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7권 사랑스러운 세월; 전편 -3- 우산 엮는 낭인의 아내

우산을 엮는 낭인의 아내

 

 

1

 

밤색 털의 무리 중에서 한 마리의 백마가 섞여 있으면, 싫어도 끌어 당겨보게 된다. 몇 종류의 설탕과자가 섞여있는 과자 쟁반 속에 전병이 한 장 섞여 있으면 누구에게 뺏기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사람이다. 설사 전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러니까 그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사치스러운 남자들 사이에서 검소한 남자가 한 명. 
(... 곰?) 
도(都)내의 동물원에서 우연히 만난 곰 같은 남자는 ‘드시겠습니까?’라고 말하고는 먹고 있던 군고구마를 반으로 잘라서 에리코에게 내밀었다. 
“이거...” 
“구운 고구마입니다.” 
대답하자마자 다시 코끼리에게 시선을 보낸다. 
“저...” 
코끼리를 보는 데에 열중해서인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말을 걸어보았지만 곰 같은 남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에리코는 할 수 없어서 예의를 차리지 않고서 군고구마를 우물거리면서 입으로 옮겼다. 
(모르는 남자에게서 물건을 받아서는 안된단다.) 
어릴 적부터 가족들이 말해왔던 훈계를 18세가 되어서 처음으로 깨버렸다. 
(에리짱은 귀여우니까 조심하지 않으면...) 
하지만, 등을 돌린 남자에게서는 위험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여고생에게 군고구마를 반으로 쪼개서 준 것조차 벌써 잊어버린 듯했다. 
“당신같이 예의를 모르는 남자, 처음 봤어.” 
에리코는 남자의 발 근처를 향해서 작은 돌을 찼다. 희소가치가 약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할 리 없었다. 눈앞에 이렇게나 재미있는 남자가 있는데, 과연 모르는척하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인가?

 

 

  2

 

