 유미는 생각했다.

 

 

    3

 

 

어쨌거나, 여기서 머리를 맞대고 있어 봤자 어떻게 될 일도 아니다. 그래서 각자 정보를 모아서 다음날 방과후에 대책을 세우기로 하고 해산했다.
장미의 관에서 나오자, 아직 정오를 조금 넘었을 뿐인 시간임에도 이미 학교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업식부터 본격적인 클럽활동은 없는 듯, 대부분의 학생들은 귀가해 버린 뒤.  조용한 복도를, 말없는 사람들이 터벅터벅 걸어간다. 딱히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다들각각 뭔가를 생각하면서 걷고 있는 듯 했다. 도서관 옆을 지나 마리아상 앞까지 오자, 다섯명은 나란히 양손을 모은다.
다들, 뭘 빌고 있는 걸까.
평소의 기도일까. 아니면, 산백합회 간부 선거에 대해서 빌고 있는 걸까. 어쨌거나 마리아님을 마주보고 있는 동안, 한사람 한사람은 고독했다. 눈을 감고 손을 모을 때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성스러운 사람과 마주보고 있으니까.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해도 타인은 배제된다. 진정한 의미로 타인의 마음 속에 들어가거나 하는 일은 가능할 리 없는 것이다.은행 가로수길이, 아침보다 훨씬 춥게 느껴졌다.
요시노양 일행과 헤어져 사치코님이랑 시마코양과 정류장에 서 있는 동안에도, 버스에 탄 후에도, 왠지 유미는 쓸쓸해서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추워?"
사치코님이 살며시 물었다.
"아뇨"
학생들이 한창 귀가할 시간이 아니니까 버스는 꽤 비어 있어서, 사람이 타고 내릴 때마다 바깥공기가 그대로 들어오고 있었다.
"좀더 이쪽에 가까이 오렴. 조금은 괜찮아질 거야"
맨 뒷자리의 긴 의자 창가에 앉아 있던 사치코님은, 곁에 있던 유미의 어깨를 당겼다. 팔과 허리같은 부분이 밀착되어서, 코트라거나 교복이 사이에 있음에도 사람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듯 따뜻했다. 하지만, 유미는 점점 더 쓸쓸해졌다.언니가 따뜻하면 따뜻한 만큼, 울고싶어지는 건 어째설까.
'어떻게 할까, 유미양'
요시노양의 말이, 갑작스레 마음 속에 다시 떠올랐다.
'......아아, 그런가'
동생이 된 지 오래된 요시노양은, 아마도 알고 있었던 거다. 우리들이, 언젠가 그 일로 고민할거라는 걸.이건 언니의 위기니까. 지금이야말로 버팀목이 되어 드려야 하는데.
'그런데도, 나란 앤. 항상 언니가 신경써 주실 뿐이고. 아무 것도 보답해 드릴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할까.
'그렇지, 요시노양'
너무나도 좋아하는 언니를 위해, 우리는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말로 생각해야 할 지도모른다.버스는 크게 오른쪽으로 돌았다.
사치코님도 시마코양도, 각각 가까운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누구의 눈에도 겨울거리 풍경 같은건 비치고 있지 않다. 곁에 있으면서도, 두 사람이 아주 멀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