황장미님(Rosa foetida)이 걷고 있다. 운동장 옆의 작은 길을 혼자서 흔들거리면서... 등교하는 건가, 하교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냥 스쿨 코트를 입고서 가방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대체 어느 쪽일까? 지금은 4교시가 벌써 끝난 시각이었기 때문에 판단이 어려운 시점이었다. ‘삑’하는 선생님의 호각을 신호로, 1학년 복숭아반의 체육수업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복숭아색의 머리띠를 두른 머리들이 일제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는 학교건물의 방향을 향해서 발 빠르게 움직인다. 달력상으로는 봄이었지만, 3월초의 체육은 아직 무리가 있었다. 특히 오늘은 밖에서 마라톤을 했기 때문에... 
“먼저 돌아가.” 
유미는 급우들의 집단에서 나와서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아, 유미씨... 어디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카츠라씨의 질문에 돌아보지도 않고서 대답했다. ‘실컷 마라톤을 해놓고는 또 달리는 거야?’라는 생각에 질렸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황장미님(Rosa foetida)~” 
“별일 없었지?”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유미는 황장미님(Rosa foetida)이 보고 있었을 곳 근처로 시선을 돌렸다. 운동장을 둘러싸는 완만한 경사면을 뒤덮은 잔디는 추위 때문에 움츠러들었고, 벌레도 아직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는 않았다. 
“뭘 하고 계시나요?” 
“아무 것도.” 
“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곤란해 하고 있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니... 이런 곳에서 에너지가 떨어져버리면 곤란하잖아요... 적어도 교실에 갈 건지, 돌아갈 건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어라? 하지만 황장미님(Rosa foetida)의 통학로는...” 
“저쪽.” 
무표정하게 북쪽을 가리키는 황장미님(Rosa foetida). 덧붙이자면 여기는 거의 서쪽. 
“헤매고 계시네요.” 
“그런 것 같아.”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입생도 아닌데 교내에서 헤매고 있다니 대단했다. 
“어쨌든 학교 건물로 향하는 것 아니었나요?” 
그냥 두었다간 계속 여기서 얼쩡거릴 듯 했다. 
“그렇지...” 
말이나 태도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모두 ‘따분하다’고 말하는 듯 했다. 
“집에 간다고 하더라도, 교내를 질러서 후문으로 돌아가는 편이 빨라요. 자, 가요.” 
유미는 조금 힘껏 황장미님(Rosa foetida)을 잡아당겼다. 몸이 운동을 멈추자, 면 100%의 트레이너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몸에 스며들었다. 
“휴...” 
황장미님(Rosa foetida)은 걷다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저...” 
그건 그렇다고 해도, 황장미님(Rosa foetida)이 내뿜는 이 분위기. 분명히... - 유미는 예전에 같은 상황이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어디 아픈 곳이 있으시다면 양호실에라도...” 
“아니, 몸이 아픈 게 아니야. - 아...” 
황장미님(Rosa foetida)은 ‘풋’하고 웃었다. 
“유미짱이 사랑니 사건을 기억해낸 모양이네.” 
“하...” 
그래, 황장미 혁명 때의 일이었다. 
“그립네. 그 때는 임신 의혹이라는 둥, 꽤나 재미있었는데...” 
그 때에 재미있었던 것은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황장미님(Rosa foetida)에게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화제일 뿐인 것 같았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교실에 갈께.” 
입구로 들어가서 실내화로 갈아 신었다. 유미가 3학년의 신발장이 있는 곳을 엿보니까, 황장미님(Rosa foetida)은 실내화를 신은 채로 그 장소에서 멍하게 있었다. 
“황장미님(Rosa foetida)?”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진학하는 것만이 진로인 것은 아닌 듯해.” 
구두와 실내화를 갈아 신는 짧은 사이에, 무언가 다른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기라도 한 것일까? 긁힌 CD처럼 이야기의 흐름이 튀어버렸다. 
“하...” 
유미는 어쨌든 맞장구를 쳤다. 이럴 때에는 듣는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사랑니(역주 - 일본어로는 ‘부모의 얼굴을 모르는’이란 뜻도 있음)의 임신 소동이 재미있다고 했다가, 교실에 가자고 했다가, 진학만이 진로는 아니라니... 더 이상은 지리멸렬이다. 
“진학하지 않는다면... 취직입니까?” 
“아, 그런 수도 있었네.” 
황장미님(Rosa foetida)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살짝 끄덕거렸다...라는 것을 보니 아닌 모양이다. 
“그러시다면?” 
유미가 묻자, 나직한 혼잣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결혼하고 싶은 걸...” 
“예!?” 
유미는 마룻장에서 뒤로 펄쩍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 그런 상대는 없다고 황장미님(Rosa foetida)이 예전에 말하셨잖아요?” 
말하고 나서야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복의 주머니에 숨겨져 있는 사진에 찍힌 몇 명의 남자가 머릿속에서 모락모락 떠올랐던 것이었다. 
“그렇게 말했을 지도 모르겠네.” 
황장미님(Rosa foetida)은 신발장 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지금은 어떠신가요?’라고 무심코 물을 뻔했다. ‘황장미님(Rosa foetida)의 신랑 후보가 매일 데이트하고 있는 남자 중에 있는 건가요?’라고... 
“그건 그렇고, 결혼이라니...” 
“응. 우산을 엮는 낭인의 아내가 되고 싶어.” 
“...” 
가망이 없다. 이대로는... 황장미님(Rosa foetida)의 눈은 벌써 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일본어로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나 말이 통하지 않는 걸까? 
유미는 곤란해 하다가 결국, 어쨌든 황장미님(Rosa foetida)을 3학년 국화반 교실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이 상황에서는 급우에게 바턴터치. 적당히 해놓고 돌아갔다가는 교통사고에라도 말려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는 탈의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는 교실로 돌아가서 도시락을 들고는 장미의 관으로 GO. 왠지 눈이 돌아갈 듯한 점심시간이었다.

 

 

3

 

우산을 엮는 낭인. 이 키워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종종 시대극(역주 - 우리식의 사극에 준하는 것)에 나오는, 낭인이 생계를 위해 우산에 종이를 붙이는 부업을 하는 그 모습을 말하는 걸까? 
“우... 음...” 
우산을 엮는 낭인. 미나코는 다시 한 번 워드프로세서에 입력해보았다. 1번 만에 변환되지 않는 것은(역주 - 일본어 워드프로세서는 히라가나를 입력해서 한자나 카타카나로 변환시키는 입력방식을 사용한다) 벌써 사어(역주 - 死語, 거의 쓰이지 않게 된 말)가 되었기 때문일까? 애당초 무사라는 것 자체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낭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그것은 대학 재수생이라던가 취업 준비생을 말할 때에 쓰이는 것이라서 자리를 잃은 무사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결혼... 대체, 누구랑? 혼자서 부실에서 고민고민하고 있다. 출입구에서 후쿠자와 유미와 황장미님(Rosa foetida)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것은 행운이었지만, 조각조각난 직소퍼즐의 조각을 두세 개 주운 것만으로는 전체의 모양을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럴 바에는 이쪽의 모습이 보이는 것을 각오하고 뒤를 밟는 거였는데... 하지만, 최근에는 어리버리한 후쿠자와 유미마저 경계하고 있기도 하고... 
“에잇... 쳇.” 
황장미님(Rosa foetida)의 스캔들을 들었을 때, 이렇게 재미있는 기사거리는 앞으로 거의 눈에 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떤가? 부원A, 부원B, 부원C는 최초에는 정보제공자가 되어주었지만, 그 뒤로는 거의 쓸모가 없어졌다. 
문제는 황장미님(Rosa foetida)의 목격정보가 잠복이나 미행같은 노력의 결과로 얻은 것이 아니라, 3명 다 우연히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에 있었다. ‘세 번째가 있다는 것은 네 번째가 있다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나코에게 ‘가만히 있어도 다음과 그 다음 정보가 굴러들어올 것만 같은 착각’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세 명의 부원의 죄가 무거웠다. 
‘황장미님(Rosa foetida)을 마크하고 있으면 될 거야’라고 말은 했지만, 자유등교처럼 되어버린 3학년을 1학년과 2학년이 뒤쫓는다는 것은 한도가 있었다. 아무리 학교 신문을 위한 것이라고는 해도, 백주대낮에 당당하게 수업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방과후, 부원들은 정보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아마도 오늘도 정보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차마 입에 담지는 못했지만, 수족과 같이 부리고 있는 1학년 부원도 미나코 본인도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오늘로 몇 일째였던가? ... 거의 1주일째였다. 
미나코는 워드프로세서의 화면에 표시되어 있던 ‘우산을 엮는 낭인’을 지우고 ‘알려줘요! ○○선생님’이라고 입력했다. 바로 기사로 할 수 있는 거라면 이전에 취재해두었던 채로 사장되어 있었던 출산휴가 보조교사를 취재했던 메모정도 밖에 없었다. 다음 주 발행의 ‘리리안 와판’은 또다시 재미없는 기사로 얼버무리는 수밖에는 없단 말인가... 
(타케시마 츠타코를 끌어들이는 데에 실패한 것도 컸어) 
미나코는 분풀이로 키보드를 빠직빠직하고 난폭하게 두드렸다. 3명의 1학년 부원들의 증언만으로도 충분히 ‘리리안 와판’에 게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억측을 부리는 기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때때로 신문부의 부원 3명이 각각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황장미님(Rosa foetida)을 발견했다’라니... 미나코 스스로도 ‘만든 이야기가 아니냐’는 생각에 웃어버렸다. 그래서 사진부의 타케시마 츠타코에게 협력을 요청했었다. 그녀는 카메라 실력도 좋지만 본능적인 셔터 찬스를 잡아내는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취재에 데리고 가면 반드시 황장미님(Rosa foetida)의 흔적을 잘 찾아내줄 것이었다. 적어도 한 장만이라도 사진이 생기면 신빙성도 늘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쳇, 카메라 마니아 녀석...) 
‘방과후는 계속 바빠요’라니...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빠직빠직빠직. 
(취미는 야간 야구경기 중계를 보는 것이고, 매일저녁 빼먹지 않고 한잔 걸치는 것이 즐거움?) 
왜 슬프게도 이렇게 재미없는 기사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미나코는 더욱 더 열 받고 있었다. 적어도 이게 장미의 관에 관계된 기사였다면 더욱 즐겁게 입력할 수 있었을 텐데... 
빵, 빠직... 번쩍. 
“아!” 
난폭한 취급 때문에 파업을 일으킨 것이었는지, 표시장치가 소리를 내고는 꺼졌다. 눈앞의 화면이 리리안 와판의 앞날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내참, 워드프로세서까지 바보로 만드네...” 
자세히 보니, 전원 코드가 플러그에서 뽑혀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심하게 움직였으니까’라고 반성할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이미 신문부 부장, 츠키야마 미나코라고 할 수 없다. 
“잘 보라구. 장미 패밀리!” 
혼자서 부실에서 주먹을 쥐어서 들어올렸다. 이제 보니 워드프로세서의 전원이 꺼짐과 동시에 미나코의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 올랐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억측으로 신문기사를 써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그 규칙을 거꾸로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 그런 생각을 사람들은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한다. 
“그러면...” 
미나코는 워드프로세서의 코드를 꼽고는 전원을 넣었다. 백업을 하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야간 야구경기와 저녁 반주를 있는 힘껏 머릿속에서 지웠다. 
“후후후...” 
음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신문부의 부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딸깍딸깍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4

 

다음날, 사진이 늘어나 있었다. 
“... 손 땐 거 아니었어?” 
아침 참배를 시작하기도 전에 ‘여기, 여기’라는 손짓에 계단 중앙까지 끌려 온 유미는 질색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땠지만 말이지. 새로운 남자의 모습이...” 
츠타코씨의 손에는 또다시 프린트 사진 같이 생긴 것이 쥐어져 있었다. 유미쪽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뒷면을 향해있었기 때문에, 마치 ‘도둑잡기’를 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최후의 한 장이었기 때문에 요컨대 그것은 조커라는 것인가? 하지만... 
“이제 와서...” 
‘남자의 수가 하나 둘씩 늘어간다고 해도 놀라지는 않는다구.’라고 유미는 생각했다. 주머니 속에는 몇 장의 사진. 주머니를 털면 사진이 는다니... 이제는 자포자기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라. 다른 종류라구요. 신랑감.” 
형사 드라마의 정보책처럼 귀에다 대고 중얼중얼하면서 속삭이는 츠타코씨에서 사진을 받으려고 유미가 손을 내밀자... 
“뭐야?” 
옆에서 손이 튀어나와서는 사진을 ‘앗’하는 사이에 뺏어갔다. 그 손에 이어진 연장선을 따라서 얼굴을 향하자 유미와 츠타코씨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버렸다. 
“로...!” 
너무나 놀라서 그 다음 말이 날아가 버렸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은 홍장미님(Rosa chinensis)이었기 때문이었다. 
“로? 그럼 로바(역주 - roba, 당나귀)”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시치미를 때면서 말했다. 이건 말잇기 놀이가 아닌가... 
“바, 바나나” 
하지만 그것에 입이 반응해버린 것이 너무 한심했다. 유미는 생각 없이 홍장미님(Rosa chinensis)이 시작한 말잇기 놀이에 참가해버린 것이었다. 
“나시(역주 - 梨, 배)” 
변함없는 홍장미님(Rosa chinensis). 
“시... 시루엣토(역주 - silhouette, 실루엣)” 
“그럼, 토리이 에리코(鳥居 江利子). - 여기에 찍혀있는 사람, 에리코네.” 
홍장미님(Rosa chinensis)... 맘대로 시작했다가 또 맘대로 끝내버린다. 보통은 ‘응(역주 - ん, 이걸로 시작하는 일본어 단어는 없다)’으로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인데... 
“같이 있는 사람은 누구야?” 
사진을 유미에게 들이대고는 힐문한다. 거기에는 분명히 지금과는 다른, 굳이 말하자면 검소한 옷차림을 한 중년남성이 찍혀있었다. 배경으로 찍혀있는 곳은 어딘가의 동물원 같았다. 
“그, 글쎄요...” 
물론 모른다. 이렇게나 수염이 많이 난, 곰 같은 남자는. 
“‘글쎄요’가 아니잖아. 자백해.” 
하지만 찔러봐도 정말로 모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협박당해도, 고문당해도, 자백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래...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거 같네.” 
‘휙’하고 방향을 전환을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더니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찍은 것은 츠타코씨?” 
살금살금 그 장소에서 도망가려고 했던 츠타코씨의 세라 깃을 붙잡고는 방긋 웃었다. 
“거, 건강하셨는지요... 아름다우신 존안을 뵙게 되어서...” 
대단한 츠타코씨도 홍장미님(Rosa chinensis)의 아름다울 정도인 박력 상승에는 저항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혼란해하는 거야?’라는 어느 시대극에 나왔던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츠타코씨... 감춰서 좋을 게 아니잖아.” 
무섭다. 미소뿐이라서 더 무섭다. 
“저는 단지 가끔씩 황장미님(Rosa foetida)을 슬쩍 뵙는 것뿐이기 때문에... 어디의 누구냐고 질문하셔도...” 
츠타코씨... 쩔쩔매고 있다. 
“뭐, 좋아. 이 사진이 ‘이번에는’이라고 말해진 걸 보니 다른 것도 아직 있다는 말이지? 다른 사진도 내놓아봐.” 
‘줘’라고 손을 내미는 홍장미님(Rosa chinensis). 거역할 수 없게 만드는 압박감이 있다. 
“아뇨, 다른 것은...” 
츠타코씨는 떨면서 손과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나머지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멘...) 
유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등에는 어느 사이엔가 식은땀이 솟아있었다. 그러자 마치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홍장미님은 다시 유미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유미짱. 주머니 안, 소지품 검사.” 
“옛?” 
“‘옛’이 아니잖아. 자 꺼내봐.” 
꺼내라고 명령받고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단 말인가.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상냥한 할머니’로 치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의 사치코님을 손바닥에다 올려놓고 조종하는 사람인지라 유미가 덤벼들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슬프게도 타케시마 츠타코양의 노력의 결정체인 다수의 사진은 유미의 주머니에서 꺼내어져서 홍장미님(Rosa chinensis)의 수중에 넘어갔다. 1:2라는 유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1학년의 완패였다. 
“역시...”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한 장씩 음미하면서 중얼거렸다. 
“좋은 장면을 찍었구나.” 
“하?” 
“별종이란 것. 에리코가 약한 부분이야.”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친우의 약점을 단번에 찔러 들어갔다. 
“별종에... 약하다...” 
유미와 츠타코씨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래. 별종. 2년 전에 많고 많은 1학년 중에서 에리코가 고른 것은 소년같이 키가 무척 큰 여자애였어. 용모만이라고 말한다면 에리코의 동생(soeur)이 되고 싶어 했던 귀여운 아이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자, 어째서일까?” 
“별종에 약하기 때문입니까?” 
“정답. 재미있을 것 같다는 면에서는 레이의 옆에 설만한 1학년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 이후의 학원생활을 얼마나 유쾌하게 해줄 것인가? 그것이 황장미님(Rosa foetida)이 동생을 고르는 것에 있어서의 유일한 조건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까지 그 애 주변에 없었던 타입의 사람이란 것만으로도 체크할 필요가 있어.” 
언젠가 백장미님(Rosa gigantea)이 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황장미님(Rosa foetida)은 특별한 장단점이 없기 때문에 인생이 재미없어서, 몇 개의 선택지가 있을 때는 의외성을 선택한다’는 것과 비슷한 말. 
“거기다 대세인 ‘리치맨’이었다면 ‘그냥 두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는 털어버릴 수 있을 텐데 말이지...”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사진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중얼 거렸다. 
“이 혼자서 튀는 남자만큼은 무척이나 신경이 쓰여.” 
‘뭐하는 사람일까’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홍장미님(Rosa chinensis)에게 있어서 다른 남자들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에리코는 말이지. 흥미의 정도가 일정 레벨 내에 있다면 꽤나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게 일정 레벨을 넘어서면 그 즉시 주변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민폐를 끼치게 되지. 귀찮은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리치맨’들은 아직 황장미님(Rosa foetida)의 레벨 측정기의 바늘이 한계를 넘는 곳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고 하는 그런 의미일까? 유미라면 오히려 돈 좀 있을 것 같은 남자들 쪽이 위험하게 느껴질 텐데... 하지만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역시 거물이었다. 친우가 다양한 남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으니까. 
“믿고 계시는 군요.”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사치코님이 싫어하는 4글자 따위는 생각하고 있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친우란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미는 그런 대단한 관계를 아직까지 가지지 못했지만, 만약 ‘요시노씨나 시마코씨가 지금의 황장미님(Rosa foetida)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한다면 그래도 믿게 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이유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그냥 상대를 무조건 믿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유미의 말을 웃어넘겼다. 
“믿고 있는 게 아니야.” 
“예?” 
그런, 무정한... 
“그러니까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무척이나 걱정스러워. 왜냐면, 어제 보았겠지만 또다시 흐리멍텅한 에리코가 되어버렸으니까.”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황장미님(Rosa foetida)이란 이름이 운다면서 말하고 싶은 데로 말했다. 하지만 애정이 느껴진 것은 유미가 속편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흐리멍텅한’입니까?” 
츠타코씨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물었다. 홍장미님(Rosa chinensis)의 압력도 약해져서 간신히 웃을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이렇게까지 된 것은 황장미혁명 이래로 처음이지? 거의 반년 사이에 두 번이나 폐인이 되다니 어떻게 된 것일까?”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것에 관해서는 세 사람 중에서 아무도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예령이 울렸다. 건물이 다른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그럼’이라고 말하면서 계단을 내려갔지만, 도중에 생각난 듯이 돌아서서는 사진 다발을 유미에게 되돌려주었다. 
“중이염 다음에는 사랑니였지만, 이번에 걸린 병은 좀 중증이네. 언제 나을런지 예상이 서지를 않아.” 
“하지만, 황장미님(Rosa foetida)은 몸이 불편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운동장에서 주웠을 때,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유미짱... 병이란 말이야... 특별히 몸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야.” 
“황장미님(Rosa foetida)은... 마음의 병을 앓고 계신다는 건가요?” 
홍장미님(Rosa chinensis)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이라고 우선 운을 땐 다음에, 유미의 귀에다 대고 소곤소곤 속삭이고는 이번에야말로 계단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유미는 홍장미님(Rosa chinensis)이 남기고 간 말을 되풀이해보았다.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해...?” 
점과 점이 아주 조금씩 연결되어서 선이 되었다.